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블랙박스 사진. 소비자 A씨는 블랙박스 불량으로 차량을 긁고간 뺑소니범을 잡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블랙박스 업체에 보상을 요구했다.(사진=소비자경제)
차량용 블랙박스 사진. 소비자 A씨는 블랙박스 불량으로 차량을 긁고간 뺑소니범을 잡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블랙박스 업체에 보상을 요구했다.(사진=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교통사고 발생 시 원인 규명에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는 차량용 블랙박스 불량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 차량용 블랙박스 피해구제 신고 '제품불량'이 가장 많아 

최근 신차 구매와 함께 P사가 제작·생산하는 블랙박스를 달게 된 소비자 A씨는 <소비자경제> 제보창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A 씨는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이 주차 뺑소니를 당했다. 스크래치가 심하게 나 아파트 관리실의 CCTV로 먼저 확인했지만 화질이 좋지 않아 판가름하기 힘들었다. 블랙박스에 당연히 촬영 됐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영상 파일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아 뺑소니범을 잡을 수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내 컴퓨터가 이상한가 싶어 동네 pc방에 가서 확인해보고 경찰서에도 파일을 확인해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연차까지 내가며 공업사까지 찾아가 확인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P 업체는 제품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은 하나 소비자 A씨에게 블랙박스 교환을 해 주고 덴트 작업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A 씨는 “블랙박스 불량으로 뺑소니범을 잡을 수 없으니 사고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P업체의 CS담당자는 “제품은 회수해 데이터를 체크했더니 이후 데이터는 정상적으로 녹화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블랙박스 문제와 관련해서는 내부 규정이 아닌 소비자법에 의거해 진행한다. 블랙박스 데이터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제품 이상에 대한 AS나 환불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외에 촬영 피해 보상은 해주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며 A씨에게 해 준 보상이 적정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A씨처럼 블랙박스 제품불량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차량용 블랙박스 관련 피해 신청 중 반 이상을 차지한다. 

‘차량용 블랙박스’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매년 200건에 육박하거나 넘는다. 지난해 블랙박스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178건, 2016년은 184건, 2015년은 245건이었다.

2012년~2016년 사이 접수된 ‘차량용 블랙박스’ 관련 피해구제 신청 967건 가운데 ‘제품불량’이 573건으로 반 이상(59.3%)을 차지했다.

‘제품불량’ 관련 피해구제 신청 573건 중에서도 구체적 피해유형이 확인된 381건을 분석한 결과, 블랙박스의 핵심기능인 녹화가 안 되거나 화질이 불량한 경우가 247건(64.8%)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 전원불량 86건(22.6%), 블랙박스 장착에 따른 차량 배터리 방전 40건(10.5%) 등 이었다.

◇ 블랙박스 제품불량 시, 업체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

그렇다면 블랙박스 불량으로 사고 뺑소니범을 잡지 못했을 경우, 업체의 손해배상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소비자문제연구원 정용수 원장은 “기기상의 문제가 있을 경우는 교환은 가능하지만 사고 보상까지 물리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자동차팀의 판단도 같았다. 

사고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설치한 블랙박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더라도 업체의 책임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들에게 차량용 블랙박스 구입 시 '스마트컨슈머 www.smartconsumer.go.kr'내 성능 비교분석 결과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 제품별 특성과 성능 등을 사전에 충분히 비교검토 후 활용도에 맞고 번호판 식별 등 영상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은 “구입 후에는 매뉴얼을 숙지해 용법에 맞게 사용하고 주기적인 녹화상태 점검 및 메모리 카드 교체 등을 당부했다.”

◇ 블랙박스가 개인정보침해 도구 될 수 있다?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몰래카메라와 관련해서는 민감하면서도 블랙박스로 인한 개인정보침해에는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이동식 영상정보처리기기를 규율할 법률 근거가 부족하다. 이에 블랙박스를 규율할 법률 근거도 찾기 힘들었다.

행정안전부 개인정보보호정책과 김상광 과장은 “현행 법에서는 공개된 장소에 지속적으로 설치돼 있는 역과 광장 등 공공장소에 고정형으로 설치된 CCTV와 네트워크카메라만 규제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블랙박스를 포함, 이동형 기기는 포함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고정식과 이동식을 포함, 모든 영상정보처리기기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영상정보 보호법’이 작년 12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다.

블랙박스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부족하다.

소비자문제연구원 정용수 원장은 “블랙박스는 감시용 카메라로 달아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보험회사나 경찰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블랙박스를 개인이 마음대로 보고싶을 때 보고 지울 수 있는 것도 문제”라며 “블랙박스 설치 목적 자체에 대한 인식제고부터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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