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무역 오창화 대표는 맛있는 과일과 함께 정성껏 쓴 편지를 함께 보낸다. 이웃들이 보내온 답장은 그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진원무역 오창화 대표는 맛있는 과일과 함께 정성껏 쓴 편지를 함께 보낸다. 이웃들이 보내온 답장은 그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며 아이를 키우는 저보다 더 아픈 아이를 키우는 저를 보는 엄마의 마음을 엿보게 됐습니다. 부모 마음이 그렇잖아요. 주어도 주어도 부족한 것. 보내주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온가족이 바삭하고 아삭하게 웃었습니다.”

진원무역 오창화 대표가 한 싱글맘으로부터 받은 편지의 일부분이다. 오 대표의 서랍 속엔 이처럼 싱글맘, 싱글대디들로부터 받은 편지들이 수북하다. 

모두 삶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 흔적들이다. 진원무역 오창화 대표는 “고아와 싱글맘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위해 기업을 한다”고 말한다. 

◇ 오창화 대표 "진원무역의 존재이유 사회적 약자 돌봄" 

진원무역은 과실·채소 도매업체로서 2천억 원에 육박하는 매출실적을 올리고 있는 건실한 중견기업이다. 지금은 아보카도, 자몽, 레몬 등 다양한 수입 과일과 국내 과일을 함께 취급하지만 시작당시 주 수입원은 오로지 바나나 수입이었다. 

1979년 아버지 오영훈 회장이 수입과일 유통업체로 설립한 후 격변하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온 몸으로 맞닥뜨리며 40년 세월을 이어온 셈이다. 

1980년 이전 한국은 쿼터제로 바나나 수입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배를 100박스 수출하면 바나나를 100박스 수입하는 식이다. 조실부모하고 일찍 장사에 눈을 뜬 오영훈 회장은 바나나 수입을 하면서 회사의 기반을 닦아 나갔다. 

이후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모든 농산물 수입이 금지된 후 오영훈 회장은 진주의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바나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전문가들에게 직접 배운 기술과 노하우를 익힌 덕에 91년 바나나 시장이 오픈돼 업계가 술렁이던 때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창화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1995년 말 ‘돌’바나나 회사에 입사했다. ‘돌’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의 이유로 일본법인인 ‘이토추상사’에 매각됐다. 하지만 오 대표가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미국법인이었다. 

오 대표는 ‘돌’회사에서 근무했고, 아버지는 ‘돌’과 10년 계약을 맺고 바나나를 수입해 국내에서 팔고 있었으니, 부자가 모두 바나나 전문가였던 셈이다. 

그러다 ‘돌’과 ‘진원무역’의 10년 계약이 종료되는 2002년, 오 대표는 진원무역으로 오게 됐다. 당시 고민을 컸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끌어가든 진원무역을 이어받아야할 당위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나나 수입원밖에 없던 진원무역이 ‘돌’과 맺었던 계약이 종료되니 무엇을 하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직원 20여 명을 책임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생각보다 컸다. ‘돌’에 입사해 지사장과 동급 타이틀을 얻기까지 쌓아올린 성과와 인정 등을 내려놓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002년 ‘돌’과 계약이 끝나면서 아버지가 이제 진원무역을 이어달라고 했는데, 내가 왜 굳이 돌을 그만두고 진원으로 와야 하나 생각했어요. 굳이 진원무역이 아니라 해도 이 일은 누군가 할 것이고, 제 입장에서는 진원에 오는 것보다 돌에 있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이죠”

그런 오 대표가 ‘진원 무역’에 오기로 마음을 굳힐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고아와 과부를 돌보자“는 내적 울림 때문이었다. 청소년기부터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고민이 많던 오 대표였다. 그런 그에게 어떤 일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해야만 하는 목적과 당위성이었다. 결국 ‘고아와 과부 돌봄’이라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갈급함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진원무역 오창화 대표가 소비자경제와 1일 인터뷰 중이다.

 

◇ 쌍둥이 입양 후 다시 찾은 마음 ‘나눔’ 

진원무역은 보육원 아이들과 미혼모 가정, 독거노인 등 12개 쉼터에 매주 과일을 보내는 등 사회적 약자 지원에 적극 나선다. 

물론 사업을 이어받은 후 초창기엔 진원무역을 성장시키는데 몰두하느라 ‘고아와 과부 돌봄’이란 사업의 목적이 뒷전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오 대표가 첫 마음을 되살릴 수 있었던 계기는 2011년 두 아이를 입양하면서부터다. 

