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평등하고 따뜻한 세상을 꿈꾸다

식자재 유통을 전문으로하는 사회적 기업 '청밀' 직원들이 2017년 연말 송년회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청밀)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넓은 밭에서 자라는 푸른 밀처럼 서로 돕는 따스함과 좋은 가치가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업채를 꾸려가는 이가 있다. 바로 2008년, 사회적 기업 '청밀'을 설립한 양창국 대표다.

가락시장 옆 농수산물센터에 자리 잡은 사무실은 얼핏 보기엔 아기자기하고 세련됐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30대 중반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늦깎이 사회 초년생부터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정년퇴직할 나이를 한참 넘겨버린 고령 직원 등, 다양한 직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한국에서 굳이 그 모난 길을 선택해 10년간 달려온 식자재유통기업, 청밀 양창국 대표를 <소비자경제>가 만나보았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기업 '청밀'

사회적기업 '청밀'은 2008년 설립된 식자재 유통기업이다. ‘청밀’앞에 언제나 붙는 수식어답게 직원 40명 중 13명가량(33%)이 장애인과 노인 등 취약계층이다. 예비사회적기업과 양지C&D센터 개관, 밀알스토리 오픈, 인증사회적기업에 이르기까지 청밀은 다양한 업무를 추진하며 사회적기업의 선두주자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와 동시에 CJ, 동원, 삼성, 아워홈, 풀무원 등 대기업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을 경쟁력을 갖춰온 결과 연 매출 120억을 달성하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청밀'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등록된 가짓수만 1만 2천 가지. 아주 작은 단위의 어린이집부터 대기업 직원 식당까지, 200여 곳에 식자재를 공급한다. 그런 만큼 식품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농산물 잔류검사를 철저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혹시라도 모를 사고에 대비해 사고 1건당 보험금을 10억 정도로 높게 책정했다. 일반 대기업보다도 평균 2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양창국 대표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데 있어서도 모범이 돼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콜센터의 모든 상담을 전문 영양사가 직접 전담해 구매 담당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혹시라도 제품 포장이 찌그러지거나 이상이 생겨 교환, 반품 요청이 들어올 경우 복잡하고 불필요한 보고 라인을 거칠 필요 없이 다이렉트로 해결해준다. 이러한 효율적 커뮤니케이션과 기동성은 높은 소비자 만족도로 연결됐다. 대기업 PB제품을 보유해 다양한 식재료를 공급받고 싶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애쓴 것도 '청밀'이 가진 장점 중 하나다.

사회적기업 '청밀' 양창국 대표(사진=청밀)

'누구나 평등한 근로 환경 만들기에 주력'

‘청밀’은 2016년 서울시 사회적 경제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장애인과 노인에게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고객에게 맛과 건강 이상의 가치를 지닌 먹을거리를 전달해 온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내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지원사업, 소규모시설 식자재 후원을 진행하는 등 나눔 문화를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

2014년에는 서울시 여성 친화기업으로 선정됐을 만큼 여성이 일하기 좋은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임신, 출산 여성에게 재택근무를 허용해 양육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형평성 문제로 직원 간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어 대표 입장에서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본채 할 수는 없었다. 양 대표는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로서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고 있기 있다"면서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전문대를 나왔건 4년제를 나왔건 임금테이블에서 전혀 차별받지 않는 것도 ‘청밀’이 추구하는 평등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소비자만족, 가치 창출에 못지않게 양창국 대표가 중시하는 또 한 가지는 직원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여름철 직원들이 쓸 수 있는 콘도를 빌려놓는다든지 명절이면 양 손에 다 못 들고 갈만큼 푸짐한 선물(1인당 50만원 어치)을 가득 들려 보내는 것은 청밀 직원들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다. 양창국 대표는 입사한 지 2년 이상 된 직원에겐 일본, 중국, 유럽 등으로 해외 연수를 다녀올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단체로 근처 잠실야구장이나 영화관을 다니는데 지난달에는 전 직원이 함께 도쿄로 2박3일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직원간의 유대감도 더욱 끈끈해 질 수 있었다. 이런 청밀이 인재를 뽑을 때 중시하는 부분은 사회적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함께 성장할 사람, 즉 '가치에 얼마나 동참할 수 있는가'이다.

