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루 박재형변호사

[소비자경제=칼럼]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을 뽑으라면 박정희 정부 시절 발생하였던 인혁당 사건을 뽑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유신정국 하에서 시민들의 반정부 활동이 거세지자, 중앙정보부는 1974년 4월 25일 학생들의 시위 배후에는 공산당이 있었다는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민청학련은 공산당 계열의 인혁당 재건위 조직 등과 연계하여 1974년 4월 3일을 기해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곧바로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고,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피고인들 중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바로 다음날인 1975년 4월 9일 새벽,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어 이들은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인혁당 재판은 2000년대에 들어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고문과 증거조작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 재판이었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07년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8명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8명 전원에 대한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이들이 독재정권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였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결국 당시 정부는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무고한 사람 8명을 범죄자로 몰아 살인을 저지른 것이고, 그와 같은 판결을 선고한 판사들과 사법부는 이러한 살인 절차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혁당 사건은 현재까지도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에서도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해외 NGO 단체인 국제법학자회(ICJ)는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들이 사형 집행을 당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법부와 그 소속 판사들이 인혁당 사건을 포함한 여러 사건에서 독재 권력의 범죄에 적극 가담하였던 불행한 역사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혁당 사건 정도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최근 사법부의 신뢰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중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꾸려진 특별조사단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문건들에 의하면, 사법부가 특정 사건에서 정부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려주고, 이를 대가로 사법부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을 얻어내려 한 정황이 드러난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5년 7월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대외비)’라는 문건에는 16개의 판결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운영 ‘협력 사례’로 적혀 있고, 같은 해 11월 9일 작성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에는 청와대 압박카드의 일환으로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이 중 협력 사례로 언급된 판결에는 KTX 해고 승무원 사건, 통상임금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굵직한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특별조사단은 위와 같은 문건이 판결 선고 후 청와대와의 협상용으로 작성되었고, 실제 재판 결과에 상부의 영향력이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한 듯 합니다.

현재 사법부의 구조상 재판부 외에서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는 쉽지 않으므로, ‘법관의 양심에 따라 내려진 과거의 판결 중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맛에 맞을 만한 판결만을 골라 협상용으로 사용할 것을 검토한 것 뿐’이라는 특별조사단의 판단도 일리가 있고 수긍할 만합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일반 국민들은 이러한 판단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뿌리 깊은 사법 불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사법불신이 만연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인혁당 사건으로 대표되는 사법부의 독재권력에 대한 부역이 큰 원인이 되었고, 그 밖에도 전관예우로 불리는 부당한 관행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관예우는, 법관들이 판사직을 퇴임하고 변호사 개업을 한 후 후배나 동료 법관의 재판부에서 담당하는 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될 경우, 법관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는 부패관행을 일컫는 말입니다.

현재까지 사법부의 공식적인 의견은 전관예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대법관, 고등부장 등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상당수가 퇴임 후 개업을 하거나 대형 로펌에 취업하여 변호사로 활동하며 선임 대가로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액의 선임료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016년 발생한 최유정 전 판사와 홍만표 전 검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뛰어난 법률 지식과 재판 경험에 대한 대가로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변명입니다.

의뢰인들이 상식을 넘어서는 고액 선임료를 주고 고위 법관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재판부와의 인적 관계를 통해 재판부에 영향을 미쳐 줄 것을 원하기 때문이고,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위 전관예우 관행 또는 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전관예우를 빙자하여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사적인 이익을 위한 부당한 영향력이 재판에 미치고 있거나, 판사 출신의 변호사들이 부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빙자하여 의뢰인들로부터 고액의 돈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로서는 국가권력이 특정 재판에 영향력을 미치려 했고, 실제로 미쳤다고 믿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즉,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보다 훨씬 강한 국가권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드러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은 사법부에게 해당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사법 불신이 만연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이번 재판거래 의혹을 해소하는데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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