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 "노동정책 선행되지 않고 보육정책 실행해봐야 고육지책 불과" 지적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모임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과 정책간담회와 정책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권지연 기자)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졸업 후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했던 김인영(40세) 씨는 몇 해 전 직장을 그만 둔 경력단절 여성이다. 결혼 후 자녀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다.

“저는 보육교사여서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애들 돌봐줄 사람에게 돈을 쓰느니 제가 돌봐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엄마가 옆에서 해 줄 일들이 더 많더라고요. 특히 학교 끝나고 오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고민도 했는데 어쩌겠어요.”

김 씨의 고민은 대부분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여성들이 갖는 공통된 고민이다.

실제로 통계청의 '경력단절여성 및 사회보험 가입 현황' 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15∼54세 기혼여성 905만3천 명 중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 둔 경력단절 여성이 181만2천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30대 여성이 92만8000명(51.2%)으로 반 이상을 차지한다. 40대도 59만 명으로 32.6%에 달한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가능성이 큰 연령대의 경력단절 비중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신설한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학령기 아동을 둔 학부모의 양육부담을 덜어주고 초등 돌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초등학교 수업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초등학교 수업은 평균 오후 2시 전후로 끝난다.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맞벌이 학부모들에게 ‘공포의 시간’으로 통하는 2시에서 6시 사이 시간의 돌봄 공백을 메워보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이 같은 시간에 수업을 마친다.

시간으로 따져도 하루 평균 정규수업이 한국은 초등 1·2학년 2.93시간, 초등 3·4학년 3.47시간, 초등 5·6학년 3.87시간인데 비해 미국은 4.9시간, 프랑스 4.8시간, 영국 4.67시간이다.

하지만 교육계는 돌봄 문제를 수업시간을 확대해 해결하겠다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초등학교 수업시수(각 교과목 이수하는 데 필요한 시간단위)가 늘어나면 학생들의 학업 부담은 물론 교사들의 수업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전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저 같은 경우는 담임을 맡고 있으면서 상담교사도 제가 하고 있어요. 행정업무도 해야 하고요. 교사들의 부담이 너무 커지는 것 같아요. 너무 쉽게 뭐든 학교로 몰아서 해결하려는 게 아닌지 싶네요.”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좋은교사운동본부 임종화대표는 수업시수를 늘리는 것 이전에 교육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구상이 먼저 이뤄져야 함을 지적했다.

“저학년 같은 경우는 아동기의 특징상 공부를 길게 하기는 힘들잖아요. 놀이나 체험같은 것들이 이뤄져야 하죠. 교육적인 고려가 이뤄지고 완결된 구조로 방안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초등학생 수업시수를 늘리기보다는 칼퇴근법 통과, 노동 시간 단축 등 노동 환경 개선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노동정책이 선행되지 않고 보육 정책을 실행해봤자 고육지책에 불과하단 것이다. 

초등학교 수업시수 연장에 대한 반발과 진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좀 더 심도깊은 논의와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이름부터 바꾸라"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개념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최근 제기됐다.

최근 정치하는엄마들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논하며 ‘저출산’이란 용어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출산’ 용어 자체가 국가가 개입해 인구를 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용어” 인데다 여성의 출산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남성이 배제돼 있어 인구감소의 여러 사회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저출산 정책이 아니라 ‘가족 정책’의 틀 내에서 일하는 부모의 노동권과 부모권, 아이가 양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아동권이 함께 보장되어야 하며 ‘저출산’보다는 ‘저인구화’로 개념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