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라고 속이고 대학 강의실서 CD 한장 40만원 강매 계약 후 대금 독촉

 

2010년부터 업체명을 변경해 온 업체가 '교수, 학생회'를 사창해 대학 강의실에서 신입생을 상대로 CD한 장을 40만 원 가까운 고가에 팔고 있다.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최근 대학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자격증 취득 등이 가능하다며 고가의 강의 CD를 판매하는 업체 때문에 피해 입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소비자경제>에도 같은 업체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학생들의 제보가 일주일 만에 열 건도 넘게 들어왔다. 

◆ 신입생 노려 고가 CD판매‥.환불 기간 지났다며 입금 독촉 

충남 아산에 위치한 H대에 재학 중인 K군은 지난 3월, 수업이 끝난 후 강의실에서 39만6천 원짜리 CD판매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K씨는 “판매하는 남성이 대학교수라고 소개한데다 대학 강의실에서 벌어진 일이라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줄 알고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판매업자는 컴지식뱅크라는 인터넷 강의 판매 회사로 오피스, 프로그래밍, 그래픽 등의 30여개 강좌를 온라인뿐 아니라 CD한 장에 모아 방문판매를 하고 있다. 

대학생활과 자격증 취득에 꼭 필요한 CD라며 계약서에 개인정보와 동의, 확인, 수령만 쓰고 빨리 제출하라고 했기에 K군은 계약서를 제대로 살펴볼 시간도 없이 떠밀리듯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만 것. 

K군은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계약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계약서 작성일로부터 2주가 지나자 예기치 못한 독촉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K군이 받은 문자에는 납입금이 연체돼 2%의 가산금이 쌓여 40만3920원을 납입하라는 것과 회원정보를 당사 특수관리팀으로 이관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컴지식뱅크가 학생들에게 빨리 CD금액을 입금하라며 독촉 문자를 보내고 있다.

 

같은 업체로부터 CD를 구매하고 속수무책으로 입금 독촉을 받고 있는 학생은 K군 뿐이 아니다. K군 외에도 같은 강의실에 있던 학생 반 이상이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경제> 제보란에는 같은 업체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는 여러 대학 학생들의 하소연이 올라오고 있다. 주로 기숙사나 자취생활을 하는 수도권, 지방대생들이었다. 

매일 집에 갈 수 없는 학생들이어서 환불 가능 기간 14일을 넘겨버리기 십상인 점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만19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한 계약은 민법 제5조에 의거해 취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소비자들이 관련 조항을 들어 계약 해지를 요청해도 해당 업체는 환불기간이 지났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용인 죽전 소재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둔 학부모 J씨는 “아들이 기숙사에 있어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우리 아들은 아직 미성년자다. 정황을 알게 된 후 여러 번 메일을 보내고 환불 요청을 했는데도 아무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경제> 취재진이 ‘학부모’라며 해당 업체 고객센터로 직접 연락해 보았다. 컴지식뱅크 고객센터는 ‘학부모’라는 소개가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  '교수, 학생회' 사칭에 “학교와 제휴”등 거짓말 학교도 골치

해당 업체 판매업자는 교수를 사칭하거나 학교와 제휴해 가격을 저렴하게 주는 것이란 식의 거짓 홍보로 학생들에게 계약서 작성을 유도해 왔다. 

학교 교수나 강사들도 속여 새내기들만 듣는 수업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공략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대학교 학생과 남윤성 씨에 따르면 컴지식뱅크는 시간강사들에게는 “00과 교수인데 학생들에게 잠깐 안내하겠다.” 교수들에게는 “학생과에서 허락받고 왔다”는 등의 거짓말로 학교 강의실에서 버젓이 CD를 판매해 왔다

그는 “중, 고등학교처럼 학교 안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조사해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학교마다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안내문을 돌리거나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실정이다. 

소비자원에서도 지난 2017년 방문판매 교육서비스 피해와 관련해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한 바 있다. 

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교육관련 방문판매로 인한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2015년 296건, 2016년 440건, 2017년 232건으로 나타났다. 

2016년부터 2017년 상반기 사이 피해구제 접수된 570건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한 결과, 위약금과다 또는 해지처리 거부 등 ‘계약해지 관련’소비자 피해가 238건(41%)으로 가장 많았다. 