유난히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오 대표는 98년 결혼당시 아내와 최소 5명을 낳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1999년과 2000년 아들 둘을 연년생으로 낳은 후 8년 만에 셋째를 낳고, 또 연년생으로 넷째를 낳았지만 어려운 출산으로 하루만에 천국에 갔다. 이후 더는 아이를 갖기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여 부부는 쌍둥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의 반대는 예상보다 극심했다. 결국 포기가 아닌, 한 번에 둘을 입양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또 다시 허락을 받는 것이 힘들 것이니 한 번에 쌍둥이를 입양하기로 한 거죠. 때마침 타이밍이 맞았고, 2011년 딸 둘을 입양했습니다”

“자녀를 가슴으로 낳든, 배로 낳든 사랑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오 대표의 눈빛이 반짝인다. 아이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흐뭇한 아버지의 미소가 번진다. 

쌍둥이를 입양하고 자녀 다섯을 키우는 오 대표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는 “혈연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관계”라고 힘주어 말한다. 

“첫째는 어딜 가든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쌍둥이를 케어하지 못하는 일이래요. 그 정도로 예뻐하고 둘째는 꾸러기여서 쌍둥이와 무척 즐겁게 놀아주고요. 매일 와글와글 시끄러운 집이랍니다”

◇ 우리가 사는 세상 “생명의 소중함 아는 사회이길” 

진원무역 오창화 대표 

그의 ‘나눔’ 행보는 늘 진일보 한다. ‘진원무역’을 통해서 뿐 아니라 개인 사재를 터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최근 소천한 아버지의 장례식에 들어온 1억여 원의 조의금 전액까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후원했다. 그것이 오 대표가 아버지를 추억하고 기리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오 대표는 두 아이를 입양한 후 대한사회복지회 입양가족모임인 미뿐울의 회장직을 맡았고, 전국입양가족연대 회장직도 수행 중이다. 

전국입양가족연대는 올해 6월 설립된 고아권익연대와 MOU를 체결해 입양 캠페인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오 대표는 미혼모의 존재 역시 따뜻하게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은 버려진 아이가 아닙니다. 미혼모들을 많이 만나보면 어느 누구도 아기를 버린 엄마는 없었어요. 미혼모들이 아기를 보낼 때는 아기를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과 사는 것보다는 더 나은 곳으로 의탁한 것이거든요. 아프지만 눈물로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엄마가 자신의 역할을 완수 했다고 생각하고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말해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성인이 되면 엄마를 꼭 만날 것이다. 그 때 엄마를 꼭 안아주면서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요.”

◇ “국세청조사요? 깨끗하게 될 기회였죠”

‘입양아’는 버림받은 아이가 아니라 새롭게 선택받은 생명이라고 말하는 오 대표는 경영에 있어서도 소신이 분명하다. 그 분명한 소신은 2014년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진원무역은 2014년을 무척 힘겹게 보냈다. 

매출이 500-600억이던 회사가 ‘돌’과 계약이 종료된 후 80억 아래로 줄었다 2014년 2천억 가까이 늘자 국세청의 의심을 사게 됐다.

국세청 조사 4국 직원 20여 명이 급습하다시피 들어와 조사를 시작하면서 오 대표의 마음에든 생각은 “지금이 깨끗해질 기회”였다고 한다.  

“조사를 나온다는 것은 혐의점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인데, 사업을 하면서 직원들이 실수한 것도 있을 것이고, 잘못행한 것이 있을 수 있잖아요. 깨끗하게 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세금이 나오기를 기도했고, 대한민국에 세금 내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자고 생각했습니다.”

70여일 간 조사를 받을 동안 업계 관행대로 수임을 맡아준다는 전 고위층 간부도 있었고 국세청 4국 직원을 연결시켜 줄테니 혐의점이나 알아보라고 권유한 지인도 있었지만 오 대표는 그 모든 권유를 뿌리쳤다. 

오직 한 가지 이유였다. “깨끗하게 될 기회” 

“법이 바뀌면서 애매한 것들까지 다 뒤져서 탈탈 털렸죠. 국세청 과장님은 제게 ‘조사 나가면 대부분 수임한 분과 내고를 하는 게 일인데, 어떻게 전화 한 통 없었는지 진원무역은 참 빽도 없나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유를 말씀드렸더니 '당신들이 실수한 것은 우리가 다 잡아낸 것 같다. 이렇게 경영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셨죠.”

그해 진원무역은 관세청조사를 받고, 같은 해 바나나농약 사건이 터지면서 식약처 조사까지 받았다. 

조사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기업을 경영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듣게 됐으니 2014년은 힘든 해였고, 오 대표의 경영 철학을 더욱 확고히 해 준 해이기도 했다. 

사업을 하면서 두려움이 없지 않다. 지난해 진원무역은 처음 적자를 냈다. 직원 130여 명의 생계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는 늘 가볍지 않다. 그래서 늘 완벽하진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진중하게 내딛는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더 중요한 ‘가치’를 상실하지 않도록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진 후 그에게서 이런 문자가 왔다. “회사보다는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싱글맘 가정의 필요가 더 홍보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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