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근로시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시행이 코앞(7월 1일)으로 다가왔지만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재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최빛나 기자] 주 근로시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시행이 코앞(7월 1일)으로 다가왔지만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재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근로기준법 시행에 앞서 조기 단축했거나 시범운영을 통해 큰 혼선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소•중견기업은 노동자와 기업 간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인력을 더 뽑을 여력이 없어 아직 준비가 안 된 중소•중견기업들이 보완책이 없으면 인력 부족 현상이 고스란히 가동률•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우려가 부각되는 상황이 벌여지자 한국 경영자 총협회는 단속과 처벌보다 6개월의 계도 기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건의문에는 ‘인가 연장근로’의 허용범위 확대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등도 담겼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는 하루 4시간부터 최대 12시간까지 자율적으로 정해 일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이미 2월부터 도입했다. 기능직의 경우 52시간 근무제를 전 생산라인으로 확대한다. LG디스플레이도 지난 4월부터 주중 근로를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할 경우 주중에 휴일을 부여해 초과 근무를 방지하는 대체휴일제를 도입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본사 사무직 직원은 이미 주 52시간 이내 근무를 시행 중이다.
 
현대차 역시 5월부터 본사 일부 조직 대상으로 유연근무제를 시범 운영 중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정한 집중근무시간 외 시간에 자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는 형태다.
 
삼성전자는 자율출퇴근제를 월 단위로 확대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직원에게 근무 재량을 부여한 재량근로제를 다음달 1일부터 도입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주 40시간이 아닌 월평균 주 40시간 내에서 출퇴근 시간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재량근로제는 법적으로 신제품이나 신기술 연구 개발 업무에 한해 적용할 수 있다.
 
KT는 매주 수요일 6시 정시 퇴근을 장려하는 전사 캠페인 가족사랑의 날을 시행해 왔다.
 
이처럼 주요 대기업의 빠른 움직임으로 인해 큰 혼란이 빚어 질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 대기업 관계자는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주 6일, 매일 야근을 했을 때와는 너무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대한 시간 안에 업무를 끝낼 수 있도록 팀 끼리 북돋아 주는 분위기다"라며 "팀끼리 잦았던 회의도 많이 없어지고 커피 마실 시간도 없고 점심 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제 시간에 퇴근 할 수 있는 것이 일에 대한 사기를 올려주는 것 같아 결과가 더 좋게 나오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처지는 사뭇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한국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26만 6000명의 인력부족 현상과 연간 12조 3000억 원의 비용부담이 발생한다. 중소기업은 평균 6.1명 인력이 부족하고 생산량도 20.3% 줄어든다.
 
특히 산업계에선 '업의 특수성' 탓에 발생하는 부작용이 만만찮다. 정유•화학업계가 대표적이다.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정유•화학업계의 대규모 정기보수 소요시간은 주 80시간인데,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보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건설업계도 고심 중이다. 건설 현장의 공사비는 늘고, 근로자의 임금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원 분석을 보면 52시간 근로제로 건설현장 총공사비는 평균 4.3% 증가하고, 최대 14.5% 늘어난다. 현재 현장 관리직 직원은 주당 평균 59.8시간, 기능직은 56.8시간 일한다. 52시간에 맞추면 직접 노무비는 최대 25.7%, 간접 노무비는 최대 35%까지 증가한다. 총공사비가 늘어나는 이유다. 반면 관리직 임금은 13%, 기능직은 8.8% 감소하게 된다.
 
버스업계도 걱정에 빠졌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7월부터 노선버스업이 특례 대상에서 빠져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최대 8854명의 추가 고용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영세한 버스회사들이 무턱대고 기사를 추가 고용할 순 없어 당장 7월 이후 노선버스 운행 횟수 축소와 이에 따른 교통대란, 시민불편 가중 등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곳도 적잖다. 일부 중소기업은 아예 공장 자동화 등으로 대응하겠다는 생각이어서 해고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일선에서는 노동시간에 포함되는 업무 범위뿐 아니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노동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노사 간 견해가 엇갈리며 혼선을 빚고 있다.
 
# 중소기업 관계자는 <소비자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패닉에 빠졌다. 당장은 도입 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진 않지만 7월 달부터 도입이 된다면 급여부터 걱정이 크다"라며 "휴일 근로로 68시간과 추가 수당 등이 채워져 삶이 유지 되던 근로자들은 생계에 타격이 갈 수 있고 10시간 안에 마무리 되던 일을 5시간 안에 마무리 해야 하는 업자들의 부담감은 일의 실수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에선 현행 최대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라도 최대 1년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특정기간 내 평균 근로시간만 지키면 주간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주에 80시간을 일하더라도 다음주에 24시간 이하로 일하면 2주간 평균 근무시간은 52시간이기 때문에 첫째 주 추가 근무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현행법에는 탄력근로제를 2주로 설정하고, 노사가 서면 합의하면 최대 3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시행이 코앞인데도 노사합의를 통해 탄력근무제를 3개월까지 연장한 기업은 몇 안된다. 정유•화학업계의 GS칼텍스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탄력근무제 3개월을 최대한 잘 운용하면 된다. 아직 해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일본, 프랑스(1년)나 독일(6개월) 등 선진국도 탄력근로제 기간이 한국보다 길다. 아울러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실제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은 34.3달러로 노동생산 통계가 집계된 OECD 회원국 22개국 중 17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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