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쟁력 갖춘 기업들 먹잇감 취급...참여연대 "대기업 취약한 지배구조도 문제“

● 엘리엇 창업자 폴 싱어 회장 ‘독수리’ ‘메뚜기’ ‘뱀파이어’ 별칭
● 피도 눈물도 없는 美유대계 자본 동원 한국 자본 시장 큰손 횡포
● 현대차 자사주 매입하고 정면돌파...이달 말 현대모비스 주총 최대 승부처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개편에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세가 만만치 않게 흘러가면서 이달 말로 예정돼 있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합병안을 상정할 주주총회에 재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달 23일 공개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고 순이익의 40~50%를 배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대차를 비롯해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의 주식을 10억여 달러 보유하고 있다"면서 "오는 29일 실시되는 주총에서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며 삼성과 표 대결을 펼쳤던 엘리엇이 3년 만에 다시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지배구조개편이라는 동일한 사안을 두고 반기를 들면서 갈등 국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3년 만에 나타난 엘리엇의 정체는?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관철시키는 행동주의 헤지 펀드로 전 세계 헤지 펀드 중 9위(2017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헤지 펀드란 소수의 투자자들을 비공개로 모집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기업형 펀드를 말한다. 이중에서도 행동주의 펀드는 더 적극적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집단을 뜻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설립자인 ‘폴 엘리엇 싱어’는 1944년 유대인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하버드로스쿨에서 법 전공을 한 후 변호사가 된 엘리엇은 1977년 주변인들로부터 130만 달러를 끌어 모아 엘리엇을 창업했다. 본사는 뉴욕에 있다. 그의 재산은 350억 달러(한화로 약 36조)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보유한 주식 현항을 살펴보면, 월가 내 또 다른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 EMC. 정유회사 헤스코프, 우리에게는 보톡스 브랜드로도 유명한 '엘러간'도 있다, 글로벌 최대 알루미늄 생산 기업인 알코아 지분도 2015년 4분기부터 매수활동을 통한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보수적인 공화당원이면서도 그는 아들이 동성애자인 탓에 ‘동성 결혼’ 입법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 왔다. 그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1000만 달러 이상을 쾌척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들과 아들의 동성 배우자와 함께 가족밴드를 구성해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여러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폴 싱어 회장에게는 ‘독수리’ ‘메뚜기’ ‘뱀파이어’ 등의 별칭이 따라다닌다.

부도 위기의 국가, 지배구조 전환을 앞둔 기업을 골라가며 먹잇감으로 삼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투자 전략을 써오면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1996년에는 페루 국채를 1140만 달러에 사들여 5600만 달러를 받아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국외 도피를 시도했는데 엘리엇은 돈을 받아낼 목적으로 대통령의 제트 비행기를 압류했다.

아프리카 콩고 국채에 투자해 콩고 정부가 받은 국제사회의 빈곤 지원금을 악착같이 받아낸 적도 있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국채 투자 상환 소송을 벌여 15년 만에 승소한 엘리엇의 집요함은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엘리엇은 2001년 1000억 달러 규모의 대외부채를 지고 디폴트(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아르헨티나는 2005~2010년에 걸친 채무조정에서 채권자 93%를 설득해 원금의 4분의 3을 탕감받기로 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채권자들이 한 푼이라도 건지겠다며 내던진 부실 채권을 계열사를 통해 원금의 20%수준으로 대거 사들였다.

이후 엘리엇은 “원리금을 전액 반환하라”며 미국 뉴욕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엘리엇은 2012년 결국 재판에서도 승소했다.

아르헨티나가 상환을 거부하자 엘리엇은 2012년 아프리카 가나에 정박 중인 아르헨티나 군함 군함 3척과 선원 200명을 억류하기까지 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2015년 채권 원리금 75%를 갚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엘리엇은 이로써 6억1,700만 달러(악6천억)를 투자해 22억8000만 달러(약2조4천억 원)를 벌었다.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히너는 폴 싱어를 “유혈 사태를 일으키는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국가를 상대로도 절대지지 않는 엘리엇은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사퇴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항공우주부품 업체인 아르코닉(Arconic)의 최고경영자(CEO) 클라우스 클라인펠드(Klaus Kleinfeld)를 사퇴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엘리엇은 지난해 1월 주가수익률이 형편없다며 아르코닉의 최고경영자(CEO) 클라우스 클라인펠드(Klaus Kleinfeld)의 사퇴를 요구했고 결국 이사회는 4개월 뒤 클라인펠드를 사퇴시킬 수밖에 없었다.

