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신지식인

[소비자경제신문 칼럼]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거의 매일 수많은 계약서에 직면한다.

대기업에서 통상의 계약은 임원이나 간부의 지휘하에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진행하고 사장은 그 결재만 하면 되므로 대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서는 담당 변호사도 없고 마땅히 자문에 응해 줄 법률전문가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볼 수도 없다.

또 사장에게 발생하는 이런 특별한 케이스의 계약서는 비밀성, 폐쇄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측근, 담당변호사에게 조차도 공개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고, 공개한다 해도 계약막바지에 공개함으로서 그들에게 긴 시간의 검토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후일 낭패를 보게 되고 후회하는 일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실컷 고생하고 기업을 키우고 나서 남 좋은 일 시키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즉 사장의 개인적인 욕심과 보안에 대한 불안감, 변호사에 대한 불신과 비용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특별한 계약서일 경우에는 그 계약서의 내용이 법률적인 검토가 주류를 이루겠지만 이외에도 경영전략, 노무, 세무 등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많이 있다. 이 경우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자격있는 전문가의 감수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시간을 벌어가면서 진행해야 한다. 

사장자리에 있다보면 개인적으로 돈 빌려 줄 일도 많이 생긴다. 특히 사업이 잘되고 있을 때는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먼 친척,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초등학교 동창까지도 찾아와 연줄을 강조하고 애걸복걸 사정한다. 이때 사장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중에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라면 반드시 종이에 그 기록을 남기고 싸인을 받아 둬야 한다. 대출기간이 짧던 길던 상관없다. 통상 이런 경우 일주일, 한 달, 석 달의 급전이 통상적이라 이때 사람들은 서류로 그 근거를 남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친한 지인들이고 기간이 짧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돈은 마음먹은 대로 제 날짜에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고, 시간이 지나면 당사자가 시치미를 떼는 어이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대로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는 경우는 딱 하나다. 그 친구한테 말로는 빌려주는 시늉을 하지만 안 받기로 작심한 경우다. 이때는 마음속으로 확실히 포기하고 돈을 건네 주는 것이다.  

 계약은 통상 두 가지 불신(不信)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빌려주는 당사자인 나의 기억력에 대한 불신 두 가지다. 성경에서도 누가복음 등 300여차레나 계약에 대해 언급되면서 계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생각을 움직이는 마음이란 것이 본인조차도 믿을 수 없는 “순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실생활에서 수 많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싸인한다. 특히 우리한국 문화에서는 “계약서는 단지 형식일 뿐, 마음이 중요해”라고 애써 강조하면서 꼼꼼히 읽어보는 걸 미안해 하고 나아가 상대방에 대한 결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제가 불거지고 법정다툼으로 이어지게 되면 결국 최종 증거물로 남는 것은 “계약서”라는 걸 뒤늦게 자각하고는 후회한다. 

 계약서는 축제일 케익속에 감춰진 “칼날”같은 것이다. 문제없이 축제가 성공리에 마무리되고 케익이 온전히 장식으로 잘 보전된다면 “칼날”이 숨겨져 있는지 조차도 모를 테지만, 배를 가르는 순간 “칼날”이 드러나 자칫 회사가 도산할 수도 있고 그 여파로 평생을 가난으로 지낼 수도 있는 치명적인 서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순간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면서 문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때 가능하다면 미리 받아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물론 우리 동양정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약하는 호기를 부리는 시늉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승자는 항상 웃는 가운데서도 매의 눈으로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치밀함을 감춘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 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사장의 품격' 저자>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