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법 시행되도 달라질 것 없어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한국은 2005년부터 11년 연속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었지만 판매에 열을 올리는 만큼 소비자를 위한 정책은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결함이 있는 새 차를 교환·환불해주는 '한국형 레몬법'이 내년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이조차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 결함 발생 시 소비자 찬반신세 "애물단지 팔아놓고 나 몰라라"

툭하면 고장나던 올뉴 쏘렌토 차량이 운전석 의자 플라스틱 커버마저 부서져 떨어졌다.

 <소비자경제> 제보창에도 자동차 관련 소비자 불만사항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2015년 3월에 올 뉴 쏘렌토 신차 구입 후에 뜯어서 교체한 수리 이력만 8번입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판매해놓고 서비스는 너무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닙니까?"

윤 아무개 씨는 최근 <소비자경제>에 차량 수리 이력을 읊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처음엔 연료 센서에서 이상이 생겼다. 두 차례 수리를 했다. 계기판 연료센서를 교체하고 직접 검사소까지 가서 기계판을 교체했다.

이후 트렁크 문에 열리지 않아 도어락을 교체했다. 주행 중 차량이 갑작스럽게 멈추는 일도 있었다. 액셀을 아무리 밟아도 차가 움직이질 않아 견인차를 불러 흡배기 쪽 부품을 교체했다.

또 오토스톱 불량 배터리 점검 및 수리 불가 안내를 받고 결국 지인을 통해 자체 수리를 해야 했다. 엔진룸 오일 누수로 3일간 차량을 이용하지 못한 채 택시를 타고 일을 보러 다녔고 제너레이터 불량으로 다시 이틀간 차량을 이용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대차 서비스조차 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엔진에서 모터소리가 심해져서 점검을 받아보니 터보 팬 불량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리를 할 때마다 부품을 정품으로 교체했는지도 알 길은 없다.

윤 씨는 차량을 구입한 대리점과 본사에 모두 연락을 취해봤지만 “누적주행거리가 길어 교체는 불가능하다”는 대답뿐이었다.

운전석 의자 플라스틱 커버 까지 부서져 떨어졌지만 윤 씨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다.

윤 씨는 “할부도 끝나지 않은 자동차가 이렇게 고장이 잦은 게 말이 되느냐. 수리 때문에 며칠간 서비스센터에 차를 입고해도 대차 서비스조차 해주지 않는다. 돈도 너무 아깝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고 언제 사고 날지 몰라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3월 내수와 수출 합산 총27,059대를 판매하며 전월 대비 69.2%를 올린 르노삼성과 관련한 소비자 제보도 입수됐다.

소비자 정 아무개 씨는 신차 구입 후 부품 여기저기 부식된 것을 알고 환불 또는 교환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원주에 거주하는 또 다른 소비자 정 아무개 씨는 2018년 2월 말, 르노삼성자동차 QM3(2017년 9월 생산)를 구입 후 스노우타이어 교체 중에 여러 부품에 녹이 슬고 부식된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정 씨는 “교환 또는 환불 보상을 요구”했지만 해당 대리점에서는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이라 이동 중 해풍을 맞아 그런데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며 무상엔진오일 교환 1회권과 현금 20만 원을 보상금액으로 제시했다.

무책임함에 화가 난 정 씨는 1인 시위 내지는 대리점앞에서 차에 불을 질러서라도 심각함을 알리고 싶었다며 <소비자경제>에 하소연했다.

정 씨는 소비자보호원에 피해보상구제 신청을 하고 싸운 끝에 차량을 일부 수리, 부품 교체에 상품권 50만 원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차량 교환은 하지 못한 것.

르노삼성 홍보팀 관계자는 “해당 건은 성능에 지장이 없는 상태인데도 고객이 정비를 거부하고 환불 또는 교환을 무리하게 요구한 건이었다"고 해명했다.

<소비자경제>가 차량이 해외에서 들어오는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차량 부식, 결함과 관련해 어떤 관리와 조치가 취해지느냐 물었더니 “해외에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은 장시간 배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후차량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이 들어간다. 그래서 국내에 들어온 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다”고 주장했다.

이에 환불, 또는 교환 규정을 알고 싶다고 재차 물었더니 “내부 문건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못 받았다.

이밖에도 자동차쇼핑몰인 보배드림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신차 결함으로 고생한다는 소비자들의 글들이 올라온다.

◆ 레몬법 시행되면 달라질까? 전문가들 “소용없다”

2019년 1월부터 차량 및 전자 제품에 결함이 있을 경우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교환, 환불, 보상 등을 하도록 규정한 미국의 소비자보호법인 레몬법이 한국에도 도입된다.

내년 본격 시행을 앞 둔 레몬법에 따르면 새 차를 산 뒤 1년간 주행거리가 2만㎞ 미만인 경우 중대결함 2회, 일반 하자 3회, 수리기간 30일을 초과하면 차량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개정법 역시 교환·환불 조건이 까다로운데다 국내 소비자보호법상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 결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교환·환불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비자원이 교환, 환불을 해주라고 판결을 내려도 권고 사항일 뿐이라서 판매자가 안해주면 그만이다.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레몬법이 시행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이는 “소비자를 마루타 삼는 행태”라고 강노 높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실질적인 레몬법을 도입하기 위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징벌적보상제 도입이다.

김 교수는 “미국은 차량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의 존립이 흔들릴 정도로 천문학적인 액수를 벌금으로 물린다. 그 정도로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판결이 제작자, 사업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동차 결함을 운전자가 밝히도록 되어있다. 자동차의 자사 차량의 결함이 없다는 것을 사업자가 밝혀야 하는 미국과는 현저히 다르다.

국토부 관계자가 "이달부터 소비자불만센터, 리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운영 등 지속적인 과제 발굴을 통해 종합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음에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차량 결함을 운전자가 밝혀야 하는 현행법에서 판매자는 ‘운전자 과실’로 몰아버리면 그만이라는 것.

이런 가운데 실효성 있는 레몬법 추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오고 있다.

지난 3월 13일 올라온 국민청원 중에도 BMW가 침수 의심 차량을 판매하고도 교환/환불 거부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2017년 12월 20일 BMW를 실은 선박이, 방파제와 충돌하여 침수가 되었는데도, BMW는 차량손상이 없다면서 판매하고 있다. 언제까지 대한민국 소비자가 옥시 사태와 같이 목숨을 건 인간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하나?”라며 하소연 하며 실효성 있는 레몬법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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