 계약자가 미성년자임에도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계약 후 계약취소를 거부하는 ‘미성년자 계약취소 거부’는 167건(29.3%), 상품홍보(무료체럼, 대금 미납부시 자동해지 등 제시)를 가장해 도서, CD 등을 제공한 후 대금을 독촉하는 ‘홍보 가장 판매 후 대금 청구’는 143건(25.1%)로 나타났다. 

◆ 순진한 대학 새내기 괴롭히는 컴지식뱅크는 어떤 곳? 

컴지식뱅크에 관한 소비자 제보가 잇따르면서 <소비자경제>에도 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제보란에 업체명이 기재돼 있는 것을 지우지 않으면 당사 법무팀에서 소비자경제와 제보자를 상대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소비자경제>취재진이 직접 해당 주소지를 찾아가 봤다. 

컴지식뱅크 사무실이 있는 용인시 기흥구의 6층짜리 상가 건물이다.
컴지식 뱅크는 6층짜리 상가건물 공유오피스에서 1인 사무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컴지식뱅크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가 건물 6층 공유오피스에서 1인 사무공간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대표가 부재중이라 만나볼 수도 없었다. 

공유오피스 사업자는 “컴지식뱅크 대표는 사무실에 매일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경제>는 컴지식뱅크 김00 대표와 전화 연락을 시도했다. 취재진이 “학생들이 계약해지를 위해 연락해도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고 하는데 왜 그런 것이냐”라고 묻자 “판매 직원은 자신을 포함해 두 명 뿐이다. 아르바이트생을 쓸 때도 있어서 전화 응대를 다 하기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법무팀이나 특수관리팀을 따로 갖출 만한 규모가 아니란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취재진이 재차 “법무팀이 있는게 맞냐?”라고 묻자, 김 대표는 “관리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교수라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수업 후에 CD를 홍보 하니 학생들 스스로 내가 교수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라며 잡아 떼기도 했다.  

김 대표는 상호를 계속 바꿔가며 인터넷 교육서비스 방문판매를 지속해 온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 IT지식정보센터, 2016년 국제에듀케이션, OPSD대학생지원센터, 2017년 아태커리어란 이름으로 방문 판매를 해왔다. 

한국소비자원에 지난해 3월부터 6개월 사이에  ‘아태커리어교육지원센터’와 관련한 소비자 불만상담은 309건 접수된 바 있다. 

◆ 방문판매법 상 계약 철회 기준은 14일 아닌 3개월

만약 소비자들이 입금 독촉 문자를 무시한 채 금액을 납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상관없다. 

법무법인 서상의 김종우 변호사는 “해당 업체가 입금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소송을 걸기에는 계약서 자체가 미흡하다”라고 판단했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도 대학생 대상 방문판매 피해와 관련해 소비자가 계약 체결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특별지원과정’의 신청서만 작성한 경우에는 계약이 성립된 것이 아니므로 처음부터 대금 지급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조정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 변호사는 만 19세가 넘었어도 계약철회가 가능하다고도 조언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계약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방문판매법상 계약 철회를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을 본 사안에서는 3개월로 주장할 수 있다는 것. 

방문판매 시 계약 체결을 강요하거나 청약 철회 또는 계약 해지를 방해할 목적으로 소비자를 위협하는 행위,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하여 소비자를 유인 또는 거래하는 행위, 계약 해지를 방해하는 행위는 모두 금지 돼 있다. 

이중 어느 하나에라도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김 변호사는 “판매한 물건이 그만큼의 값어치가 없다면 사기죄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CD에 담긴 프로그램의 가치가 시장가격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거나 수업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사기죄가 성립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 방문판매 신고제 구멍 숭숭

판매업자가 강의실까지 들어가 학생들에게 고가의 CD를 버젓이 판매할 수 있는 데는 ‘방문판매 신고제’라는 허술한 규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방문판매업자 또는 전화권유판매업자는 상호, 주소, 전화번호, 전자우편주소(법인인 경우에는 대표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주소를 포함),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공정거래위원회 또는 해당 업체 소재지 구청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해당 구청에 문의한 결과 컴지식뱅크는 신고를 해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용인시 기흥구 산업환경과 지역경제팀 하나영 실무관은 “방문판매업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누구나 신고만 하면 방문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 

한편 피해 학생 부모 중 몇몇은 해당 업체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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