김성신 한양대학교 ERICA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

[소비자경제신문 권지연기자] “많은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유식한지를 알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가진 지식으로 세상에 유익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20년 가까이 방송·강연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좋은 책을 대중에게 알려온 김성신 출판 평론가가 <소비자경제>를 통해 한 말이다. 

늘 책을 가까이에 두고 책을 소개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삶을 조금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에게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응원하고 돕는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그에게는 늘 마당발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흥미진진한 일들이 끊임질 않는다.

김 평론가는 지난해 9월 학계, 언론계, 출판계 등의 민간전문가, 그리고 파주시와 함께 ‘공존‧ 평화‧통일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걸었던 파란색 도보다리.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과 그 동쪽에 있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사이에 위치한 50m 길이의 작은 다리에서 피어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새싹을 함께 키워가 보자는 의미에서다.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를 즐겨하는 김 평론가는 최근 ‘공존·평화·통일’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대중에 알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가까이 하면 좋은 양질의 도서 같은 사람, 김성신 출판 평론가를 <소비자경제>가 만나봤다.  

-대중에게 책을 전하는 책 전도사라고 느껴진다. 출판평론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 대학졸업 후 출판사 편집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독서를 좋아해서 출판인이 되었으나, 편집자라는 직업은 오히려 활자에 지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편집자로 6년차 정도 되던 2000년 10월 방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미 출판계 선배 몇 분이 출판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때였다. 나도 이에 영향을 받아 그 길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출판평론가로 활동 하면서 출판 산업이라는 것이 대중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됐다. 그래서 출판의 영향력을 더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평론가의 독서량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 직업상 동시에 책을 몇권씩을 읽어가는 일도 많고, 책의 핵심만 파악하고는 다른 책으로 돌입하는 경우도 많아서 계량이 힘들다. 다만 한 달 기준으로 살펴보고 정리하는 책은 150여권, 정독에 가까운 경우는 월 30권 정도 된다.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술을 끊고 밤 9시부터 잠자리에 들어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읽는다. 그 시간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이다. 그래서 효율성이 두 배로 높아진다. 보통은 자신이 관심 가는 분야의 책만 읽는 경향이 있을 수 있는데, 직업상 다양한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 이 직업의 장점인 것 같다.  

-가장 의미 깊은 인생의 책을 꼽으라면? 

▶ 없다. 굳이 들자면, 내 인생의 책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다. 책이란 그렇다 끝없이 더 좋은 것이 나온다.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 내 인생의 책을 찾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라면, 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슬기로운 화학생활>이다.   

-출판평론 뿐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은데? 

▶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시대의 요구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직업적 특성을 통해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의미를 두고 싶다. 나는 그것이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차원의 연대가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그 의미가 더 확장되는 것을 본다. 

마치 블록체인처럼 인간이 텍스트라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컨텍스트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핵융합처럼 예상치 못했던 에너지들이 나온다. 그 에너지들을 통해 세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출판평론가들끼리만 모여 대화를 나누면 새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정도에 머물게 되지만, 그러나 만약 내가 방송인과 연대를 하면 책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알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

그런 시도와 힘들이 세상을 바꾸는 구체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모험이지만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보람있었던 경험을 하나 소개해준다면? 

▶ 출판평론가의 기능을 확장시키기 위해 개그맨 남정미 씨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던 경험이 있다. 이후 나는 남정미 씨가 출판 평론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남정미 씨는 코미디의 영역을 텔레비전 뿐 아니라 책의 영역에까지 확장시켰다. 이런 일들이 대중에게 책을 알리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것을 실행해 나간 후 남정미 씨가 지난 연말 한국서점연합회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는데, 이런 경험은 나를 매우 고무시킨다.

-그래서 유독 멘토로 생각하는 지인도 많은 것 같은데? 이것 역시 지식인의 책무라고 여기는 것인가?

▶ 평론가 생활을 하면서 '내가 읽은 책을 통해 내가 얼마나 유식한지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는 내가 가진 지식으로 세상에 유익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멘토로 생각해주는 분들이 생겼는데 감사할 따름이다. 