양 대표는 '장애인과 함께 일하면서 왜 나보다 일도 느리게 하는데 임금 차이가 별로 없지?' 라는 생각으로 불만을 품을 사람이면 청밀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누구나 장바구니에 담는 물건이 비슷해질 때까지"

양창국 대표는 1993년 한솔제지 물류팀에서 일하다 현대그린푸드로 이직해 약 14년간 유통업에 종사했다. 그러다 백화점에 식품 매장을 내고 전통 떡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템이 매스컴에서 조명됐을 만큼 관심을 끌며 장사는 잘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직업재활센터에서 만난 자폐아들과 노인들과의 만남은 양 대표의 삶을 바꾸어버렸다.

"장애를 둔 부모들이 ‘저 아이가 나보다 하루만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걸 듣게 됐어요.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아이에 대한 사랑인거잖아요. 충격적이었어요."

양 대표는 "처음엔 가진 레시피와 장비를 주면서 작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었지만 점차 그럴 수가 없었다"며 배시시 웃었다. 결국 올인 하는 쪽으로 결정하고 사업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장애인과 노인도 잘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고민하며 시장조사를 하던 중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소분하고 포장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는 푸드머스 전처리센터가 오픈할 시기에 제안서를 넣었다. 그간의 유통업체에서 쌓은 경험을 십분 발휘됐다.

이어 식자재 유통을 시작하게 됐다. 직원이라곤 양 대표와 장애인 한 명 뿐이었다. 이미 식자재 유통쪽은 대기업이 다 쥐고 있었기에 양 대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작은 기관들에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돈이 되던 안 되던 가치를 알아봐주는 고객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처음 연을 맺게 된 건 장애인 열 명 가량을 돌보는 장애인 시실이었다. 양 대표는 "시설에 일손도 부족한데 식자재 공급을 받기엔 인원이 너무 적어 해 주는 곳이 없다며 좋아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영업부터 물류 배송까지 모두 양 대표의 몫이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배달을 완수했다. 양 대표는 그러면서 쌓인 신뢰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이었음을 확신하고 있다.

"처음에는 저에게 일을 주면서도 3개월 하고 그만 둘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7년 8년을 계속 했거든요. 정말 사회적 기업이구나! 라는 인식이 쌓이면서 소개도 시켜주시고 점점 거래처가 늘게 됐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옛 이야기가 됐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수익을 창출해 환원까지 해야 하는 일은 그야말로 없던 길을 새로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기업은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197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로 야기된 소득 양극화와 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 경제로 도입됐다. 그 시작이 한참 늦은데다 제대로 된 인식도 없어 양 대표가 사회적 청밀을 설립한 2008년도까지도 사회적 기업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책임감은 오기가 됐다. 양 대표는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노상에서 두부, 콩나물, 꿀을 내려 팔기도 했다. 결혼할 때 해 온 예물까지 팔아가며 양 대표를 격려해 준 아내는 가장 큰 힘이 됐다.

양 대표의 꿈은 누구나 장바구니에 담는 물건 개수가 비슷해 지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적 기업 대표로서 책임감을 갖고 살아온 양 대표는 한국의 사회적기업 제도에 아쉬움도 많다.

한국에서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소관이다. 한편 사회적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기업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업이어야 하지만 고용문제에만 집약돼 큰 틀에서 바라보지 못한다면서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흩어져있는 제도와 지원 방안도 모을 필요가 있다는 것.

이어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사회적경제기본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게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의 답은 심플하고 명확하다.

“빵을 만들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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