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윤정 방송작가 노동조합부지부장

이윤정 방송작가 노동조합 부지부장
이윤정 방송작가 노동조합 부지부장이 2017년 11월 11일 방송작가 노조 출범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기조에 맞춰 공공부문 정규직화 전환이 한창이다. 서울시 산하의 교통방송도 노동특별시를 표방하는 서울시 정책에 따라 내년 7월 재단설립을 목표로 프리랜서 방송 인력들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프리랜서 인력의 정규직 전환을 이루는 첫 사례인 만큼 주목도도 높고 매우 중요한 실험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정규직 고용 사례가 전무한 작가 직군의 정규직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TBS의 정규직 전한 대상은 272명이다. 교통방송 작가 약 90명 중 10%에 해당하는 9명만이 정규직이 될 수 있다.  

라디오 청취율 1위를 달리고 있는 TBS메인 시사 프로그램의 작가이자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 지부와 TBS지부의 부지부장을 맡아 프리랜서 언론인 고용안정의 중요성을 외쳐온 이윤정 작가를 <소비자경제>가 만나봤다. 

◇ 세상의 부조리에 눈 뜨고 자신이 당하는 부당함에 눈 감았다. 

이윤정 작가는 2003년 MBC 공채 작가로 선발됐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건축 설계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크고 웅장한 월드컵 경기장을 짓기 위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철거민들의 눈물과 한을 마주한 뒤, 진로를 단 칼에 수정해 버렸다.

MBC에서 그것도 메인 시사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며 각종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정의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감격은 무척 컸다. 하지만 곧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갓 들어온 막내작가에겐 자료조사부터 온갖 잡다한 업무가 쉬지 않고 떨어졌다.

피디들이 퇴근하면, 그 때부터 막내 작가는 제 2의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방송 테잎 내용을 받아 적는 ‘프리뷰’를 마치고 나면 새벽 2시. 별보고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하는 생활을 이어가다 결국 그는 스스로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이 상태로 일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몰려왔다고 한다. 

“잘 해내야 글을 쓰는 작가로 입봉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 시피 하며 일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심장이 너무 많이 뛰는거예요. 잠도 안자고 일만 했으니 당연한건데,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약을 먹을 게 아니라 잠을 자라고 처방을 내리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도 일을 그만 들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죽으면 저는 괜찮은데 우리 엄마가 너무 슬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생명보험에 들었죠”

당시 이 작가의 급여는 150만 원 정도였다. 매일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를 타고 방송국(여의도)에서 집(송파)으로 귀가하는데 만도 한 달에 수십 만 원이 들었다. 생활이 안 됐지만 “부당하다”는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방송 작가는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직업이었고 곧, "나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합리화해 나가게 됐다. 선배들도 “부당함을 말하기 전에 실력을 키우라”는 말로 채찍질 했다. 

세상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부당함에 맞서지만 정작 자신의 부당함에는 눈을 감으며 견디다보니 꽤 인정받는 메인 시사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부당함을 말한다. 1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내일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다고 말한다. 

프리랜서 언론인 중에서도 작가는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비에서 급여를 받는다. 급여도 고용여부도 피디의 재량이란 뜻이다. 그래서 PD의 연출력 중 하나가 능력 있는 작가를 채용하는 일이란 생각도 뿌리 깊다. 

“만약 가을 개편에 피디와 사이가 안 좋아서 제가 해고되거나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저는 그날로 백수가 되는 거잖아요. 정규직은 매 년 임금이 인상되고 노조가 있고 사람의 삶이 보장되고 정년이라는 것이 있고 몸이 아프면 산재가 되고 건강보험이 있고, 사회안정망들이 있어서 그 사람을 그물망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해주지만 프리랜서는 그게 안 되니까 잠을 줄이고 건강을 포기해요. 이런 삶이 지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언론인의 고용 안정이 방송의 질 높일 것"

(자료=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2017년 11월 11일 작가 노조가 출범했다. 프리랜서 작가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꽤 핫 했다. 

이 작가는 방송작가 노조의 모체가 된 방송작가 유니온의 활동을 지켜보다 함께하게됐다. 

15년 전, 자신이 하던 고민을 똑 같이 하고 있는 후배들을 보며, 꽤 세련된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동료들을 보며 “이들을 격려를 해 줄 것이 아니라 이 일은 내가 나서야 하는 일이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 작가는 ‘방송작가 유니온’의 존재 이유에서 프리랜서 언론인의 정규직화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에서 2012년과 2013년, 그러니까 박근혜 정부 시절 방송 파업을 했는데 파업이 영향력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상당부분이 외주화 되어 있었고 PD들이 하던 업무의 상당 부분을 사실상 작가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파업을 해도 방송이 멈추지 않으니 언론 노조가 깨닫고 2014년도에 언론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 부문을 조직화 한거죠. 그런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게 방송작가 유니온 이었어요.”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고자 할 때, 방송사 내 비정규직 언론인은 가장 먼저 잘려나갔고 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9년간의 방송개악을 막지 못한 데는 비정규직 언론인의 고용불안이 일정부분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확신한다. 지난 정권 9년간 방송사들을 계속 떠돌아야 했던 그의 주장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소고기 집회 현장 등, 핫한 클립을 만들다 해고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차례 정권 성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됐지만 그는 ‘해고 언론인’ 소리도 듣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또 다시 절실히 느껴야 했다. 

2017년 11월 1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가 출범했다. 

◇ 관행이란 이유로 합리화해 온 방송가 부당한 현실 바꿀 때

이윤정 방송 작가 (사진=소비자경제)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의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나쁜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만드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공공부문이 앞장서 본을 보이겠다는 데 있다. 

교통방송 비정규직 방송 인력의 정규직화도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첫 사례가 어떻게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방송계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통방송은 내년 7월 재단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고 방향을 제시하고자 올 해 1월, 전국언론노동조합 TBS 지부가 프리랜서 인력을 중심으로 출범했다. 

이윤정 작가는 “청취율 1위 프로그램 작가를 노조한다는 이유로 자르진 않겠지”싶은 마음에 용기도 났다고 한다. 하지만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작가 업무를 다 수행해 내야 하는 중에 노조 가입 대상을 찾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의견을 모으고 사측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죠.” 

그는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관행이라는 이유로 합리화해온 방송가의 부당한 현실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이기 때문” 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재차 이렇게 강조했다. 

“제 동료에게 정규직이 되면 가장 하고 일이 무엇이냐 물으니 둘째를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하다 못해 출산율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요. 이 사례가 잘 정착되면 10년 후쯤 방송 작가를 포함해 방송사 언론인들의 고용은 매우 좋아져 있지 않을까요? 방송의 질은 두말할 것 없이 좋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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