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신지식인

[소비자경제신문 칼럼] 비즈니스에서는 누군가 갑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을이 된다. 그리고 때로는 갑이고 때로는 을이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내가 갑인지 을인지 어떤 관계인가 궁금하면 간단하게 테스트해 보는 방법이 있다. 그에게 전화했을 때 반응 속도를 보는 것이다. 특히 상대가 즉각 받지 못했을 때 반응속도다. 당신이 ‘갑’이라면 대개 5분내 전화가 올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오거나 아예 전화가 오지 않는다면 십중팔구 당신은 ‘을’이다. 거래관계라면 중요한 거래처가 아니라는 뜻이고, 친구나 지인관계라면 한마디로 그에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갑과 을은 힘의 논리와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세상흐름과 맥을 같이하며 항상 뒤바뀌는 과정을 반복한다. 가령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기 직전까지는 의뢰인이 갑이지만 계약.의뢰후에는 변호사가 사건을 주도함으로서 을의 위치에 서게 된다. 하지만 변호에 불만이 쌓이게 되어 변호사를 경질할 경우 다시 의뢰인이 갑이 된다. 국회의원과 선거운동원의 관계에서도, 평상시에는 국회의원이 갑이지만 선거운동에 돌입하게 되면 운동원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열정에 모든 것이 달려있으므로 국회의원이 을이 되어 운동원들에게 잘 대접하고 부탁할 수밖에 없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도 통상은 사장이 갑이지만 일단 중요한 일을 위임하고 난 후 부터는 사장이 노심초사 그의 행동여하에 회사명운이 달려있을 터, 직원이 갑이 된다. 또 자금담당 같은 중요한 보직의 경우 잘못 다루면 큰 사고로 이어지므로 조심스럽게 갑 대우해야 한다. 이렇듯 갑과 을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며, 시간의 흐름과 상황변화에 따라 동일 인물간에도 늘 바뀌고 또 비중도 달라진다.

인간은 무한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갑들에 의해 내 자유를 제지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조차도 갑이 존재한다. 바로 국민이 그의 갑이다. 늘 여론의 향방에 관심을 가진다. 서슬 퍼런 검찰총장도 대통령 앞에서는 을이다. 음식점 사장은 종업원들에게는 갑이지만 손님 앞에서는 을이다. 이렇듯 갑과 을의 굴레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런 수많은 갑과 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일종의 다계층 다차원의 먹이사슬 복잡구조관계다. 그렇다고 하여 항상 답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갑과 을의 종속관계가 안정적 매출의 근원일 때 을은 오히려 안락감을 느낀다. 마치 좁고 어두운 침낭속의 포근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살아가면서 인생의 자유를 늘이는 방법은 이런 갑의 수를 줄여 나가는 것이다. 소수의 ‘어떤 갑’만 둘 수 있다면 그 한사람에게만 집중하면 될 것이고, 이때 을은 어느 정도 미래가 예측 가능한 삶과 한정(限定)보장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을 갑과 을의 단순 이분법으로 구분 짓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감성, 이익, 관습 등이 얽혀있다. 예컨대, 넓은 대로(大路)를 자기 멋대로 팔 휘저으며 걸어 갈 수는 없다. 상대가 오는 걸 보고 피해가고 내가 먼저 눈신호를 주어 상대가 피하게 하는 양보와 배려가 얽혀있는 게 인간사회 우리 삶의 본질이다. 이런 걸 요즈음 사람들은 단순하게 흑백논리로 갑과 을로만 구분짓기 함으로써 가뜩이나 건조한 세상을 더욱 삭막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칼럼니스트=최송목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사장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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