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목의 경영전략] 코끼리 말뚝의 기억, 미래를 담으려면 과거의 것들을 버려라
[최송목의 경영전략] 코끼리 말뚝의 기억, 미래를 담으려면 과거의 것들을 버려라
  • 소비자경제
  • 승인 2019.01.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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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신지식인

[소비자경제=칼럼] 태국에 가면 폴로경기나 코끼리 쇼를 볼 수 있다. 이때 코끼리는 조련사의 조그마한 손짓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마디로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어릴 때 불훅((bullhook)이나 채찍질을 많이 당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의지만 있다면 금방이라도 뽑힐 것 같은 작은 말뚝을 전혀 거스르거나 움직일 시도조차도 않는다.

시도하는 즉시 고통을 받아왔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어린 새끼시절  묶여있던 조그마한 말뚝의 힘을, 10배나 더 크고 힘이 강해진 지금도 과거의 기억에 묶여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이런 착각과 트라우마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쟤가 학교다닐 때  나보다 훨씬 공부도 못했는데... 지금은 큰 회사 사장이야" 초등학교나 중고시절의 성적이 평생의 성적으로 각인되어 60세 환갑이 지나서도 그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현상은 공부 성적 외에도 얼굴, 키, 집안형편, 고급신발, 옷차림 등 정말 별거 아닌 것들에도 무수한 기억과 꼬리표가 있어 집요하게 따라 다닌다.

사실 그 성적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달달 외우고 계산하고 ‘4지선다’ 선택지에서 4개중 답을 잘 고르는 기능일 뿐이다. 그래서 학교 성적이 높다는 것은 생각이나 지적능력이 뛰어나 창조력을 발휘한다거나 도전정신이 아니라 단순기능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20년, 30년 지나서도 그때 그 성적으로 우쭐대는 사람이나, 30년 전 그 성적에 매여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나 양쪽 다 매 한가지다. 동창회 같은데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다들 그때 녹화된 동영상을 다시 틀어 놓은 것처럼, 그때 그 서열로 움직인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출발 5km지점의 현재 1등이라 해서 42.195km의 미래 골인지점 1등이 담보될 수 없다. 출발 5km지점은 전체 구간중 극히 일부구간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과거에 '말뚝'에 묶여 그 추억담으로 시간을 죽이는 동창회같은 퇴행적 모임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작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초등학교 당시 나는 자그마한 체구에 덩치 큰 애들한테 많이 구박받았었고, 그때 그 덩치 큰 친구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만나면 그때 그 우월적 지위를 무의식적으로 연출하곤 하는 상황이 싫기 때문이다. 

한편, 동창회, 향우회 등은 과거지향적인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과거지향적 성향 때문에 일부 비즈니스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영업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일수록 경직성이 강하고 한 번 고객이 되면 영원한 고객이 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치는 모임성향 때문에 특히 충성고객 확보 차원에서는 최적이다.

또한 딱히 인맥이 없는 영업자가 초기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적절히 활용된다. 이런 경우 과거의 기억들이나 트라우마가 오히려 비즈니스에서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유형의 "말뚝'이 있다. 대학전공과 학벌에 관한 것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의 학벌과 성적은 얼마나 의미를 가질까?

사회에서 그들을 보는 것은 아마도 그가 가진 고유한  DNA와 성장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정도로서, 회사입사단계에서 참고할 자료에 불과하다. 입사 후부터는 또 다른 형태의 과목과 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한지 10년, 20년이 지나서도 대학, 전공, 이과, 문과 출신을 운운하고 연연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수능성적 꿰맞추기와 줄 세우기로 운명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이들에게 대학과 전공의 의미를 너무 과도하게 적용하는 느낌이다.

사실 그 전공을 사회에 그대로 이어가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굳이 10년, 20년, 30년 전의 대학을 묻고, 학번, 전공을 묻고 이과 문과를 따진다. 그래서? 그게 현재와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또한 사회의 과목과 룰은 학교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고 평가기준도 다르다. 한마디로 지도가 주어진 길 찾기를 하다가 지도가 없는 길 찾기를 하게 되는 차이다. 특히 사장은 거의 모든 경우가 지도없이 오직 그의 생존 본능과 감각으로만 수행해야 하는 새로운 일 들 뿐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30년 전의 수능성적이나 명문대 졸업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30년간 살아 온 업적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는 최근 3년과 앞으로 30년의 미래설계가 더 중요하다.

우리 인간'뇌'라는 그릇은 그 물리적 한계성 때문에 과거로 채워진 그릇에 미래를 담을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미래를 담으려면 과거의 것들을 버려야 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거꾸로 추억을 점점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칼럼니스트=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사장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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