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신문=권지연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수사가 정점을 향해가는 가운데 검찰은 23일 고영한(63·사법연수원 11기) 전 대법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고 있는 고 전 대법관은 19일 박병대 전 대법관에 이어 두 번째로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의 통보에 따라 9시 10분께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고 전 대법관은 "국민께 심려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하고 누구보다도 이 순간에도 옳은 판결과 바른 재판을 위해 애쓰시는 후배 법관들을 포함해 법원 구성원께 송구스럽다"며 "사법부가 하루빨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길 바랄뿐"이라고 밝혔다.

고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인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냈다.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당시 마지막으로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인물인 셈이다. 

그는 지난 15일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기소장에 70번이나 이름을 올린 점을 미루어볼 때 고 전 대법관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재판 개입 등 여러 사법농단 사건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고영한 전 대법관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재판개입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고 전 대법관은 지난 2016년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문 모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자신의 스폰서인 건설업자 정모 씨의 재판 관련 정보를 유출했고, 이를 확인한 법원행정처가 감사나 징계 관련 조치 없이 사건을 무마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고 전 대법관은 당시 윤인태 부산고법원장에게 직접 연락해 “문 판사가 재직 중일 때 판결이 선고되면 파장이 있을 테니 검찰 불만을 줄일 수 있도록 충실히 심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문 판사 사직 후에 선고하기 바란다”고 선고기일을 미루도록 요청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과 관련해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를 대필해줬다는 의혹에 연루된 혐의도 받는다. 당시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효력을 정지한 하급심 결정을 뒤집고 고용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고 전 대법관은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직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동향 수집 및 기사 대필, 상고법원 등 사법행정 반대 판사 부당사찰,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 대응방안 마련, 정운호 게이트 관련 영장 및 수사 정보 수집 등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첫 법원행정처장인 차한성 전 대법관을 비공개 조사했고, 지난 19일 박병대 전 대법관을 공개 소환해 이틀 연속 조사, 하루 쉬고 22일 다시 소환 조사했다. 

박 전 대법관은 검찰조사에서 일관되게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는 식으로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물증이 뚜렷한 혐의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인정했으나 "사후에 보고를 받았다" 또는 "업무는 법원행정처 담당 실장 책임 하에 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사법농단의 ‘윗선’으로 꼽히는 전직 대법관들이 줄줄이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이 의혹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을 언제 소환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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