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신지식인

[소비자경제신문=칼럼] 인연은 내가 선택하는 경우보다는 주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태어난 국가, 부모, 형제, 고향친구 등이다.

나아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사람의 인연은 나의 라이프 사이클과 그의 사이클이 만나고 교차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인연이 단순한 순간 접촉이라면, 관계는 서로의 감정이나 활동영역이 맞닿는 ‘접촉 표면적’의 지속이다.

따라서 인연이 관계로 이어져 연속적으로 유지되려면 서로의 ‘공유 표면적’을 꾸준히 늘려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흔한 식사나 술자리부터 시작하여 공통의 스포츠, 취미, 관심사,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일상생활까지 공동의 표면적을 늘여간다면 최상의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피붙이를 제외한 남남끼리의 만남에서 표면적의 최대치는 '결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은 취향, 관심사, 돈, 미래, 자녀, 가족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서로의 표면적을 공유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동서를 막론하고 왕권시대에 가장 흔히 인연을 맺는 방법으로 결혼을 이용해왔고, 지금도 일부일처제로 시대는 달라졌지만 결혼을 매개로한 부의 획득과 세습이 일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29명의 호족 딸들과 결혼한 고려태조 왕건, 재벌간 권력자간 사돈 맺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한 사람과 밖에 할 수 없으니 되도록 많은 사람과 이런 수준에 이르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이상적인 인간관계의 목표가 될 것이다.

또한 나름 최적의 선택이라고 신중히 결정한 이런 결혼조차도 파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결국 어떤 인간관계든 상대와의 ‘공유면적’에 대한 꾸준한 유지노력과 긴장이 필요하다. 

"주소록에 등록된 친구가 5천명입니다" 어느 연예인이 자랑삼아 말했다. 사람상대하고 대중인기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보니 그 직업 특성상 이해는 간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많은 인맥을 관리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회의감이 든다. 이런 경우는 친구관리라기보다는 비즈니스 거래처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친구와 거래처관리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고 다른 방식과 형태로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전화번호가 500명이든 5,000명이든 그 숫자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넓은 교류속에서 깊이를 더하는 T자형 인맥관리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하면 친구범위는 넓고 선택적으로 깊이있게 교류할 수도 있으니 한편으로 자기사색이나 성찰의 시간도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결국, 인간관계는 넓이와 부피다. 인간과 인간의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더해져 넓이가 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네트워크다.

이때 넓이는 관계의 표면적을 말하고, 부피는 그 표면적에 시간의 개념을 더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나온 전체 부피(질량)이다. 각 개인의 성향, 능력, 직업에 따라 그 양이 다르겠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사장의 인간관계 관리 즉 인맥관리는 표면적인 넓이에 시간개념을 부여하여 부피(질량)을 늘여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많은 사람을 깊이 오래 사귀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자면 20〜30대는 영역확장을 위해서 넓이가 중요하고, 40대 이후부터는 넓이보다는 깊이를 더하고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부피를 늘려가는 것이 전략적 인간관계의 수순이 될 것이다.

이처럼 되도록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인맥을 펼쳐 놓아야 지속적 관계유지가 가능하고 효율적이 될 것이다.

첫째, T자형 인맥관리에서 ‘인맥 넓히기’의 핵심조건은 인내심이다. 돌연변이나 소위 ‘또라이’들을 참아내는 인내와 포용력이다. 지금 우리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과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을 가는데 과거 데이타와 경험만으로 미래를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양성과 통섭이 필요한 이유이고 돌연변이나 또라이형 인재가 필요한 이유다. 자기와 다른 스타일, 다른 관점, 다른 의견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것만치 재미없고 힘든 시간은 없을 것이다. 각 개인별 문화가 다양하고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규칙을 정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다양성은 불편하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자면 힘들다. 하지만 복잡하고 다양한 비즈니스를 다루고 판단해야하는 리더입장에서는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참아내야만 지도에 없는 길을 갈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당시 정치·정책 현안을 놓고 대통령과 수석, 참모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한 비서관의 거듭된 반대에 "이제 그만하라"고 버럭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한 고위 공무원은 회의 분위기에 놀랐다고 한다. 구석에 앉아있던 행정관 한 명이 불쑥 개인 의견을 말하더라는 것이다. 조금 뒤 다른 행정관이 또 발언을 했다.

수석·비서관도 함부로 말 못 했던 박근혜 청와대 시절엔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직언과 다양한 발언의 허용도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는 있다. 그 최고의 단계는 분명한 적대적 관계자, 적(敵)의 의견까지도 좋은 의견일 경우 대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이다.

통상 정치에서 자기 동지애로 똘똘 뭉친 당파적 우정과 사랑으로 패거리내 한정된 의견 수렴은 더 큰 정치로의 진입에 스스로 한계를 두는 것이다. 회사의 경영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적용될 수 있다. 조직의 다양성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또라이들도 인력풀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 '돌아이'를 관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흙탕물을 일으키키도 하고 가끔 풍파도 일으킨다. 리더인 사장입장에서는 상당한 인내심과 포용력이 요구된다. 

두 번째, T자형 인맥관리에서 ‘인맥깊이’의 조건은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흔히 우리는 친한 사이, 친구를 대할 때 막 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향 친구들, 동창들과 대할 때 ‘막역하다’라는 의미를 잘못이해하고 대하는 것이다.

막역하다는 것은 ‘허물없이 지낸다’는 의미고 체면을 돌보거나 조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예절은 필요하다. 자주만나고 세월이 흐르다보면, 정말 지켜야 할 기본적인 배려심이나 예의를 생략하거나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거나 자기본위의 태도를 취함으로 인해 오랜 우정이 깨지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이다.

나아가, 정치적인 이야기나 종교적인 논쟁은 금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진정한 우정이나 깊이 있는 사이라면 서로 다른 이런 관점조차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상대방에 대한 진실한 관심과 사려깊은 태도, 지속적이고 진정성있는 마음이 ‘인맥깊이’의 핵심이다.

인맥관리에서 넓이와 깊이를 동시에 넓힌다는 것은 분명 시간과 노력의 물리적인 한계가 있고 개인의 인생철학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인맥의 넓이에 중심을 둘 것인지, 특정 한정된 인물들과 깊이 있는 관계에 중심을 둘 것인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이고 취향이 될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사장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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