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군가에겐 깃털보다 가벼운 자리의 무게
[기자수첩] 누군가에겐 깃털보다 가벼운 자리의 무게
  • 권지연 기자
  • 승인 2019.02.1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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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연 기자
권지연 기자

[소비자경제신문 권지연 기자] 그는 집에서는 4남매 중 맡 딸.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커리어우면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조금 늦어진 결혼을 하고 어느새 노쇠해진 노모에게 효도하며 살면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녁이면 동료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어제 본 드라마 얘기, 연예인 얘기. 직장 상사 얘기 등 시시콜콜한 주제를 안주 삼아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이다. 주말이면 미뤄뒀던 운동을 했을 것이다. 또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평생 구호를 가슴에 새긴 채 어느 새 치킨을 뜯는 아주 평범한 소시민 이었을 것이다.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원인도 모른 채 배 한 척이 침몰하기 전까지 말이다. 바로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허영주 대표의 얘기다.

허 대표는 남동생이 실종되던 그날 이후 평범한 삶의 자리를 잃었다. 사고가 발생한 해 국정감사 자료를 손수 만들고,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설명하고 청와대며, 광화문이며 해수부며 외교부며, 해외 전문가들까지 손과 발이 닿는 곳마다 찾아가 설득하고 애원하기를 2년. 

한동안 직장을 휴직해야 했고 복귀해서도 잠을 줄여가며 관련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그녀에게 사실상 쉼이란 사치와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동생이 실종되던 해 임신 중이었던 여동생과 자식 잃은 부모 앞에서 더욱 씩씩한 맡 딸 노릇을 하기 위해 이를 악 물었을 것이다. 차마 해지할 수 없는 동생의 휴대폰 요금과 보험금 등을 납부하면서 하루하루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을 것이다. 

왜 국민 세금으로 민간 기업의 잘못으로 침몰한 배의 실종자를 찾아야 하느냐는 어떤 이의 말에 가슴에 대못이 박히기도 했을 것이다.

1월의 어느 주말 2년째 이어지고 있는 광화문 서명대 앞을 함께 지켜보면서 일부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시키는 힘이 있는가를 체감했다. 

허 대표가 이처럼 차가운 광장의 서명대 앞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준 덕일까. 

2017년 3월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심해수색선이 8일(한국시각) 사고 해역으로 출항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실시되는 심해수색인데다 우리나라 해역이 아닌 남대서양 심해에서 실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고, 그만큼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실종자를 찾는 것이 우선이나, 수색의 의미는 그 이상이다. 명확한 원인을 규명해 다시는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단초를 마련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비난을 입에 올리지만 또 누군가는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할 수 있는 우리사회의 시스템 전환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중대한 심해수색 과정에 우리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승선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언론인 승선 또한 불허했다.

이런 상황에도 사고해역으로 스텔라데지호가 출항하던 날 허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마음 상하지 않겠다”는 말로 취재진인 나를 위로했다. 

그는 "왜 내 동생이었을까" 하는 원망만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물론 시간을 쪼개서라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영결식에 참석하는 등 있는 힘껏 아픈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자리에 선다.

상황만 달랐을 뿐 이윤을 우선하다 피해를 입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은 같다는 공감.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불행이 될 수 있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을 뼛 속 깊이 각인했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허영주 대표가 1월 12일(토) 광화문 광장 스텔라데이지호 서명대 앞에 서 있다. (사진=소비자경제)

그리고 여기, 이제 자신의 자리를 떠나려는 이가 있다. 바로 해양수산부 김영춘 장관이다. 김 장관은 지난 21일 월례회의를 통해 간부직원들에게 조만간 퇴진할 것을 시사하면서 현재 추진 중인 정책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정부가 개각 시점을 2월 중순쯤으로 앞당기고 규모도 확대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장관 여럿이 사의를 표명했는데 이 중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퇴진은 2020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을 고려한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참모와 장관들이 총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지난 연말이나 올 해 초에 떠나는 것이 최적의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대 출항 이후 지금에서야 배의 침몰 원인이 세월호 사건 이후 제기된 선사 안전성 문제 제기를 무시한 채 수리비와 수리 기간에 따른 영업 손실을 우려해 무리한 운항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이제서야 밝혀진 이 시점에 말이다. 

2년 전 해양 사고의 원인이 속속 밝혀지는 중대한 이 시점에 김 장관은 해수부 장관의 자리를 깃털보다 가볍게 털고 총선을 향한 날개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나는 자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아니란 점이 우리의 마음을 한 번 더 좌절하게 만든다. 

문재인 대통령이 교체 장관 조건으로 '내년 총선 불출마'를 내걸면서 해양수산부 장관 자리를 탐내는 이도 없다고 한다. 이때문에 다른 정부부처 출신 중에서 장관이 임명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김 장관에게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누군가의 아픔, 국민 안전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기는 할까. 자고로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불치하문(不恥下問,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하라 했건만,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쫓느라 바쁜 그에게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기나 할까. 버리려는 자리의 무게를 알기나 할까.

평범한 삶의 자리를 박탈당한 누군가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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