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2 소비자 피해구제 접수 5년 새 3배 이상 증가

 

정수기·연수기 렌탈 서비스를 받고 있는 소비자들이 제보해 온 정수기·연수기 내부 사진 (사진=소비자제공)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생활가전 렌탈업체들이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봄부터 정수기·연수기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치루지만 정작 관리는 허술하게 해 소비자를 우롱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정수기와 연수기 유료 렌탈 관리 서비스와 관련한 불만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마케팅 강화에 앞 서 이미 확보한 고객층 이탈을 막기 위한 관리 체계부터 강화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정수기 시장 규모 급증에 불만도 ↑

1990년대부터 수질오염사고가 빈번해지고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정수기 시장 규모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생활가전의 필수품목된 정수기, 연수기 렌탈 업체들의 움직임은 3월부터 바빠진다.

국내 정수기시장의 성수기는 5~8월로 이 때 고객을 사로잡을 신제품 출시와 광고에 만전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국내 정수기 시장 점유율의 60%는 코웨이가 차지하고 있다. ‘깐깐한 정수기’라는 마케팅 전략과 함께 스스로 살균 시스템으로 탄생한 얼음 정수기 등을 출시하며 믿을 수 있는 정수기라는 이미지를 강화해 왔다.

LG도 직수형 정수기를 출시,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10%에 불과했던 시장 점유율을 35%까지 끌어올렸고 SK, 쿠쿠, 청호나이스 등의 정수기 제품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국내 정수기시장 규모는 650만대 규모로 추정된다. 이미 2조억 원 규모를 넘어선 정수기 시장에서 업체들은 수년전부터 ‘착한 가격’을 내세운 직수형 정수기를 속속 출시하면서 한층 더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사후 관리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 향상에는 그만큼 고심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정수기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은 2017년 555건으로 5년 전(2013년) 176건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8년 전(2010년)보다는 5배 이상 늘었다.

◇ 광고와 다른 엉터리 관리 서비스에 해지 시 위약금 요구... 소비자 분통

소비자원에 따르면 구체적인 사례별로는 관리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하며 계약해지를 요구할 경우 사업자가 위약금을 청구하거나 위약금에 남은 렌탈료까지 함께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경제> 제보란에도 유료 렌탈서비스와 관련한 불만 사례가 여러 건 올라왔다.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비자 A씨는 작은 아이가 아토피가 있어 일부러 연수기를 설치했는데 물탱크 안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이미 39개월간 해당 제품을 사용한 상태다. A씨는 “39개월 동안 더러운 물을 사용한 것만도 분이 난다. 더 이상 해당 업체의 제품을 사용할 마음이 없는데 업체 쪽에 연락해 항의하니 제품 교환은 가능하나 환불 및 계약 해지는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며 하소연했다.

또 다른 소비자 B씨도 코디가 점검 왔다가 물이 나오지 않아 처음으로 앞의 덮개를 열었는데 이물질로 가득한 모습에 기절초풍 할 지경이었다며 제보해 왔다.

B씨는 5년간 렌탈해서 사용하다 멤버십으로 가입해 10년 가까이 해당 업체의 제품을 사용했는데 이물질을 언제부터 마신건지,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고 전했다.

그래도 업체를 한 번 더 믿어보자 싶어 업체에서 권유해주는 대로 직수형 정수기로 교체했는데 한 달도 안 돼, 정수기 바닥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후 업체가 다시 정수기 교체를 제안했지만 소비자 B씨는 더 이상 해당 업체 정수기를 사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B씨는 “이후로 업체측은 연락이 없다”며 대응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최근에는 L사의 H제품 정수기 광고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청와대 청원에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해당 업체가) 모든 직수관을 교체해주고 매년 새것처럼 만들어 준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뜨거운 물에 취약한 온수관은 교체해 주지도 않고 물이 들어오는 원수유입관도 교체를 안 해준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어 “ 관리기사는 직수관을 다 갈면 물이 샌다면서 해주지 않는데 마치 다 갈아주는 것처럼 광고를 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부적절한 광고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반 소비자는 정수기나 연수기 제품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방문관리원(코디 등)을에게 제품 관리를 맡기게 된다.

허술한, 또는 광고와 다른 관리서비스 때문에 피해를 보는 소비자는 해마다 증가 추세지만 소비자원의 권고에 따라 환급‧배상‧계약해지 등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비율은 약 64%에 불과하다. 10건 중 4건 정도는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 셈이다.

정수기 설치 시, 나중에 배수관이 손상 돼 누수가 발생하거나 곰팡이가 생겨도 이에 대한 책임소지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정수기와 연수기의 엉터리 관리서비스 때문에 가족 중 누군가 병치레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입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정수기나 연수기를 설치 시 계약 단계부터 관리 과정을 꼼꼼히 살펴 볼 것을 조언했다.

계약 시 계약서 렌탈 기간과 렌탈료는 물론 중도 해지 시 위약금을 얼마를 내야 하는지, 설치할 때 누수 부분이 있는지 등을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정수기나 연수기 관리를 코디에게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무엇을 점검했는지 등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 정수기 제품 성능검사 기능 공정성 우려 여전... 환경부 “의견 수렴 중”

한국은 유엔이 지정한 대표적인 물부족국가로 정수기의 시장규모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정수기의 정수 성능이나 용출안전성, 구조적인 문제 등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정확히 제공하고 정수기 관리제도 및 검사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재 정수기 인증은 환경부에서 품질검사기관으로 인가한 정수기공업협동조합을 통해 이뤄진다.

정수기공헙협동조합이 정수기 사업자단체라는 점에서 품질검사기관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계속돼 왔다.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한 정수기 관리제도를 역행한다는 비난이 일어온 것. 

소비자단체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정수기품질심의위원회라는 소비자 보호 기구가 있지만 이 역시 사업자치단체인 정수기공업협동조합 내에 설치되어 있다. 이 때문에 독립적이고 공정한 품질심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구조적 모순을 갖고 있다. 정수기 제품 성능검사기관의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다. 

환경부는 지난해 먹는물관리법 개정안 입법 예고 시 정수기공업협동조합이 정수기 품질검사를 시행하는 것에 대한 공정성 논란에 따라, 국제표준규격 검토를 통한 품질검사기관 자격요건을 마련하고 공정한 경쟁 평가를 거쳐 품질검사기관을 지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아직 대안 마련은 확정된 것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 수도정책과 이현준 사무관은 7일 <소비자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수기 품질검사기관에 대한 대안 마련과 관련해서는 국제표준규격 도입을 포함, 아직 의견수렴 과정에 있다”며 “6월 중에 개선방안을 확정해서 내 놓을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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