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엄마들' 저출생문제 해결을 논한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6월 9일 정치총회를 열었다.(사진=정치하는 엄마들 제공)
정치하는 엄마들이 6월 9일 정치총회를 열었다.(사진=정치하는 엄마들 제공)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엄마들은 몸으로 느낀다. 육아에는 모든 문제가 겹쳐 있다는 사실을. 노동, 보육, 교육, 주거. 어느 것 하나 관련되지 않은 게 없다. 부모가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까닭에 아이들은 유아동기 때부터 학원을 전전한다. (중략) 노동시간이 길고 저녁 없는 삶을 사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헬조선’의 울타리를 조금이라도 뛰어넘길 바라며 교육에 헌신한다.”

엄마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며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담은 책,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의 일부분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저 출산 대책 카드로 꺼내든 ‘출산주도성장’ 얘기에 분노한 여성들의 화가 한동안 가라앉질 않았다. 그 이유를 이 책의 단 몇 줄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를 낳으면 2000만 원을 주고,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가 1억 원을 주겠다”는 정치인은 얼마나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전문가들은 저 출산은 헬조선의 종합적인 결과로 드러난 현상이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지옥 같은 현실을 내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아마도 민중의 삶을 이해 못하는 정치인에 대한 환멸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소비자경제>가 ‘정치하는 엄마’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고은, 조성실 그리고 장하나 전 의원을 만나보았다. 

◇ 양육 한 번 안해 본 자들이여 저출생을 논하지 말라! 

정치하는 엄마들의 태생은 한겨례’에 칼럼을 연재하던 장하나 19대 국회의원의 호명에서 시작됐다. 장 전 의원의 글에 공감하며 SNS를 통해 소통했던 엄마들은 장 의원의 “우리 만나자”란 말 한 마디에 2017년 4월 11일 30명이 모였다. 독박육아에 외롭고 힘들었던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자며 모여들기 시작하자, 얘기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6월 11일 창립총회를 열고 일여 년을 이어오는 동안, 다양한 목소리를 내 온 그들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이들의 공식 모임은 월 1회 정기모임 외, 대부분 SNS를 통해 이뤄진다.

IT기술의 발달이 이들 모임을 가능케 했다. 이처럼 기술발달이 미래 직업과 인간의 생존방식 자체를 모두 바꿀 것이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4차산업혁명을 열어가는 이때에도 여전히 ‘엄마’란 존재에 대한 인식 변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신선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니.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들의 이권 추구에 몰두한다고 오해해선 안 된다. 쏟아지는 교육정책과 보육정책에도 더 이상 개선되는 것이 없는 현실에 당사자 정치를 외치는 이들의 활동은 가히 공익적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인 ‘가정’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엄마’란 존재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머릿돌 같은 존재였음을 자각케 해 준, 똑똑한 엄마들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 이고은 대표, “독박육아 아닌 집단 모성 발휘하는 사회로 가자” 

정치하는 엄마들의 이고은 공동대표는 4살 6살 아이들의 엄마다.  쉴 새 없이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큰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로서만 살아가는 동안 세상과는 단절되는 느낌은 깊은 우울로 빠져들게 했다. 그는 그것을 “세상에서 나의 이름이 지워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남성들과 대등한 교육을 받고 경쟁에서도 져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떳떳이 언론사 기자로 입사해 혹독한 훈련도 다 거쳐 10년차 베테랑 기자가 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는 순간 병행이 불가능함을 느꼈다. 

결국 2016년 퇴사! 친정도 시댁도 멀어 누구도 아이를 대신 봐주기 힘든 상황에서 남편은 돈을 벌고 자신은 아이를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란 결론을 내렸다. 

표면적으로는 자의적인 퇴사였지만 그것은 분명 ‘강요된 선택’이었다. 둘째 딸 아이도 어쩌면 같은 삶을 살 것이란 슬픔과 걱정이 밀려왔다고 한다. 누구도 지나치거나 앞 선 걱정이라 탓할 수 없다. 세상은 초고속으로 바뀌어가지만 여전히  ‘엄마’란 이름의 이들은 ‘엄마의 엄마’가 걸어온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애를 낳아보니까 애를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당연히 커졌어요. 워라밸, 삶과 일을 균형을 맞추고 싶은 열망이 있었죠. 하지만 일이냐 아이냐를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사회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런 사회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커졌어요.

