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를 잘 찍고 나면 생기는 인생의 물음표에 답하다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의 저자 장영은 씨는 2016년 12월 21일부터 428일간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몸만한 배낭을 맨 장영은 씨.  

[소비자경제 권지연 기자] 사람에겐 저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다.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 직업, 나이 등의 수많은 수식어보다 우선하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일러주는 이름이다. 

금융공기업 고졸 공채 1기, 홀로 세계 일주를 감행한 백수,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스물일곱 늦깎이 대학생, 평범치 않은 수식어를 달고 살아가는 장영은 씨는 여행을 통해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온전히 가치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값진 경험과 생각을 책 속에 녹여낸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는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어쩌면 삶의 쉼표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삶의 쉼표를 잘 찍은 그녀의 삶은 마침표가 아닌, 여전히 물음표다.  그래서 흥미롭다. 이런 불확실한 삶을 여행하듯 즐기는 장영은 작가를 <소비자경제>가 만나보았다. 

◇ ‘쉼표’를 찍어야 할 순간 용기가 필요하다 

장영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금융감독원에 고졸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학벌 위주의 사회 분위기를 철폐하겠다며 공기업에 고졸 채용 바람을 일으켰고, 장 씨는 당시 금융감독원 고졸 공채 1기로 입사한 5명 중 한 명이었다. 

장 씨는 좋은 직장이 삶의 행복을 안겨줄 것이란 확신과 목표로 학창시절을 보냈고 금감원 취업으로 성공된 삶은 보장된 듯 보였다. 그러나 탄탄대로의 길로 들어섰다는 안도감과 기쁨은 잠시, 장 씨에겐 입사와 함께 줄곧 고졸 꼬리표가 따라다녔다고 한다. 퇴직연금, 대부업감사 등의 감독 업무를 똑같이 해내야 했고, 해냈음에도 학벌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금융공기업 특성상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는데요, 돌만 던지면 맞는 사람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또래 중 우수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금감원에 입사할 수 있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미운 오리새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장 씨는 몸담았던 기관의 조직구성원의 성질이 유달리 나빠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저 어쩔 수 없이 뿌리 깊은 한국 사회의 단면이라고 생각했다. 고졸 채용으로 제도적 변화는 시도해도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해야 했던 것. 

누군가는 ‘너의 자격지심’이라는 말로 채찍질했지만, 한국인이라면 대학졸업장이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얼마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가를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부담감이 장 씨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고 인정에 목마르게 만들었다. 뒤늦게 야간 대학에 들어가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과수석을 놓치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것도 세상의 인식을 바꿀 힘이 본인에게 없다는 현실 인지였는지도 모른다. 

“숨이 막혔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빨리 취업해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어요. 그런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완벽하게 구분 지어지는 삶이었거든요. 인생에서 무조건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죠”

무채색 의상에 매니큐어 하나 바르지 못한 채 짧게 깍은 손톱. 강요받은 단정함 속에서 20대 청춘의 꿈은 사라지고 있었다. 2016년 12월 21일. 428일간의 세계 일주의 시작은 다시 꿈을 찾고 싶은 간절함에서 시작됐다.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 꼬맹이여행자 저/행복우물 

◇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어차피’ 불확실한 미래. 

“한국 사회에서 행복하지 않았고 우울증이 있는 상태에서 떠났어요. 그래서 긴 여행을 하면서도 무섭지 않았어요. 내가 죽을 운명이면 출근하다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당시 너무 불행했기 때문에 차라리 여행하다 행복할 때 죽는 것도 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거든요” 

홀로 하는 여행이 무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장 씨의 답변이다.

그렇다고 장 씨에게 퇴사를 결정하는 일이 결코 쉬웠을 리 없다. 기를 쓰고 승진시험을 통과한 후였고, 5년간 어렵게 익힌 업무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홀로 키워주신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무엇보다 가슴 아팠을 것이다. 실제로 장 씨는 어머니의 반대가 무척 심해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말 한마디 안하는 냉전기를 보내야 했다고 한다. 

여행 초반에는 줄곧 불안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잡념과 걱정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불안과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왠지 모를 죄의식에서 출발한 여행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때 삶에서 가진 쉼표가 더 길고 긴 인생을 달려나갈 수 있는 에너지와 자신감을 선물해 준 셈이다. 긴 여행을 통해 마음의 근육은 단단해졌고, 장 씨의 얼굴에도 20대 꿈 많은 청년의 생기를 되찾게 됐다. 

“돌아올 때는 마일리지를 열심히 모아서 1등석을 타고 돌아왔어요. 그 때 비행기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다음 버킷리스트를 무엇으로 할까를 생각하다가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의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내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상에서도 행복하게 지내기. 일상도 여행처럼 지내기를 도전목표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 씨는 현재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하다. 빨리 다른 곳에 취업하기를 원하는 어머니, 훨씬 어린 친구들 속에서 하는 늦깎이 대학생활, 이전에 비해 환경이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장 씨에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스토리가 생겼다. 

