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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시무형문화재로 등록된 3대째 붓 장인 백산 전상규 씨붓과 함께한 53년...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백산 전상규 씨가 자신의 붓연구소에서 정성스레 만든 붓을 살펴보고 있다.

[소비자경제신문=권지연 기자] 붓 장인 전상규 씨의 집을 찾았다. 가치를 잃어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53년을 한 길만 걸어 온 장인의 작은 집에는 온통 붓이 가득하다. 

붓 박물관을 만들어 누구나 붓을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전상규 씨는 그의 집 방 한 칸을 연구소로 사용하고 있다. 어떤 붓은 실랄한 비판과 쓴 소리를, 또 어떤 붓은 낭만과 해학을 담아 낼 것이다. 정성 가득한 붓 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

◇ 3대 째 이어온 붓 사랑.. 전통문화 계승

“우리나라 붓의 특징은 기후가 좋다보니 붓을 만들면 붓이 부드럽게 올라갑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털 재료 자체가 무겁거든요. 기름도 약품으로 빼기 때문에 수명이 짧아요. 하지만 우리 털은 친환경으로 기름을 빼기 때문에 확실히 차이가 나죠.”

국산 붓과 중국산 붓의 차이를 설명하는 백모 필장 전상규 씨의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평생 붓 매기를 하며 살았는데 붓 얘기만 나와도 신이 나 밤이 새는 줄 모를 만큼 즐겁단다. 천직이다.

붓 장인이 말하는 좋은 붓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붓끝을 모으면 뾰족해야지 몽톡해서는 안 된다.

둘째, 붓털을 쥐어 부채처럼 쫙 펼쳤을 때 중간에 갈라짐이 없고 붓끝이 가지런해야 한다.

셋째, 붓끝 주위가 둥글게 꽉 에워싸며 둥근 송곳 모양을 하면서 어느 한쪽이 훌쭉하거나 빠져 보이면 안 된다.

넷째, 탄력성이 풍부하여 붓을 눌러쓴 다음 다시 거울 때 휘었던 붓털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붓 만드는 도구

 

 

 

 

 

 

 

 

 

 

 

 

 

백산 전상규 씨는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백운동에서 태어났다. 서당을 하며 붓을 만들었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버지가 여름엔 농삿일을, 겨울엔 붓을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못먹고 못살던 시절, 붓은 가족들 입에 풀칠이라도 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어깨 너머로 붓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품 붓을 만드는 박순 씨 밑에서 붓 매기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매일 힘들었지만 잘 만들어진 붓만 보면 설레었다.

“붓에는 권력에 맞서 바른 소리를 마다않던 선비들의 기개와 시와 그림을 즐겼던 선조들의 기품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헤아려 붓을 만들다보면 늘 즐거웠죠.”

당시만 해도 붓의 중심지는 서울이었다. 전남에서 서울을 오가며 서울 인사동 대신당 필방에 붓을 내다 팔았다. 그러다 1979년 3월 8일 서울로 상경해 40년간 작품 붓 만들기에 매진했다. 그렇게 붓은 어느 새 전상규 씨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전 씨는 “3대째란 이름보다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붓 만드는 과정도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집한다.

붓 한 자루를 만들건, 50자루를 만들건 한 달이 꼬박 넘는 고된 과정을 거치기는 마찬가지다. 그 중 기름 빼는 작업이 가장 까다롭다. 그야말로 수고로운 과정이다.

“기름 빼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데 8번 정도 빼려면 8일 정도 걸려요. 초벌해야죠. 털 골라야죠. 묶어야죠. 건조시켜야죠. 20번이 넘는 작업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붓 한 파스 만드는데 40일 정도가 걸려요. 이렇게 작업을 해서 붓이 마음에 안들게 나오면 재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일주일 정도가 더 소요됩니다. 그래서 총 45일 정도를 잡고 작업을 합니다.”

그는 이런 과정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욕심을 버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그 날의 작업을 되새겨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마음자세로 만들어야 좋은 붓이 만들어집니다. 욕심을 부려 날짜를 앞당기거나 과로를 해서도 안 됩니다.”

백산 전상규 씨와 아들 전희태 씨가 붓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붓 만드는 과정은 욕심이 없어야 하지만 재료 수급은 늘 욕심이 끝이 없죠”

백모 필장인 전상규 씨는 주로 염소털을 이용해 붓을 만든다. 털만 봐도 염소의 어느 부위인지를 알아챌 만큼 긴 세월 붓 하나만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그는 TV에서 흰 염소만 나와도 눈을 떼지 못한다. 직접 염소를 기른 적도 있다. 좋은 붓을 만들기 위한 재료수급엔 언제나 욕심이 끝이 없다.

“흰 염소, 그것도 1년에서 1년 6개월가량 된 어린 수 염소의 털을 가장 쳐줍니다. 요즘이 털을 구할 때인데 좋은 털을 골라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재료수급도 어렵지만 더 안타까운 건, 값 싼 중국산 붓에 밀려 우리 붓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 전 씨에 따르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붓의 99%는 중국산이다.

그는 “약 15년 전부터 중국산 붓이 밀고 들어오면서 장인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더 한국적인 것을 개발하고 알려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그의 작은 연구실에서는 몇 해 전부터 장남 전희태 씨와 둘째 딸과 사위인 전소희, 오충현 씨가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붓 매기를 배우고 있다.

“좋은 사람이 좋은 붓을 만들고 좋은 붓이 좋은 글을 만든다.”

필기구가 넘쳐나고 컴퓨터 자판으로 쉽게 글자를 찍어내는 시대에 손 글씨로 정성껏 써 내려가며 마음과 생각을 담았던 전통 붓의 가치가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잃어가는 가치에 대한 향수가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지연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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