그것을 바꾸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정치적, 정책적 사회시스템과 규칙이 그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팩트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신생 언론사에서 기자로서 일을 하고 ‘정치하는 엄마들’의 공동대표직도 수행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주된 업무는 ‘엄마’다. 

나머지 일들은 아이 둘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 보낸 후 남는 오전 시간과 아이들이 잠든 밤 시간에 이뤄진다.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씻고 치우고 애들 등원 보낸 후 아이들이 돌아오는 1시 30분 전까지가 오롯이 제 시간이에요. 그 전에 제 기사도 쓰고 볼 일도 보고...”

점심시간을 잠시 짬을 내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이 대표의 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독박육아를 한다고 해서 세상에 자신만을 배려해 달라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어렵게 다시 시작한 기자일과 활동도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겐 선심 쓰듯 하는 배려가 아닌, 함께하는 누군가가 절실해 보였다. 

모두가 각자의 아이를 키우는 시대에 정치하는 엄마들이 “모두가 엄마”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집단 모성’을 발휘하는 세상이 된다면,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기업과 세상의 시스템들을 디자인해간다면, 더 이상 ‘헬조선’이란 말은 나오지 않게 될 것이란 믿음. 그 믿음과 책임의식을 함께 갖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정치하는 엄마들이 2017년 11월 31일 아동수당, 비리유치원 명단을 공개할 것으로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사진=정치하는엄마들 제공)

◇ ‘돌봄’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일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는 ‘돌봄’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나 인식이 자리잡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런 존재임을 새록새록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 누군가 자신을 “애만 보는 사람”으로 취급하면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돌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이중성이다. 

“돌봄을 하거나 받는 일은 늘 2류 시민이란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돌봄을 하는 노동자는 노동현장에서 경쟁에서 도태됐기 때문에 저임금을 받고 돌봄을 하는 사람처럼 취급되고 돌봄을 받는 사람은 장애인이나 모자란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취급되죠. 그럼에 알고보면 우리는 아기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돌봄 망 안에서 살아가잖아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조 대표가 말하는 ‘돌봄’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입혀주고 놀아주고 같이 놀고 요리하고 살림하고 그런것들 이잖아요. 그런데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어요. 가사 시간에 배웠지만 그건 기술적인 것이었지 그것의 가치나 그것이 나의 일이고 공동체의 일이라는 것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돌봄이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일” 이라는 새로운 해석은 자연스럽게 저출생의 문제를 수많은 사회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저출생 문제는 단순히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없다. 누구나 돌봄을 받고 또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회구조로 만든다면, 누구라도 아이를 낳고 싶어질 일이다. 아이를 낳고 싶은 세상은, 매우 복합적인 사회 시스템이 건강한 철학과 맞물릴 때에만 올 수 있는 세상이다. 저출생의 패러다임은 엄마들의 목소리를 통해 바뀌어가고 있다. 

조 대표는 작언 언어 습관 하나부터 바꾸어보자 제안했다. 

“저출산고령사회라고 하는데, 출산은 출산하는 사람에 맞춰져 있잖아요. 출산 행위를 여성이 하기 때문인데 저출생이라고 하면 태어나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죠. 그런 용어부터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SNS를 통해 소통하던 '정치하는 엄마들'이 4월 11일 첫 만남을 갖고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사진=정치하는엄마들 제공)
SNS를 통해 소통하던 '정치하는 엄마들'이 4월 11일 첫 만남을 갖고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첫 만남에서 장하나 전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사진=정치하는엄마들 제공)

◇ 장하나 전 의원, “아이낳고싶어지는 세상요? 바로 ‘인권감수성’ 높은 사회”

장 하나 전 의원에게 전직 국회의원이란 이름은 ‘정치하는 엄마’를 시작하는데 있어 우려되는점이기도 했다. “전직 의원의 또 다른 활동 아냐?”라는 오해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다. 

