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원청업체 갑질 악순환 내몰리는 하도급 실태

2차밴더 하도급으로 의류 제품을 생산하는 한 의류제조 업체가 원청기업의 부당한 갑질 계약으로 폐업 직전에 놓여 있다. 제도권의 감시에서 벗어난 하도급만 죽어나는 뿌리 깊은 불공정거래 관행은 여전히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홈쇼핑에 의류를 납품하는 한 섬유업체가 원청업체의 갑질에 시달리다 못해 최근 폐업직전에 놓였다. 

S섬유업체의 의류 상품은 CJ홈쇼핑에서 판매되는 2차 밴더 납품 하청업체였다. 의류제품은 주로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에서 OEM방식으로 다양한 종류를 생산해 왔다. 

그런데 2012년 설립 이후 연매출 30억을 달성할 정도로 성장해오다 지난해 여름부터 경영난에 시달리며 현재 파산 직전에 내몰려 있다. 

◇ "노예처럼 일하고 잇몸이 다 부르트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고는 베트남에서 터졌다. 스트라이크(파업)이 발생하면서 보름가량 납품이 지연된 것.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원청업체로부터 클레임이 발생했다. 납품가는 약 3억이었다. 

1차 밴더 업체는 판매가를 기준으로 한 고액의 손해배상 청구까지 해왔다. 의류 6만 장을 돈이 없어 통관을 못시켰다. 납품해야 할 제품은 6개월째 인천 세관에 고스란히 묶여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샘플을 만들던 국내 생산라인도 가동을 중단했다. 함께하던 직원 4명도 내보내야 했는데 문제는 끝이 아니었다. S업체가 도산 위기에 처하면서 협력업체 5곳까지 줄줄이 문 닫을 지경에 이르게 된 것.

S대표는 ‘갑’인 1차밴더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명백한 갑질이며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고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지연됐다는 이유로 몇 배로 배상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어요. 보증보험 청구해서 1억 정도 이미 받아갔고요. 물론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한 건 잘못이지만 판매가를 기준으로 막대한 금액을 보상하라고 하니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 같아요.”

S대표가 건네준 계약서에는 납품 지연 시 판매가에 제품 수량과 납품 지연일자를 곱해 산정한 금액을 변상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밖에도 조항마다 을에게 불리한 조건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S대표는 “계약 자체가 아무리 불공정해도 철저히 을의 입장이다 보니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S업체가 원청업체와 체결한 불공정 계약서.(사진=소비자경제)

그는 “10번이고 20번이고 샘플을 만들어주면서 저는 정말 직원처럼, 아니, 노예처럼 일했거든요. 신경 쓰니까 잇몸이 다 부르트고 처음에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S대표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 때마다 돌아오는 건 실망뿐이었다.

“공정거래 위원회에 문의해보았지만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한 상황이라 소송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자금융통을 위해 대출을 받아보려 했지만 그조차 이뤄지지 않았어요”라며 씁쓸한 심정을 전했다.

‘갑질 계약’의 당사자인 1차 밴더 원청업체는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대응할 말이 없으며 상대 회사의 계약 불이행에 대한 조치일 뿐"이라고 잡아뗐다.

결국 S대표는 결국 소송도 포기한 상태다. 지난한 싸움을 하는 사이 회사는 100%문 닫을 것이 뻔했고 승소할 확률이 없다는 무기력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

◇ 뿌리 깊은 원청-하도급 불공정거래 관행 해결할 방법은?  

상호간의 협의 후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하더라도 한쪽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과도하게 부당한 계약을 요구했을 시, 그 계약을 무효로 판단하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납품이 지연될 경우 위약거래 의무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손해배상을 납품가보다 다소 높게 책정하는 업계 관행이 낳은 불평등 계약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들을 찾아다녀 봤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원청업체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조항을 회사 쪽에 유리하게 한 것만으로는 공정거래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고 법령자체가 모호해 승소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처럼 중소제조업 하도급 불공정행위는 계약체결 단계에서 계약조건이 원활히 공유되지 않거나 협의되지 않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가 지난 10월 중소제조업체 500개사를 대상으로  ‘2017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를 진행한 결과,  하도급 계약 10건 중 6건(58.2%)은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6건 중 4건(41.1%)은 발주서·메일 또는 구두로 위탁이 이루어져 불공정행위가 발생할 경우 수급사업자의 피해구제가 쉽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제조업체들도 가장 빈번하게 경험하는 원사업자의 의무행위 위반사항으로 서면발급 의무 위반(54.2%), 선급금 지급 의무 위반(37.3%)을 꼽고 있어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간 계약에 필요한 정보가 사전에 원활히 공유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 위원회가 이달 안으로 1차 협력업체 뿐 아니라 2차 3차 협력업체들까지 보호할 수 있는 ‘하도급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관행과 전체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하청업들이 속 시원할 방법을 도출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자영업, 소상공인의 악성 부채를 선순환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한 정책 금융기관의 설립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경영연구소 최동석 박사는 대기업과 그 밑으로 1차 2차 3차 줄줄이 이어지는 다단계식 구조를 꼬집었다. 

그는 “생산성과 물질가치가 우선인 신자유주의식 사회구조와 가치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 관행과 폐해는 끊을 수 없을 것이다”라며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 바꾸어 가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