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권지연 기자] 문재인 정부 전반기는 줄곧 권력형 적폐 청산에 집중해왔다면 하반기는 생활형 적폐 청산을 새로운 국정 동력으로 삼아 민간 반부패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한 반부패정책협의회 참여 기관들은 20일 열린 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그동안 청와대 민정수식실과 논의해 온 생활 적폐를 9가지로 규정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고받은 9대 생활 적폐에는 공공기관 고용세습으로 주목받은 채용비리와 학사비리, 경제적 약자에 대한 불공정 갑질행위, 공적자금 부정수급, 재개발재건축 비리, 요양병원 보험금 수급 비리, 안전사고를 유발하는 부패 행위, 탈세 등이 포함됐다. 

◇ 채용비리와 학사비리 

숙명여고 정기고사 시험문제 유출 사건에 이은 문재인 대통령의 생활적폐 청산 발언이 나오면서 교육계에서는 대입 체계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쪽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으로 한 대입 정시모집을 이전 수준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이 있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중심으로 하는 수시모집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이에 올해 2022학년도 대입개편에서도 정시모집(수능전형)을 소폭 확대해 전체 대입 선발인원의 30%로 늘리는 수준으로 마무리됐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추구하는 마당에 객관식 출제 유형이 다수를 이루는 수능 비율을 높이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란 지적도 있어 정시 비중을 급격히 늘리기도 쉽지 않다. 결국 내신 관리 시스템을 개선해 신뢰도를 높여야 하는 문제가 숙제로 남게 된다. 

또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공정한 채용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도 높아졌다. 

◇ 경제적 약자에 대한 불공정 갑질행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갑질 행위는 올해 국감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현대자동차와 조선3사, BHC, 샘표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의 갑질을 둘러싸고 여러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현대차는 영업이익률이 10%이상이지만 협력업체는 최대 5%에 불과한데 현대차가 판매부진에 따른 불이익을 단가 인하를 통해 하청업체에 떠넘겼다는 점이 쟁점이 됐고 국내 대표 치킨업체인 BHC의 박현종 회장은 광고비를 신선육 가격에 포함한 사실을 가맹업체에 고지하지 않은 점 등이 집중 질타를 받았다. 

최근엔 본사 갑질에 피눈물을 흘리는 남양유업 가맹점주들의 어려움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정보통신기술 보급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생산물과 노동시장은 뒤쳐져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우리 사회와 경제에 경종을 울린다. 

WEF는 17일 '2018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통해 우리나라의 종합순위가 평가대상 140개국 중 15위를 기록했다. 특히 거시경제 안전성과 정보통신기술(ICT) 보급은 세계 1위권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노사협력 항목에서 124위, 정리해고비용(114위), 노동자 권리(108위) 모두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 경제 분야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 공적자금 부정수급

사립유치원들의 모임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문제가 국민적 공분을 산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유치원 비리가 국가와 자치단체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유치원에서 자행된 일이란 점이다. 

이밖에도 공적자금을 부정수급했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힌 사례는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지만 국가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 ‘e나라도움’의 운영 체계도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e나라도움’은 국가보조금 부정수급을 방지하고 효율적 관리를 위해 혈세 350억 원을 들여 만든 국가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이다. 

한국재정정보원은 ‘e나라도움’에 등록된 2017년 전체 보조사업 19만 7천183건 중 4천353개 사업을 부정수급 징후 점검대상으로 추출해 각 부처와 지자체에 통보했지다. 하지만 한국재정정보원이 각 부처나 지자체에 점검대상들을 알릴 때 아무런 근거나 분류작업도 하지 않은채 주먹구구식으로 부정수급 징후 점검 대상 명단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 재건축·재개발 비리

올해 9월에도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는 지역에서 시세차익을 노리고 불법 전매를 한 청약자와 뒷돈을 챙긴 주택조합 임직원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재개발·재건축 비리는 총 92건·67개 사업장이 적발돼 619명(구속 8명)이 검거됐는데, 불법전매·통장매매가 432명(69.8%)으로 가장 많았고 조합 내부비리 43명, 금품비리 25명, 문서위조 7명 등 순이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관련해 금품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지만 현행법상 분양권 불법전매 매도자만 처벌할 수 있을 뿐, 매수자를 처벌할 수 없는 현행법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재건축·재개발 비리와 관련해서는 시행사가 돈 되는 재건축 장소를 발굴하고 법규에 무지한 주민들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현장의 원천적 문제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 요양병원 보험금 수급 비리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요양병원의 보험금 수급 비리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요양병원 숫자는 1531곳으로 2010년 (867곳)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비의료인이 불법으로 요양병원을 설립하면서 의사를 바지사장으로 앉히는 사무장병원 형태의 요양병원이 비리의 온상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요양급여 부당이득 환수결정 총액 6949억200만 원 중 80%가 바로 사무장 병원에서 발생했다. 이 같은 불법이 자행될 수 있는데는 일정 정도의 조합원 규모를 갖추면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문제로 지적된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따른 병원 설립 기준은 조합원 300명 이상 총출자금 1000만원 이상이면 병원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에서 지난해 9월 조합원 500명 이상, 총출자금 1억 원 이상으로 강화됐지만 얼마든지 사무장병원을 설립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또 고액의 비급여 진료를 남발하거나 보험 회사 등과 공모해 환자 수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요양급여를 받는 등의 문제도 청산해야 할 적폐다. 

정부는 생활적폐 대책협의회를 구성해 적폐 청산 신규 과제를 발굴하고 인사청탁, 광고·협찬 등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실태도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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