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자금 마련은 어떻게?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고(故) 구본무 회장이 20일 새벽 별세하면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가족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장례를 가족장으로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겠다고 밝혔지만 빈소가 마련된 서울 혜회동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고 구본무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명예회장의 장남이다. 30세에 럭키주식회사에 입사한 구 회장은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치며 20년간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은 뒤 1995년 3대 회장에 취임했다.

럭키금성에서 LG로 사명을 바꾸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 전환은 한국 대기업으로써는 최초의 시도였다. 취임 무렵 30조원 수준의 매출을 160조원대로 끌어올리며 LG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을 세계 1순위로 끌어올렸다.

국민에겐 한국 재벌들에게는 흔치 않은 ‘착한 기업’이란 수식어도 따라다녔다. 구 회장의 별세 소식에 정 재계 인사들 뿐 아니라 언론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라는 칭송을 쏟아내며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언론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의 소탈함과 선행들도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13년 바다에 빠진 시민을 구하다 순직한 인천 강화경찰서 고 정옥성 경감 유가족에게 5억원을 지원하고 자녀 3명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대학교 졸업 때까지 학자금 전액을 지원했다. 2015년에는 사재로 70억원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철원 총기 사고로 숨진 이모 상병 유가족에게 사재로 1억원을 지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구광모 상무 승계자금 마련은 어떻게?

 

관심은 LG가(家) 4세로 올해 마흔이 된 구광모 상무에게 쏠리고 있다. 구 상무는 지난 17일 열린 ㈜LG 이사회에서 신규 사내이사로 추천됐다. 

다음달 29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선임되면 그룹 경영에 본격 참여한다. 구 상무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딸만 둘인 구본무 회장은 장자승계원칙을 고수하는 LG그룹의 전통에 따라 조카인 구광모를 양자로 입적했다.

구 상무는 2006년 LG전자에 대리로 입사해 재무와 가전, 글로벌 사업부 등을 거치면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구 상무가 보유한 ㈜LG 지분율은 6.24%다. 구본무 회장(11.28%)과 구본준 부회장(7.72%)에 이어 3번째로 많은 LG그룹 지분을 갖고 있고 타계한 구 회장의 주식을 일부 상속받게 되면 LG그룹의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LG그룹은 순환출자없이 (주)LG를 지주회사로 주력 계열사들이 수직 계열화가 돼있어 구 상무가 구본무 회장의 보유 지분을 상속받는 등 추가로 지분을 확보해 상속세만 적법하게 내면 승계가 끝난다. 상속세는 9천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구 상무가 승계 자금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구광모 상무는 LG상사, 판토스 등에만 지분을 갖고 있고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나 LG화학에는 개인 지분이 없다.

판토스 매출의 3분의 2가량이 LG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벌어들인 것인데 문재인 정부 들어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고 나서면서 이조차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규모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납부 방법은 상속세를 현금 대신 부동산이나 비상장주식 등으로 납부하는 물납과 수년에 걸쳐 나눠 납부하는 연부연납법이 있다.

LG는 상장사로 물납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연부연납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구 회장의 모든 지분을 구 상무에게 넘겨주지 않고 두 딸에게도 나눠서 상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직은 연륜이 짧고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구 상무의 경영 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 ‘착한기업’수식어 붙는 LG도 한국 재벌의 한계 못 넘어

한국 재벌 총수일가가 일삼아 온 경영권 승계를 ‘착한기업’의 대명사인 LG그룹이 되풀이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비판도 피해갈 수 없다.

포춘지는 구본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LG전자는 계열사 70개에 걸쳐 123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재벌 중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 그룹을 포함한 한국의 많은 재벌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권력 이양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억만 장자 폴 싱어의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같은 활동가 투자자들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이러한 승계 계획이 항상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검증되지 않은 후계자일지라도 경영 승계를 강행해 온 한국재벌들의 행태가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 봄, 창업주 시절부터 ‘인화(人和·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함)’를 기업 경영의 중요한 가치로 삼아온 LG의 착한기업 이미지에 금이 가는 일도 생겼다.

국민청원에 LG서비스센터 직원들의 하소연과 양심고백이 이어졌고 100억 원대 양도세 탈루 의혹 등으로 9일 검찰이 LG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말, LG상사 등 그룹 계열사 정기 세무 조사를 진행한 국세청은 사주 일가가 계열사 주식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100억 원대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11월 LG상사가 ㈜LG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오너 일가들의 보유 지분(24.7%)을 지주사가 매입할 때 내야 할 세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했는지 집중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대상에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자 구 상무의 친아버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구본길 희성전자 사장 등이 포함됐다. 

검찰은 LG상사의 자회사인 물류 계열사 판토스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LG 그룹의 안정적인 경영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고 평가되고 있는 LG의 지주회사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논문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경영사학회가 발행한 동의대학교 김동운 경제학과 교수의 논문 ‘LG그룹 지주회사 체제와 개인화된 지배구조 강화, 2001-2010년’에는 2001년 4월부터 한국 재벌로서는 최초로 본격적인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한 LG의 사례를 집중 연구한 내용이 담겼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LG그룹은) 2005년 1월까지 다섯 단계에 걸쳐 용의주도하게 새로운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지주회사체제가 도입된 이후 나타난 가장 특징은 '소유권 및 경영권의 동반 강화 및 구본무로의 집중'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배구조가 외형적으로는 단순·투명해졌지만 구본무의 1인 체제가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지배구조의 실질적인지각 변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늬만 달라졌을 뿐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개인화된 지배구조라는 한국재벌의 본질은 여전히 계속되면서 보다 선명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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