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여성인권 심각하게 침해하는 낙태죄 폐지해야”

[소비자경제신문=곽은영 기자]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중요하지만 형법상 낙태죄는 존속돼야 한다는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의 발언에 여성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라 대법관 후보자의 발언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가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처벌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존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태아가 잉태되면 사람으로 태어나 한평생 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모자보건법 등 특별히 법률에서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생명이 인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후보자는 “낙태죄를 존속하되 여성이 안고 있는 문제를 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라며 “여성은 아직까지 사회적 약자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의 낙태죄 존치 입장에 경악한다”라며 “임신중지 처벌법은 누구의 생명도 지키지 못하고 낙태죄로 인해 여성들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비판하며 낙태죄 폐지를 촉구했다.

◇ “여성의 자기결정권” vs “태아의 생명권”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소원 사건 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낙태죄 폐지에 대한 논란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7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주최로 낙태죄 폐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경찰추산 1500명이 모여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형법 제269조에서는 여성의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임신을 중단하는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형법 제270조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임신중단 수술을 시행한 의사 등 의료인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책임이 있는 남성에 대한 처벌기준은 없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에 허용한계를 두고 있다. 부부의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장애가 있을 경우, 임신 중 독극물을 복용했을 경우, 감염성 질환이 있을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 또는 근친간 임신일 경우 예외적으로 당사자와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의 기준대로라면 여성은 인공임신중절의 사유를 증명하고 허락 받아야 한다. 게다가 장애를 임신중단의 허용 사유로 두고 있어 본인이나 배우자가 장애인이거나 감염인인 경우 여성이 원하지 않더라도 합법적으로 임신중단을 강요 받기도 한다. 국가가 우생학을 기준으로 낙태의 합법화와 불법화에 선긋기를 하며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 찍고 있는 것.

현재 낙태죄 폐지 반대 움직임은 법안 그 자체의 폐지뿐 아니라 여성의 몸과 성을 통제 대상을 바라보는 국가의 법과 정책을 거부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23만 명 이상이 동참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처벌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린 지 6년 만의 일이다.

헌재는 70회가량 낙태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을 심리 중으로 지난 5월 24일에는 낙태죄 존폐여부를 두고 공개변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청구인 A씨는 현행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임신 초기 안전한 임신중절수술을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의 유지와 출산에 대한 부담을 여성에게만 부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태아는 생존과 성장을 모체에 의존하므로 여성과 동등한 수준의 생명이라 볼 수 없으며 생명권 주체도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무부는 자기낙태죄 처벌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낙태 허용 시 낙태율 급증,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훼손, 생명경시 풍조 확산 등 사회적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중요 공익으로 바라보며 낙태 예방 차원에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한편 낙태죄에 대한 위헌과 합헌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팽팽한 가운데 이르면 오는 9월 낙태죄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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