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가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에게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못하도록 회유하는 등의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전경. (출처=한국타이어)
 (출처=한국타이어)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한국타이어 제조 공장에서 근무하다 폐암으로 숨진 노동자의 유가족에게 1억 1천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부(재판장 김은성 부장판사)는 11일 한국타이어 전 직원 안모 씨의 아내 오모 씨 등 유가족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항소심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이번 판결에 한국타이어에 대한 국정감사에도 더욱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 법원, 한국타이어 폐암 사망 노동자에 1억1천만 원 지급 결정 

한국타이어에서 생산관리팀에서 15년간 근무했던 안 씨는 지난 2009년 9월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 끝에 2015년 숨졌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안 씨가 근무 중 유해물질에 중독돼 폐암에 걸렸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그 해 안 씨의 유가족들은 한국타이어가 근로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안전 의무를 위반했다며 한국타이어를 상대로 2억 84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지난해 1심에서는 “안 씨의 아내 오모 씨에게 1466만 원을, 자녀 3명에게 각각 294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국타이어는 타이어 제조와 발암 물질 노출의 연관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며 “마스크 착용 독려 행위만으로는 충분히 안전 배려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한 안 씨의 책임도 일부 있어 회사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2심 재판부는 1심보다 많은 1억 10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해 1심 재판부보다 한국타이어측의 과실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편재 판결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판결문을 보고 향후 대응 방향을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산재협, 산재사망 노동자 170명, 총 질환자 2611명

한국타이어 입장에서는 이번 법원 판결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안 씨에 대한 법원 판결을 인정할 경우 선례를 남길 수 있는데, 한국타이어산재협의회에서 주장하는 산재노동자 숫자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 문제는 지난 2006년-2007년 15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돌연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산재를 주장하는 이들은 훨씬 이전부터 존배한다. 

한국타이어 생산직 노동자로 16년을 근무하다 지난 95년 췌장암으로 숨진 나 씨의 아내 김 씨(67세)는 “44살에 남편을 잃고 안 해 본 일이 없다. 한 때 죽을 힘으로 집회도 참석하고 억억을함을 호소했지만 안 되더라”며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는데 명확히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국타이어 산재 노동자 논란은 마치 오래된 논란을 매듭짓지 못한 채, 미제 사건처럼 각종 의혹과 논란이 무성해져만 가고 있다. 

현재 한국타이어산재협의회가 주장하는 산재사망 노동자 숫자는 170명이다. 

산재협의회 관계자는 “공식 집계는 168명이었는데, 최근 2명이 더 밝혀지면서 170명으로 집계된다”며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그 숫자는 근거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그는 “추정컨대 회사를 다녔던 노동자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년 뒤에 교통사고나 자살, 개인사, 노환으로 사망한 숫자까지 다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최근 공개된 한국타이어 유해화학물질 취급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부 특수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총 질환자 숫자는 2017년 2611명으로 노동자 4500명의 50%를 넘었다. 

게다가 그 숫자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11년 776명, 2012년 653명, 2013년 633명, 2014년 1996명, 2015년 2396명, 2016년 2,492명,  2017년 2611명으로 늘었다. 

이에 대해서도 한국타이어는 “2014년 이전과 이후의 비교 항목이 다르다”고 항변했다. 2014년 이후 야간작업관련질병 항목이 추가되면서 추치가 증가한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항목추가로 인한 수치 증가를 제외하더라도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질환자 숫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고려할 때 한국타이어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어떤 물질 사용 하길래? 

산재협은 타이어 생산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HV-250이란 물질 속에 포함된 벤젠, 톨루엔, 자이렌, 즉 다환방향족 탄화수소, 카본블랙에 의한 질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물질들은 모두 1급 발암물질로 벤젠은 흡입, 섭취, 피부 또는 눈 접촉을 통해 인체내로 흡수되며 혈액, 순환기, 신경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타이어측은 “그런 물질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도 “노동청이나 근로복지공단이 검사를 하는데 제조업을 할 때 정부가 지정한 법들을 다 준수하고 있고, 그 이하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재협은 “타이어를 제조할 때 벤젠이나 솔벤트가 안 들어가면 제조 자체가 안 되는데도 한국타이어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며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유착관계 있었나? 

한국타이어 산재 노동자 관련 논란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대전지방고용노동청와 한국타이어의 유착 의혹까지 일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해마다 같은 지적을 받아왔음에도 한국타이어 공장의 산재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탓이다. 
 
산재 은폐 의혹과 관련해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중대재해 등 처리 시 사업장내 하도급 업체 여부 등을 포함해 전산입력에 오류가 없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자료 제출 시 확인절차에 신중을 기해 재해 은폐의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2016년 산재 은폐 최다 사업장을 기록돼 있다. 

특수건강검진 왜곡 논란도 일고 있다. 산재협 관계자는 “7월 금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내출혈로 사망했는데 2008년 특수건강검진 자료에 보면 유관찰자로 되어 있다. 관리가 안돼서 10년 만에 죽은 것이다. 그런데 유해인자가 음으로 되어 있었다”면서 “소음 때문에 사람이 뇌출혈로 죽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나마 특수건강검진도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한국타이어와 함께 산재를 은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타이어는 이와 관련해서도 “요즘 같은 세상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산재협은 지난 8월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김학용의원님에게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태와 집단질환자 발생에 따른 국정조사를 요청했다. 

이번 국감에서 조현범 대표는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는다. 한국타이어 관련 감사에는 생산성본부 팀장 등 2명이 참고인으로 출석하게 된다. 

산재협 관계자는 “한국타이어 산재 노동자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고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확한 역학조사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모든 유관기관 - 한국타이어, 노동청,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의, 건강검진기관 선병원에 대한 은폐 경위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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