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칼럼] 제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 저희들에게 어느 교수님께서 하셨던 질문이 기억납니다.

“학생들은 의과대학생이 되면 어떤 점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나?”

물론 주변에서 서울대 의대를 다닌다고 하니까 우러러보는 시선들에 잠시 우쭐하기도 했었고 ‘좋은 결혼상대를 고를 수 있다’라든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라든가 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던 일반적인 의과대학생들에 대한 생각들이 얼른 머릿속에 떠오르긴 했었습니다만 막상 의과대학을 다니니 뭐가 좋으냐고 물으니까 딱히 집어내 말할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다들 저와 같은 생각들이었는지 우물쭈물 하고 있을 때 해주신 교수님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의과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앞으로 의사 친구들이 많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조금 김이 빠질만한 답변에 왜 저리도 당연한 것을 장황하게 말씀하시나라고 생각했을 뿐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인지 잘 몰랐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당연한 결과겠지만 교수님 말씀대로 저는 지금 제 주변에 의사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어느 병원에서든 제 나이대의 의사들이 가장 활동적이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적인 문제라면 그것이 어느 과의 문제든지 간에 손쉽게 물어보고 저의 가족, 친지들이나 제가 보던 환자를 믿고 의뢰할 수 있는 ‘의사 친구’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습니다. 점점 의사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교수님 말씀대로 그렇게 훌륭한 의사들을 친구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의과대학을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누리기에는 과분한 특혜라는 사실을 점점 공감하게 되면서 말입니다.

다른 의사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종종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습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낯선 목소리의 노년의 여성분이었고 분명히 저에게 걸려온 전화는 맞기는 하나 긴 자기소개가 필요한 전화였습니다.

“어...그래... 어떻게 얘기해야하나...난 어렸을 때 자네를 본적이 있는데 자네는 날 기억 못 할거야. 난 자네 아버님하고 먼 친척 관계에 있긴 하지만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OOO라고 하네. 공부 잘하는 막내아들이 의사가 되었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참 장하고 축하하네.......다른 것이 아니라 뭐 좀 물어볼게 있어서......”

그 후 짧지 않은 시간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분과 여러 가지 의료적인 문제에 대해 상담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니 얼마나 다급하고 물어볼 곳이 없었으면 얼굴 모르는 친척까지 수소문해서 전화하셨을까 싶어서 전화하신 분이 어색하지 않게 잘 상담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얼굴도 모르는 초등학교 동창,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등학교 선배 등 이러한 의료 상담을 위해 저를 찾는 전화를 적지 않게 받고 있습니다.

의료라는 것이 참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많고 어떤 결정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왠지 속는 것만 같고 의사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자기가 책임지지 않기 위해 자기 방어용으로 하는 얘기인 것만 같고 심지어 다들 돈만 밝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건강은 소중한 것이기에 생판 모르는 의사의 말만 믿고 건강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이 왠지 잘하는 일인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아무 이해관계 없이 진솔하게 ‘사실’을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는 의사’를 찾게 되는 그 마음들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척 중 의사들이 수두룩한 사람들은 잘 공감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정말 가족처럼 친구처럼 의료 문제를 상담하고 안내해 줄 ‘아는 의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결론적으로 이 글을 통해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의사들은 아는 의사가 많아서 좋다’라는 것을 자랑하려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의사들이 누리는 특혜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매우 보편적인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건강관리를 시작하는 첫걸음은 동네에 쉽게 갈 수 있는 병원에 마음에 드는 의사 한 분 정해서 그 분을 ‘아는 의사’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가서 상담하시고 정기적인 검진도 받아가며 자신의 건강기록을 꾸준히 그 분에게 만들어 놓으시면 됩니다. 우리나라 의료의 최대 강점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쉽게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동네마다 병원이 있고 의사 한번 만나는데 몇 천원이면 가능한 나라에서 이러한 장점을 활용하지 않으시는 것은 매우 아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건강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렇게 자신만의 ‘아는 의사’, 곧 주치의를 만드는 것입니다.

의사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자신을 주치의로 생각하는 환자에 대해 의사가 느끼는 책임감은 가족에 대한 마음보다 결코 적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국민 모두가 주치의를 가지게 되는 국민 주치의 제도가 있었으면 더욱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굳이 자식들을 의사로 만들지 않아도, 굳이 의사 사위를 보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아는 의사’를 만들고 그와 함께 건강을 관리해 나가시는 것이 어렵지도 않고 매우 효과적인 건강관리 방법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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