후회해 봐야 돌이킬 수도 없는 과거는 어쩌면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치다. 그만큼 장 씨는 단단하고 행복해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 힘들었지만 그 경험 때문에 성장했다고 생각해서 힘들었던 경험마저도 소중해요. 제가 대학부터 갔더라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얻었잖아요. 사람들이 이제 제가 프리랜서의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는 않고요. 마케팅 쪽 업무를 해보고 싶어요”

그저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남들의 시선에 쫓겨 선택한 첫 직장. 누구도 물어주지 않았고 스스로도 따져보지 않았던 자신의 기질, 취향, 취미, 적성 등을 이제라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인생의 큰 수확이다. 

◇ 여행이 준 선물 여유, 친구, 자신감 그리고 카르마 

여행에서 얻은 것은 무궁무진하다. 장 씨는 44개국 중 가장 좋았던 여행지로 인도, 조지아, 모로코, 프랑스 파리, 뉴욕, 멕시코 6곳을 꼽았다. 이중에서도 첫 손에 꼽은 곳은 바로 인도다. 인도에서 장 씨는 여유가 주는 행복을 배웠다.  

“인도에서는 지저분한 듯 정신없는 중에서도 나름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어요. 뭘 해야지, 어딜 가야지 고민하지 않고 그곳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생각도 비교해 볼 수 있었어요.”

또 각국의 다양한 친구를 얻었다. 현지인의 집에서 먹고 자면서 경비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들의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기회도 얻었던 것. 오래 일하는 것이 능사인 한국과 달리 효율적으로 일하고 여가를 즐길 줄 아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질적인 삶의 자세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다고 한다. 

여행 중에 얻은 자신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자산이다. 꼼꼼하고 계획적인데다 야무진 성격의 장 씨는 성인이 된 후 단 한 번도 부모님에 손을 벌려 본 적이 없다. 일찍 취업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겠으나 20살부터 매월 100만원씩 꼬박꼬박 저축해 모은 돈의 일부를 여행 경비로 사용했다. 스스로 저축해 모든 돈으로 다녀온 여행이기에 장 씨의 성취감도 더 컸던 것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길 위의 여행자들을 보며,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를 깨달았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밑지고 산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억울했는데, 여행하면서 계산하지 않고 이끌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카르마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착하게 산 것을 돌려받고, 당장 돌아오지 않더라도 늦게라도 돌아올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하라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메켈레 부근에서 현지인 어린이들과/
세계 5대 미봉인 칠레 피츠로이에서 

◇ 간직하고 싶은 이름 ‘꼬맹이 여행자’ 

장 씨는 자신을 둘러싼 평범치 않은 수많은 수식어보다도 낯선 여행지에서 얻은 ‘꼬맹이 여행자’란 별칭을 좋아한다. 키도 작지 않은 장 씨인데 말이다. 

“사람들은 보여 지는 가치로 평가하잖아요. 어느 학교, 어느 직장, 혹은 누구의 딸 등... 그런데 길 위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입사 후 처음 얻은 휴가에서 필리핀에 갔을 때 필리핀 친구들이 당시만으로 18세였던 제게 붙여주었던 이름이었는데, 저는 이 필명이 참 마음에 들어요. 어떤 외형적인 가치에 따라 판단해 불리는 이름이 아니니까요.”

이미 장 씨의 나이 만 18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가 많이 묻어도 본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자 했던 이 때 이 마음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하는걸 보면, 인간 본연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현실 속에서 많은 부딪힘을 겪게 했는지도 모른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를 출간할 때도 출판사의 외형에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책을 출간한 ‘행복우물’은 제안을 받은 출판사 중 가장 작은 출판사였으나, 자신의 이야기를 값지게 봐준 곳.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작가의 방식대로 쓸 수 있도록 지지 해 주는 곳이란 이유만으로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추상적으로 지향하나,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가치를 아프게 꼬집는다.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봐주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출신나 나이 성별로 판단받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지닌 가치와 내면을 봐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 타인의 인생을 논할 자격

장 씨의 퇴사는 누군가에겐 투정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철없는 20대의 투정’ 내지는 ‘일찍 취업한 자의 배부른 투정’ 말이다. 장 씨에겐 이처럼 타인의 인생을 쉽게 논하는 사람들까지도 품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울러 원치 않는 조언을 섣불리 하지도 않는다. 타인의 인생을 쉽게 논할 자격이 누구에게도 없음을 일찌감치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잖아요. 무조건 퇴사하고 여행을 떠나라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세계일주를 떠나는 사람이 직장에 남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보다 대단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섣불리 나처럼 하라는 말 따위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너무 힘들어서 잠시 멈춰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잠깐 쉬고 와도 변하는 것이 없고 어차피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것조차 즐긴다면 좋겠어요. 무언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언가라도 될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이미 인생을 압축해 살아버린 듯한 장 씨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응원이 되기를 소망한다"며 소박한 꿈을 말했다. 쉼표를 잘 찍고 난 후 생겨난 인생의 물음표에 성실하고 진지하게, 또 용기있게 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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