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최빛나 기자] 본인 동의 여부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출산 휴가를 위한 노동자의 임신 사실을 정부에 고지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15일 인권위에 따르면 이달 4일 열린 제33차 인권위 상임위원회에서는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이 올해 8월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 법률안'에 대한 의견 표명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출산휴가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용자에게 출산휴가 제공 의무를 고지하고, 사용자가 매년 해당 사업장의 출산휴가 사용 비율을 공시하도록 의무화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출산휴가 사용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휴가 사용을 촉진하자는 취지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임신 중인 여성이 있는 경우 출산 휴가를 줄 것을 사용자에게 고지하도록 하고, 사용자는 매년 사업장의 출산 휴가 사용 비율을 공시하도록 했다. 이를 토대로 노동부 장관은 일정 비율 이상의 출산 휴가 사용 기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이를 위해 개정안은 본인 의사에 반하는 경우만 제외하면 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의 진료 기록을 건강보험공단이 노동부 장관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여기서 인권위는 '본인 의사에 반하는 경우만 제외한다'는 단서가 개인정보 침해라고 봤다.

개인정보 처리를 위한 동의 방식은 정보 주체의 동의를 먼저 받은 뒤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옵트인(opt-in)’과 동의없이 먼저 개인정보를 활용한 뒤 당사자가 거부 의사를 밝힐 경우 이를 중지하는 ‘옵트아웃(opt-out)’으로 나뉘는데, 개정안은 정보 주체의 사전 동의없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옵트아웃’에 가깝다는 것이 인권위의 설명이다.

이에 인권위는 임신 사실 고지는 여성 노동자의 자기결정권에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표명하기로 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임신 여부는 개인정보보호법 상 건강, 성생활에 관한 정보로, 정보 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에 해당한다"며 "특히 사용자에 대한 여성 노동자의 임신 사실 고지 여부 결정뿐만 아니라 고지 시기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본인이 원하면 사용자에게 출산 휴가를 쓰겠다고 임신 사실을 알리면 된다"며 "출산 휴가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워낙 민감한 정보인 만큼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기보다는 다른 제도적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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