하지만 장 전 의원을 알고 나면 정치인 장하나가 당사자 정치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당사자가 정치에 뛰어들었음을 알게 된다. 

엘리트 의식이나 겉치레는커녕,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광화문 한 복판에 털썩 주저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의 소탈함은 정치인일 때도 마찬가지였고 엄마로 살아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가 낮아서 그래요. 최저임금 당사자이고 노동문도 엄마의 문제도 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장 전 의원은 저출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무엇을 꼽겠느냐 묻자, 고민 끝에 ‘인권감수성’이라 답했다. 

오랜 고민이 있었을 터인데, 단번에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저출생 문제는 단순치 않다. 또 그만큼 ‘인권감수성’이 우리 사회에 가장 결여됐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장 전 의원도 아이들을 얼마나 존중하고 평등한 인격체로 돌아보는가를 스스로 시시때때로 점검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동도, 교육도 ‘인권’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들을 잃은 것 같아요. 노동 현장에서, 갑질 논란이 계속 일어나잖아요. 갑질을 하는 사람문제기도 하지만 힘없는 자들,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도 자기 권리를 위해 싸우거나 항변하는 데는 무척 힘들어 해요. 

저도 맞고 자란 77년생이고 존중받은 기억도 있지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맞고 자랐죠. 그러다보니 다시 공부하지 않고 배우려들지 않으면 인권감수성이 생겨날 수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저는 노동을 얘기하고 인권을 얘기하는 활동을 해왔고 국회에 있을 때 그런 의정활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도 아직 부족해요. 저도 가끔은 여자라서, 아줌마라서, 당하는 차별에 무척 순응하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장 전 의원은 임신기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졌던 죄의식을 되새겼다. 

“칼럼에서도 썼지만 임신하고 되게 죄스러운 거예요. 아이를 출산하고 2개월 정도 자리를 비웠는데 미안하고 죄스러운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드는 거예요. 한 인간이 존엄하다고 매일 얘기하는데 내 아이가 내 일보다 안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국회의원 아닌 뭐라해도...이 아이의 존엄성은 한 인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도 그만큼 감수성이 떨어졌던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다시금 저를 고민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정치하는 엄마들이 장시간 보육기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엄마들이 원하는 건, 아이를 맡길 권리가 아닌, 키울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이다. 결국 일과 가정의 양립이 보장되는 사회다. 

“자꾸 우리 단체를 오해하는 게,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사회로 뛰쳐나가고 싶다. 혹은 육아에 대한 피로도를 다 국가로 돌리고 싶은 단체처럼 댓글도 달리고 혹은 직접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희가 말하는 것은 결국 경이로우면서도 중요하고 환희가 있는 일이라면 엄마만 해서는 안 되고 아빠와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거예요. 식물하나를 길러도 노력이 필요한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어요.“ 

끝으로 정치인 장하나와 엄마 장하나, 둘 중 어떤 직업이 더 힘이 드느냐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런 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엄마 장하나죠. 정치를 좋아하고 자부심도 있고 지금도 정치하는 엄마들과 정치하고 있잖아요. 여의도에서 뱃지를 안 달고 있을 뿐이지. 그런데 직업 정치인들, 특히 남성이 20대 국회에 83%이고 평균 재산이 41억에 평균 나이가 55.5세라고 해요. 서로 소통이 쉬울리도 없고 그렇게 행복한 직장만은 아니에요. 국회도 바뀌어야겠죠. 그렇다고 엄마 장하나는 쉽냐. 더 힘들어요. 엄마만큼 힘든 직업을 찾으라면 정말 몇 개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치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암 걸리는 스트레스고 아이 키우면서도 열불나는 일들이 많지만 엄청 저를 행복하게 해주고 웃게 해주거든요. 육아하다 암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다르고 아이는 미래의 희망이 있잖아요. 당연히 엄마가 훨씬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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