‘포춘지’에 따르면 엘리엇은 이때 사립 탐정을 고용해 클라인펠드와 아르코닉 임원들의 약점을 찾아다녔다.

클라인펠드가 CEO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엘리엇은 지난해 5월 아르코닉의 주주들에게 종이 위임장과 클라인펠드가 얼마나 경영을 못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담긴 동영상을 뿌렸다.

엘리엇은 사설탐정 고용을 부인했지만 엘리엇이 클라인펠드의 뒤를 캤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엘리엇의 희생양이 됐다. 버핏 회장은 지난 2017년 미국 에너지업체 온코 인수전에서 싱어 회장과 정면대결을 펼쳤다. 싱어 회장은 온코의 모기업인 에너지퓨처홀딩스의 채권을 사모아 인수 반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최대채권자 지위에 올랐다.

이후 버크셔의 인수 제안가 185억 달러가 “너무 싸다”며 반대했고 버크셔는 결국 온코를 얻는데 실패했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엘리엇은 올해 4월 1971년부터 이어온 영국의 식당체인점 화이트 브레드의 지분 6%를 인수해 프리미어 인 호텔과 코스타 커피 체인을 분할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굴복시켰다.

엘리엇에게 패배를 안긴 건 한국의 삼섬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유일했다. 하지만 이 싸움 조차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연장선상에 있다.

엘리엇은 최근 "2015년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며 우리정부를 상대로 7천억 원대 ISD (투자자-국가 간 소송)을 걸어왔다.

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엘리엇은 직원들의 소셜 미디어 사용도 금한다. 그는 직원들의 얼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도 극도로 꺼려한다. 그만큼 보안에 신경을 쓴다는 말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엘리엇이 한국 기업들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는 상황을 곱씹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소비자경제>를 통해 “엘리엇의 행태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면서도 “그간 대기업들이 총수일가를 위해 분식회계를 하고 불법을 일삼으며 국민에게 피해를 준 것들이 공격의 빌미를 준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한국 기업 총수들이 지분이 얼마 없으면서도 불법 경영 승계를 일삼아 온 것들이 엘리엇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엘리엇만 탓할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합리적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꼬집었다.

◇ 현대차그룹 비상.. 향방은?

엘리엇의 태클에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도 현대차 합병안에 반대 하고 나서면서 현대차그룹이 비상에 걸렸다.

관심은 2대주주로서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의 선택에 쏠리고 있다.

현재 언론을 통해 “국민연금이 현대글로비스와의 분할·합병 안건에 대한 찬성 여부를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통해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관련 보도는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아직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행사한다. 투자위원회 구성은 기금 본부장이 위원장이 되고 실장 8인과 본부장이 지명하는 팀장 3인이 참석 가능하다.

국민연금은 투자위원회 의결 일정 공개도 꺼려하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한편 한국투자공사(KIC)는 이해 상충(相衝), 법령 위반 여부 등을 감안해 엘리엇 펀드와의 투자계약 해지를 검토하겠다고 17일 밝혔다. KIC는 지난 2010년 대체 투자 수단으로 헤지펀드 프로그램을 도입해 엘리엇에 5000만 달러(약 540억 원)를 투자 위탁했다.

◇ 정치권, 엘리엇방지법 도입 두고 공방

엘리엇과 같은 해외 투기자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윤상직 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15일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인 차등의결권과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도입 등의 상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차등의결권 한 개 주식에 여러 개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제도이며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해 적대적 M&A 시도자의 지분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삼성, 현대자동차 등 국내 굴지 기업들이 엘리엇 매니지먼트 같은 글로벌 ‘기업 사냥꾼’의 표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배임 면제’ 조항도 신설했다. 경영진이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선의의 판단 아래 경영상 결정을 내렸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특별배임죄 판단 시 정상을 참작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차등의결권 제도가 대기업 편들기 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차등의결권이 도입되는 대기업이 증시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훨씬 많아져서 경제 집중 현상이 더욱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차등의결권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수단보다는 집중투표제 등 대주주 견제장치를 도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이런 탓에 올 상반기 국회가 만료되는 6월 전까지 여야가 타협점을 찾을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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