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게스트하우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백창우 시인의 시 '오렴'. "여행자들에게 쉼을 제공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다"는 이정민 대표의 마음을 대변한다. (사진=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 권지연 기자] ‘사는 일에 지쳐 자꾸 세상이 싫어질 때 모든 일이 다 제쳐두고 내게 오렴. 눈물이 많아지고 가슴이 추워질 때 그저 빈 몸으로 아무 때나 내게 오렴. 네가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방 하나 마련해 놓고 널 위해 만든 노래들을 들려줄게. 네가 일어날 때 아침이 시작되고 네가 누울 때 밤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너를 찾으렴. 망가져 가는 너의 길을 다시 빛나게 하렴.’
 
강릉게스트하우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백창우 시인의 시 ‘오렴’은 이정민 대표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정민 대표는 "세상에 지쳐 찾아간 강릉에서 세상을 다시 살아낼 힘을 얻었다"며 또 다른 누군가의 잃어버린 세상, 사람, 꿈을 찾아주고 싶다"는 당찬 꿈을 밝혔다. 

이정민 대표와의 일문일답 

- 어떻게 강릉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됐나? 

나도 강릉에 온 여행자의 한 사람이었다. 온 국민이 그러했듯 이정민 대표에게 2014년 4월은 견디기 힘든 계절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후 마주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은 참혹했다. 괴로움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가벼운 짐을 꾸려 홀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이 그녀와 강릉의 첫 만남이었다. 그 때까지도 몰랐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 실망, 답답함 등의 마음을 품고 찾은 강릉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될 줄을 말이다. 
 
처음에는 여행자로 와 이틀 정도만 묶고 갈 생각이었는데 내가 묶었던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강릉게스트하우스 1호점 대표)와 친구가 됐다.  그래서 그 친구가 미국에 가거나 하면 게스트하우스를 대신 봐주고 그러다가 강릉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지금껏 제가 살았던 삶과 다른 삶을 살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4호점을 해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됐다. 

- 처음해보는 사업인데 두렵지 않았나? 

처음 해보는 게스트하우스 운영이기에 두려움이 앞섰지만 점차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어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 계절마다 낯선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는 강릉의 자연이 맘에 들어서 좋은 것 같다. 

-강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여행지를 소개한다면? 

바다부채길이라고도 불리는 헌화로는 이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한 곳이다. 최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의 왕래가 잦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동해안 최고의 숨은 비경으로 꼽혔다.
 
헌화로는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바다와 가깝게 난 도로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병풍처럼 감싸 안은 기암절벽과 그 사이로 달빛마저 몸을 숨기는 절경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걱정도 함께 녹아내리는 것 같다. 
 
특히 해뜨기 전, 공항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해무리, 해진 후 솔바람다리 위에서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들리는 강과 바다, 바람의 합주소리는 이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싶을 때마다 찾는 곳들이다. 그냥 파도치는 것만 봐도 마음이 좋아진다. 매일 여행하는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나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드는데,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들을 지척에 두고 있으니까 나는 지금도 여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 게스트하우스가 참 아기자기하다. 직접 꾸몄다고 했는데? 

내가 위로받은 강릉에서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고 누군든, 언제든 찾아와 짐을 풀고 마음을 쉬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 세 칸을 다 허물고 게스트하우스 1층 전체를 카페로 꾸몄다. 벽을 허물고 벽지를 떼고 페인팅 작업, 인테리어 하나까지 날 밤을 새워가며 모두직접 손 봤다.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그려진 그림도 내가 직접 그렸다. 

-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면도 있던데?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모여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그런 목적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게스트하우스의 주 목적이 파티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에도 "파티가 없냐"고 물어오는 손님들이 있다. "없다"고 하면 실망하는데 게스트하우스의 목적은 잠을 자고 쉬어가는 곳이다. 목적이 바뀌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1층 벽면에 손님들이 쓴 편지가 눈에 띄는데, 기억에 남는 손님은?

기억에 남는 손님은 정말 많다. 한번은 한국계 덴마크인이 가족과 함께 찾아왔다. 알고 보니 어릴 때 덴마크로 입양된 분이었는데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아온 거였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온 다른 손님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게임도 하고 그랬는데 좋은 추억을 만들어드릴 수 있어 기뻤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결혼한 손님, 새해만 되면 반가운 인사를 전하는 프랑스 손님 등 수많은 손님들을 기억한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외로움을 안고 찾아오는 손님이다. 

내가 항상 손님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정말 울고 싶은데 창피해서 못 울 때 그때 와라. 우는 것 다 봐줄 테니 와라. 대신 좋은 소리 못 들을 각오는 하고 와라’ 그래서 ‘언니에게 혼나려고 가요. 욕 한바가지 해주세요’라는 손님들도 있다.

뭐라도 해먹이고 싶어서 일단 우리 먹는 거에 숟가락만 꽂으면 같이 먹는 거라며 이것저것 챙겨줄 때가 많은데 ‘숟가락 들고 갑니다’라면서 불시에 오는 손님도 있다. 
 
- 평창 올림픽 개최로 작년에 인근 호탤과 숙박업소 방 값이 천정부지로 뛰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많이 내렸다. 특히 바닷가 쪽에 있는 호텔들이 많이 어렵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게스트하우스는 늘 찾던 분들이 찾아줘서 크게 변화가 없다. 

- 향후 바람은? 

무한 경쟁, 인간 소외가 만연한 세상이다. ‘돈’보다 ‘행복’의 가치를 우선하며 삶. 너무 무겁지 않은 짐을 둘러매고 여행하듯 살아가고 싶다. 사람들이 외갓집 툇마루에 앉아 느낄 수 있는 정서 같은 것들을 느끼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을 뿐, 다 똑같은 사람인데 너무 재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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