 

 

- 최근 공존·평화·통일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한반도 100년의 봄, 그리고 도서관’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 나는 파주시민이다. 파주중앙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이 시대적 요구를 지역단위에서부터 실현하고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파주중앙도서관 관장에게 '공존·평화·통일의 가치를 추구하고 기능을 하는 도서관으로 구축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취지에 공감하고 함께해주었다. 

그래서 작년 9월에 공평통소위원회가 구성이 됐고, 최근 열린 콘서트는 선포의 의미를 지닌 자리였다. 지식과 문화가 가장 활발하게 교류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으로서 공공도서관은 최적의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계속 그 취지를 살리는 전시히 등을 열어 공존·평화·통일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알리는 장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행사에 참여했던 송미나 씨가 김성신 평론가님을 멘토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본래 탈북민들에게도 관심이 있었나?

서경식 교수가 2002년 출간한 '디아스포라 기행'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아스포라적 시선을 확보하고 싶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땅에 심긴 나무에서는 줄기와 가지와 잎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의 절반일 뿐이다. 나무의 뿌리까지 온전히 다 보고 싶다면 뿌리 뽑혀 부유하는 존재들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디아스포라는 보편적 지성으로서 살아야하는 삶의 불가피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보편적 지성의 좌표를 확인시켜주는 일종의 지표종이다. 즉 가르침의 존재다. 탈북민이라는 존재가 던져주는 숙제를 풀어야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읽으면 좋은 도서를 추천해준다면? 

▶ 주승현의 <조난자들>, 장강명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우선 꼽겠다. 주승현 교수의 조난자들은 타자화 되어 있는 시선. 남한 사람들이 탈북민들을 바라볼 때, ‘탈북해서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니까 좋지?’ ‘그러니까 너희들은 고마운 줄 알아’라고 생각하는 함의가 들어 있다. 

세상 그 어떤 존재도 그처럼 차별화, 대상화 된 존재로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 조난자들은 탈북자가 주인공이 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에세이지만 결국 한국민들에게 통일의 자격을 묻고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생각과 통일 감수성을 갖추어야 하는지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의 경제적 궁핍과 절함함이 남한의 천박한 자본주와 충돌하면 어떤 지옥이 펼쳐지는 지를 보여준다. 끔찍한 상상력과 극단화 되어 있는 시선을 통해 우리가 가진 차별과 배제의 시선이 얼마나 거대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반성하게 만들어준다. 한마디로 통일의 자격을 묻는 책이다. 

- 한국인들의 독서량은 매우 낮다고 하는데, 좋은 책을 골라서 제대로 소화 시킬 수 있는 요령, 팁을 알려주신다면?

나의 주인이 책이 아니라 내가 책의 주인이다. 책은 나를 위해 읽는 것이다. 책은 내 지성연마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모든 책을 경전처럼 모실 필요는 없다. 책 선택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미 선택한 책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즉시 덮어야 한다. 재미도 의미도 느끼지 못하는 책을 끝까지 읽겠다고 버티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것은 독서의 기회비용까지 날린다. 같은 시간동안 나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선사하는 책들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의 기회까지 잃게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책을 잘 버리는 사람이 책을 잘 읽는 사람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양질의 도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책을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책을 선택하는 것부터가 독서의 시작이다. 

- 나에게 책이란 00이다.

책은 '망치'.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도구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나의 자아, 잘못된 세상, 고정화되어 있는 것들을 부수어야 새로운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나도 책을 통해 늘 나의 고정관념을 부수려 노력해 온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 나는 평론가에 머물고 싶지 않다. 나는 출판 산업이 지금의 제조업의 형태 즉, 책이라는 물건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굴레를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들에 기여하고 싶다. 

결국 지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 계속 지적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지적 가치가 인정받아 경제적 가치로 환원돼 지식을 처음에 만들거나 정리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생태계가 더 원활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출판이 책에 묶여 있는 방식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과거 레코스사가 연예인 기획사 체제로 변모했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책보다는 사람을 기획하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저자를 브랜드화하고 새로운 출판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보고 싶다. 예를 들어 과거 20세기에는 목수는 늙어서까지 더 정교한 물건을 잘 만드는 목수로 계속 존재하는 것을 직업윤리로 생각했다면,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 거대한 물결 안에서는 사람마다 자신의 직업을 도구화하는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화는 세상과 타인을 위한 방식이어야 한다. 직업을 세상과 타인에게 유익이 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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