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신문=칼럼] 저는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하는 의사입니다. 아마도 평균적인 의사보다도 훨씬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하는 의사일 것입니다. 환자가 항생제를 써야하는 것 아니냐고 해도 괜찮으니까 약 먹지 않으셔도 된다고 보내는 경우도 많고 환자가 MRI 찍어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해도 괜찮으니까 기다려보자고 하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환자 상태에 때라 환자가 원하지 않아도 제가 항생제를 먹어야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제가 먼저 값비싼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보다는 저는 환자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저는 그것이 의학적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콧물 조금 난다고 다 항생제 먹이고 머리 아프다고 다 MRI 찍을 것 같으면 의학적 판단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하다는 근거가 있다면 하고 꼭 필요하다는 근거가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의학적 판단이라 생각했기에 환자들이 근거가 없는 두려움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괜찮다’라는 말로 안심을 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진료해왔습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은 일단 듣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시겠지만 이것이 의외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생각은 아닙니다. 우선 제 아들부터 이런 의사 아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학교에서 철인3종 경기 하듯이 축구 농구 야구를 하는 제 아들은 매일같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저한테 증상을 호소하는데 그럴 때마다 대부분 제가 내리는 의학적 판단은 ‘괜찮아’였습니다. 이미 웬만한 감기 증상 정도로는 아빠로부터 약을 얻어먹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제 아들은 이제 콧물 기침 정도로는 아예 얘기조차 안합니다. 아들은 친구들이 보기에도 뭔가 좀 아파보이게 붕대도 감고 약도 먹고 엑스레이도 찍고 싶어 하는데 저의 ‘괜찮아’ 한마디에 실망함과 함께 맨날 괜찮다고만 하는 의사 아빠를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놈아, 언제 내가 괜찮다고 해서 한번이라도 안 괜찮았던 적이 있었냐’ 라고 큰 소리 쳐봐도 ‘괜찮다’는 의사 아빠보다는 반창고라도 붙여주는 학교 보건 선생님을 더 신뢰하는 자가 제 아들입니다. 저희 어머니 또한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하는 의사 아들을 걱정하십니다.

“그렇게 맨날 환자들한테 괜찮다고만 해서 어떻게 장사(?)를 하냐. 이거 저거 문제 있다고 해야 환자들이 병원에도 자주오고 그럴 것 아니냐.”

뭐 어디 한군데라도 틀린 말이 있어야 반박이라도 할텐데 가슴 아프게도 어머니의 말씀은 틀린 말이 없습니다. 얼른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은 ‘괜찮다’라고 말하는 의사를 좋아할 것 같지만 실제로 진료 현장에 있어보면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괜찮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의사보다 조그마한 문제라도 크게 부풀려야 다른 병원에서 잡아내지 못한 것을 잡아내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을 멋지게 해결해주는 의사도 될 수 있습니다. 괜찮다고 하는 의사는 결국 아무것도 안 해주는 의사, 성의 없는 의사가 되기 쉽습니다. 반면 안 괜찮다고 말하는 의사에게 환자는 더 의존하게 되고 더 많이 의사를 찾게 되니 어지간한 경우 괜찮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안 괜찮다고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런 상황이 어머니 눈에도 뻔히 보이셨는지 고지식하게 환자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고 앉아 있는 아들이 항상 걱정이신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이나 어머니만 봐도 의사가 괜찮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꿋꿋하게 괜찮을 땐 ‘괜찮다’고 말해오던 저에게 얼마 전에 결국 안 괜찮은 일이 생겼습니다.

여느 감기 걸린 아이와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 돌이 좀 안된 아이였는데 콧물과 기침이 있다고 병원에 왔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증상도 없고 진찰 후 전형적인 바이러스성 감기 양상이라 언제나 그러하듯이 저는 괜찮다고 했고 약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아이는 수많은 감기 환자들 중 한 명처럼 저를 거쳐 갔고 그 후 열흘정도의 시간이 지나 그 아이가 다시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아이 엄마의 얼굴에는 실망과 원망의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날 밤에 애가 열이 펄펄 나서 결국 응급실에 데려갔는데 폐렴이라 그래서 그 날로 일주일동안 입원하고 그저께 퇴원했어요”

저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은 왜 그것도 하나 못 잡아냈느냐는 표정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는 엑스레이 하나 찍어보고도 다 알던데 당신은 왜 괜찮다고 해서 온 가족을 이렇게 고생시켰냐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엄마는 다행히 저를 다시 찾아왔기에 망정이지 지금까지 제가 괜찮다고 했던 수많은 아이들 중에 이처럼 안 괜찮았던 아이들의 엄마들은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며 돌팔이같은 의사라고 얼마나 저를 욕했을까요? 이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저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이 아이가 내 아이였다 하더라도 똑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한들, 진찰 소견에 따라 제가 했던 판단이 그 상황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라고 한들, 미리 감기약이나 항생제를 쓰는 것이 폐렴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진실이라 한들 그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이 폐렴정도가 아니라 더 심각한 병이었다면? 다행이 이 아이는 잘 회복이 되었다지만 더 심한 상태가 되고 사망에 이르는 일이라도 생겼다면? 내가 ‘괜찮다’ 했던 그 말 뒤에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던 이러한 안 괜찮은 일들을 실제로 제 앞에서 확인하게 되니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그 뒤로 괜찮다는 말이 안 괜찮아졌습니다. 나름 호기롭게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괜찮다’를 남발하던 저도 언젠가부터 괜찮다는 말보다 온갖 안 좋은 가능성을 다 얘기하고 있었고 환자를 치료하기보다 나를 방어하기에 급급한 진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괜찮을 때 진심으로 ‘괜찮다’라고 말 해줄 수 있는 환자는 저의 가족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 가족이 아닌 환자에게 내 가족을 진료하듯이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위험한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환자를 내 가족처럼 진료하겠다던 처음의 결심이 점점 더 현실과는 멀어지는 것 같아 ‘괜찮다’고 말하는 제 마음이 괜찮지가 않은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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