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정부가 지난해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올 상반기까지 1년여 간 비정규직 13만2673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하지만 취지와 다르게 정규직 전환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면서 기관마다 논란이 새어나오고 있다. 특히 파견·용역은 기간제 노동자보다 소속 업체와의 관계가 복잡해 정규직 전환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 한전 검침분야 자회사 설립 가닥...이외 분야는 아직 오리무중  

한국전력 노사전문가협의회가 30일 전기검침원 5천200명의 정규직 전환을 자회사 설립으로 추진키로 합의했다. 한전과 검침업무 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검침회사는 대상휴먼씨·한전산업개발·새서울산업·제이비씨·신일종합시스템,그린씨에스 6곳이다. 

이들 하청업체가 맡고 있는 검침, 송달, 단전 등의 업무 중 일차적으로 검침 분야 노동자들만으로 구성된 자회사가 설립되는 것. 

직접고용과 자회사 설립 중 전환 방식이 결정되면서 검침분야에서 만큼은 실마리가 풀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애초 5월까지는 전환 방식을 정리해 후속 단위의 실무 협의를 하려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행이 예정보다 늦춰지면서 전환 방식을 결정하는 일은 한전 입장에서도 매우 시급했다. 직고용과 자회사 설립 방안 중 하나를 빨리 결정해야 다음 논의가 진전될 수 있었던 이유도 컸지만 협상이 길어질수록 야기될 혼란도 큰 탓이다. 

특히 정규직 전환을 추진 중인 가운데 용역업체 입찰 공고가 뜨면서 입찰비리 논란까지 불거져 나왔다

한전 관계자는 “입찰비리는 절대 없었다"면서 입찰공고를 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작년 11월 하청업체들의 용역 계약이 만료됐다. 정부 승인 하에 6개월이 연장됐지만 협상이 지연되면서 어려움이 따랐다. 국가계약법에 위반되지 않고 또 다시 연장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했다”면서 “계속 연장만 하게 되면 오히려 입찰을 기다리던 경쟁 업체들이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며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연장 대상 인원은 1천200명이다. 용역 회사가 바뀌더라도 1천200명의 고용은 그대로 승계가 돼, 정규직 논의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므로 특혜 시비와 국가 계약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연장할 필요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최근에 그런 부분에서 혼란이 발생하니까 고용노동부에서 공문을 통해 관련 부처들과 협의해서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적어도 전환 방식 정도는 정해야 계약 기간을 얼마만큼 연장할 것인가를 추정이라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찌됐든 한전 입장에서 보면 검침 노동자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는 큰 산 하나를 넘은 셈이다. 

검침원들을 자회사로 고용승계 하기로 결정 하면서 향후 관리자, 경영진은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침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도 기존대로 이어가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전문가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검침원들이 대부분 경력자들이고 파견용역‘이라고 해도 전문성이 인정돼 급여가 제법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협약식에서 체결하는 협약 조건에는 기존의 근로 조건을 그대로 가져오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전 관계자도 “검침 노동자들의 임금 체계를 최소 임금을 보장해주는 안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전이 검침원들의 정규직전환 방식을 직고용이 아닌, 한전 사회사 형태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데는 한전측의 강압이 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검침원들을 직접 고용할 경우, 최저임금보다 못한 연봉 2100만원 수준으로 임금이 체결될 것이라고 검침연대에 통보하면서 억지 춘향식으로 협상을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참고로 한전 본사의 10년 차 직원의 평균 연봉은 9천만 원 수준이다.  검침원들을 흡수하는 자회사는 한전이 100%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차별은 여전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검침연대가 자회사 설립 방안을 받아들인데는 검침원 5천200여 명을 모두 고용 승계해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했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스마트전력계량기(AMI·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사업 추진에박차를 가하면서 검침원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원격 검침방식인 AMI가 구축되면 검침원이 호별 방문을 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전력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6년 5월, 2022년까지 1조5천억원을 들여 2천만호에 AMI를 보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협의회 전문가 위원인 중앙대학교 유병훈 교수는 “우리는 최대한 전환 대상 업무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논의 중이다. 그런 내용이 협의가 되면 기재부나 산업부에 협의해서 정부도 산업정책적인 차원에서 인력을 줄이기보다는 일자리 문제가 시급하니까 가능하면 5200명의 검침 인원을 그대로 유지시키려 할 것이다”라면서 “원격 검침으로 줄어드는 인력이 생기더라도 다른 대체 업무를 찾아 5200명 인력을 유지한다는 조건 하에 자회사 방향으로 확정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 노사전문가협의회는 5개 부문으로 나뉘어 논의가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전문가 위원 5명이 참여해 한 달에 한 번씩 직종별 실무 회의와 본회의를 각각 진행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다른 직종에 대한 전환 방식은 합의가 된 것이 없다. 밀고 땡기기를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에 가입이 안 된 분들이라서 몇 분의 대표가 들어와도 대표성이 크지 않다. 다들 입장이 달라서 논의 자체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의 의견을 중앙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전국 순회나 권역별 간담회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권역별로 의견을 수렴해서 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부터가 숙제“라고 말했다. 

