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 빠진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 토론회'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소비자경제신문=권지연 기자] 국회에 수년째 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연구원 주최로 19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정책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여한 금융관련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토론회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전적 보호제도 강화 방안과 금융소비자 사후구제 권리 증진 방안 마련에 초점이 맞춰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설문결과 정부가 금융소비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응답이 44%에 달했다”면서 "금융소비자 정책을 수립하는 업무 방식을 소비자 참여형으로 대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금융소비자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 위주로 의견을 수렴하다 보니 금융소비자가 소외되어 왔으며 이렇다보니 금융소비자가 정책 변화를 금융소비자가 체감 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최 위원장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소비자보호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개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금융소비자보호법안 입법은 여전히 안갯속 

'금융소비자'란 금융거래의 상대방으로 금융업자와 직,간접적으로 금융서비스 상품을 거래하는 당사자를 말한다. 예를들어 은행의 예금자, 금융투자회사의 투자자, 보험회사의 보험 계약자, 신용카드의 신용카드 이용자 등이 포함된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이러한 금융소비자의 입자를 보완하고 불공정제도의 관행을 수정해 소비자와 금융기관 간 금융거래 기반 확보를 목적으로 고안된 법률이다.

금융회사에 적합성.적정성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금지, 부당권유행위금지, 광고규제 등 일부 상품에만 도입된 판매행위 원칙을 전 금융상품으로 확대 적용하고 이 원칙을 위반하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손해배상 입증 책임을 금융소비자가 아닌 금융사가 하도록 바꾸고 위법 계약에 대해선 해지권을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청약철회권이나 판매제한명령권, 분쟁 시 소송중지·조정이탈금지제도 등도 입법안에 담겨 있다.

현 정부의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지만 금소법 통과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상임위 의결(법안소위·전체회의)을 거쳐 법사위 의결(법안소위·전체회의), 본회의 의결까지 일정들을 거쳐야 한다.

당장 이달 22일 열리는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소위)에서 관련 사안이 논의될지부터 미지수여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논의를 서둘러 진행시키더라도 통상 국회 상임위 심의·의결 및 공포안이 정부로 이송되는데 최소 한 달에서 두 달 가량이 소요되고 공포까지 일주일이 더 걸린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올 해 안에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최 위원장을 비롯한 패널들은 금융소비자보호법안이 아직까지도 여야간 의견차로 국회를 표류하고 있는 것에 유감을 표하고 조속히 입법 추진이 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했다. 

◇ 금융소비자 사전적 보호제도 강화 방안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상품의 신뢰 문제를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아무리 상품·서비스가 좋아져도 금융은 신뢰를 뒷받침해야 한다"면서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할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공급자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IT산업의 발달로 소비자가 모바일 등으로 복잡한 금융상품·서비스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정보 공시와 설명 등이 공급자 관점에서 작성돼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주고 소비자 관점에서 긍정·부정 영향을 명확히 설명해 소비자의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은 △공시·고지·설명 의무 △적합성 원칙 △취약소비자 보호 등을 중점으로 금융회사의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소비자 구제방안 소송보다는 분쟁 조정이 유리 

토론회에서는 또 소비자 구제와 관련해 "민사 소송을 지원하기 보다는 당국이 나서 분쟁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후구제 제도의 목적과 국내 소송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민사소송 중심의 사후구제 제도의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가 금융사의 위법한 영업행위로 손해를 봤을 경우 민사 소송을 진행하면서 들이는 시간이나 비용을 감안할 때 금융소비자의 실익이 높지 않음을 지적했다. 

금융사에 비해 금융이해력이 떨어지고 계약 교섭력도 낮은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금융당국이 적극 개입하는 형태의 분쟁조정 제도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연구원 주최로 1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정책 토론회’.(사진=소비자경제)
금융연구원 주최로 1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정책 토론회’.(사진=소비자경제)

◇ ‘금융소비자 권익 향상’...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주제 발표에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금융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김은미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전임연구원은 “(한국의) 금융소비자 보호 수준은 세계적으로 낮지 않지만 제도적 장치가 시장에서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금융사의 설명의무 및 고령자 전담 창구 유뮤 조차 파악이 안 될 정도로 금융소비자 권리 인식조차 확산이 안 되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어떤 권리를 갖고 있는 지를 알리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금융비교사이트 역시 금융소비자가 이해하기 좋도록 실효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금융소비자 보호가 이뤄지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국민 노후 생활 부담도 경감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의 감독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50년간 50년 이상 성장 위주의 산업 현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똑바로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금융감독원의 감독기능 강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조 대표는 “금융사들이 금감원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어이가 없다”면서 즉시 연금 문제를 예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감원에서 판단을 내리면 금융사가 따라야 하고 지키지 않을 경우 강력한 행정 처분을 해야 하는데 민사상으로 소비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금감원이 이를 지켜보겠다는 식의 해결 방법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 번 발생한 민원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민원이 어떻게 처리 됐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소비자원 윤민섭 박사는 “사전보호제도의 규제를 세분화할수록 금융기관들이 면책 수단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면서 “사후 규제 단계에서 소비자가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 입증체계 전환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옴브즈맨을 도입해 분쟁 조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 중립적인 금융분쟁 조정원 설립의 필요성도 나왔다. 

최준우 금웅위원회 금융소비자국 국장은 “지난 7월 26일 금융소비자국으로 개편돼 초대 국장을 맡게 됐다”면서 “정부도 금융소비자보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금융소비자 종합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강조했다.  

◇ 금융소비자 ‘보호의 대상’인가 ‘시장의 주체’인가...'금융소비자 보호' 주제 무색해지기도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금융소비자 ‘보호’란 단어를 둘러싼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 금융위원장이 발언에 나서기에 앞서 한 금융소비자가 공개적으로 최 위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면서 “(금융위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말하는 데 금융소비자가 빠진 상태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이야기 하고 있다”며 ”한 번 만나 이야기 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금융소비자 ‘보호’라고 이야기 하는데 보호라는 단어는 금융소비자를 약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의미이다. 금융소비자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로서 당연히 누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용어 사용을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금융소비자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언제라고 이야기 하지는 못하지만 비서실에 연락해 달라”고 말하면서 “용어가지고 말할 게제는 아니다”며 금융소비자의 발언을 끊었다. 

참고로 1980년 1월 제정 공포된 소비자보호법이 2006년 소비자기본법으로 변경될 당시 소비자를 보호의 대상에서 소비의 주체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인식 변화가 담겨 있었다는 점에서 용어 사용에 대한 지적은 곱씹어 볼 의미가 있다. 

또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금융소비자의 발언에 대한 제재가 필요했던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주제가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모순됐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금융소비자의 요청에 대한 최 위원장 답변은 “앞으로 금융소비자 정책을 수립하는 방식을 소비자 참여형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는 것에 그쳐 그 진정성에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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