◇ 직고용 방식 택한 한전 KDN...파견·용역 논의 혼선 

한전이 100%지분을 보유한 한전 KDN은 직고용 방식을 택한다. 한전의 전자, 통신관련 위탁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는 한전 KDN은 한전의 자회사다. 
한전 KDN도 자회사 즉, 한전의 손자회사 두는 방식을 고려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를 수 있다. 

한전 KDN은 한전보다 더 혼선이 빚어졌다. 한전 KDN은 정규직 전환 결정기구인 정규직전환 심의위원회에서 작년 11월 30일, 직적고용 기간제 근로자 160명을 직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올 초 직고용을 약속했던 기간제 근로자에게 가점 부여 방식을 채택해 새롭게 선발하는 공채 인원과 경쟁하게 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한전 KDN 관계자는 “기존 인력의 채용 목표를 40%로 두었다. 기존 인원의 경우 1차 서류는 무조건 통화시키고 2차 전형(NCS 직무적성검사)에 가산점 10%, 3차 전형(면접)에 가산점 5%를 부여해 9월 쯤 채용할 계획”이라며 “이 정도 가점을 주는 것은 매우 큰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전 KDN 관계자는 이러한 방식을 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전 KDN의 업무가 청년 선호 일자리인데다 앞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인력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있을 수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밖에 파견, 용역 노동자 873명(파견 450명, 용역 423명)에 대한 정규적 전환 논의는 사측 대표 4명, 근로자 대표 4명, 전문가 위원 4명 총 12명으로 구성된 노사정 협의회가 가이드라인에 맞춰 논의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미화와 경비 용역 75명 중 72명이 상시지속 판결을 받은 상태다. 통신 분야는 181명 중 9명만이 상시지속으로 판결을 받았고 63명 보류상태다. 이밖에 111명은 일시 간헐적인 근무 형태로 판단돼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됐다. 

한전 KDN관계자는 “상시지속이냐 일시간헐이냐가 정규직 전환의 갈림길이다. 한국전력 그룹사에서 나오는 계약 중 법령에서 정한 수의 계약이어야 상시지속으로 인정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법령에 의한 수의계약은 원래 처음부터 수의 계약이어야 한다”면서 “한국전력 그룹사에서 수의계약으로 나온 유지 보수 업무를 상시지속 근무로 본다. 이 기준에 따라 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전산직 근로자의 경우도 506명 중 상시지속으로 인정된 40%(160명)을 제외한 나머지 60% 정도가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했다. 

‘중소기업 진흥이 장려되는 경우에는 정규직 전환에 예외를 둔다’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때문이다.

한전 KDN 관계자는 “이 같은 법령을 강행 규정으로 볼지, 임시 규정으로 볼지 애매한 부분이 있어 고용노동부에 질의해 놓은 상태”라며 “고용노동부의 판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여러 가지 직종에 대해 정부가 보호를 해주는 분야는 많다. 그럼에도 근무하는 인력이 용역계약 2년이 종료된 시점에서는 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고용불안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형태가 어떻게 이뤄져 왔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용역업체의 정규직원인지, 얼마만큼 재직했는지 등의 제반 사항을 고려해 기관단위 노사협의체에서 판단할 일”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한전 KDN 근로자 대표 관계자는 한수원에서 입찰로 나온 건을 한전 KDN이 수의 계약으로 가져갈 것이니, 이에 해당하는 93명이라도 추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한전 KDN은 결정을 보류했다. 용역 업체의 인력을 한전 KDN이 흡수하는 것이므로 업체 측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 수자원공사...댐점검정비 용역 분야 제외 

한국 수자원공사의 경우 2017년 12월 기간제 근로자들 정규직화를 완료했다. 현재는 파견, 용역 근로자 992명에 대한 면접을 추진 중이다. 수자원공사는 서무보조와 특수경비 등 235명은 직접고용 방식으로 채용하고 청소, 홍보 도우미, 운전, 취사 등의 직종 757명은 자회사로 설립해 흡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의 경우, 댐점검정비 용역 분야가 민간 위탁에 해당된다는 판단 하에 정규직 전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들에 대한 인원은 조사조차 안 되어 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에서 민간 위탁 업무에 대해 8월 3일까지 실태 조사를 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그에 따라 현재 기본적인 데이터를 조사해서 입력을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면 그것을 기초 데이터로 고용노동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자원공사와 계약을 맺고 있는 점검정비 관련 민간 협력사는 6곳. 정규직 전환으로 흡수 돼 인력을 고용 승계해야 하는 업체는 260개 정도다. 

◇'정규직화 1호 사업장' 인천공항, 한국도로공사도 논의 어렵긴 마찬가지 

정규직화 1호 사업장으로 주목됐던 인천공항도 정규직화 전환 논의가 더디가 진행되는건 마찬가지다. 당초 2017년 말까지 전환 작업을 모두 마치려 했으나 해를 넘겨 여전히 논의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전환이 되면 급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면서 정규직화를 그리 반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모두 입장이 달라서 쉽지 않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한국도로공사도 정규직 전환대상자인 톨게이트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이 아닌, 자회사 설립방식으로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수납원들 사이에선 도공이 자회사를 통해 수납원을 고용한 이후 수납업무 축소 및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규직화를 논의가 진행되면서 고용불안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 

고용불안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추진 중인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데다 진행 과정에서 계약이 종료되거나 본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의를 강요하는 정황들이 속속 나타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