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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칼럼] '의학 드라마는 이제 그만'

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신문 칼럼] 여기저기에서 아프다며 소리치는 아우성으로 응급실은 시장바닥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응급실 베드는 모두 환자들로 꽉 차있었고 그 사이를 간호사들과 병원 직원들이 뒤엉켜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며칠 밤을 샌 것 같은 퀭한 눈으로 그 사이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친구는 응급실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있던 저를 발견하더니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의대 다닐 동안 저랑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저에게 달려와 제 손을 꼭 잡으며 “왔구나”라며 과할 정도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한손에는 여전히 캐리어를 든 채로 황망하게 서있는 저에게 그 친구는 듣거나 말거나 응급실 인계사항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인계사항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어느덧 제 손에는 두툼한 대학 노트 같은 것이 들려있었습니다. “웬만한 건 그 안에 다 적혀 있으니까 잘 읽어보고 가운 없으면 우선 이거 입고하고..”라며 그 친구는 자기가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주었습니다. 여기저기 핏자국으로 얼룩진 그의 가운이 마치 지옥을 탈출하듯이 바쁘게 응급실을 나서던 그 친구가 남기며 떠났던 “행운을 빈다”라는 말의 의미가 지금부터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 어렴풋이 인식하게 하는 단서일 뿐이었습니다.

제가 인턴 때 일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인턴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따자마자 병원에서 의사로서 가장 처음 맡게 되는 직급입니다. 의사들이 하는 얘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의사일 뿐이지 의사로서는 무언가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대개 2월에 의과대학을 졸업 하고 바로 3월부터 인턴 업무가 시작되는데 매월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여러 과를 옮겨 다니며 의사로서의 직무를 배우게 되는 과정이 인턴입니다.

저에게는 5월에 제주도에 있는 H병원 응급실 파견 스케줄이 있었습니다. 저의 스케줄은 3월에 신생아 중환자실 4월에 외과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당시 5월이 될 때까지 병원 밖을 거의 나가본 적이 없는 상태였던지라 5월의 그 화창한 제주도로 향하는 스케줄을 손꼽아 기다려왔음은 물론입니다. 드디어 4월의 마지막 날, 5월 스케줄을 위해 제주 공항에 내리니 우선 공기부터가 달랐습니다. 저는 그저 제주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들뜬 마음을 안고 제가 일할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었던 것이었고 그 때 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앞에서 말씀드린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던 겁니다.

“선생님, suture(상처봉합)준비되었는데요”

캐리어를 풀지도 않은 채 피 묻은 가운을 입고 응급실 스테이션에 멍하니 서있는 저의 등을 두드리는 간호사의 목소리였습니다. 이마가 약 5cm 정도 찢어진 환자였는데 제 앞에 근무했던 친구가 환자를 받고 오더만 냈을 뿐 상처봉합은 안하고 가버린 겁니다. 문제는 무엇이었냐면 전 그때까지 한 번도 상처봉합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론적으로만 배웠을뿐, 그리고 인턴 직무 교육 때 연습이랍시고 돼지고기 몇 바늘 꿰매본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 제가 당장 사람 얼굴을 꿰매야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저와 저랑 다를 바 없는 인턴 한 명 외에는 의사가 없는 상황이고 피해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어쩔 수 없이 환자보다도 더 두려운 마음으로 환자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자는 저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이마를 꿰매줄 사람이 한 번도 상처봉합의 경험이 없는 의사인 것을 알 리가 없는 환자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간호사에게 내린 첫 오더는 우선 수건으로 얼른 환자의 얼굴 좀 가려달라는 오더였습니다. 아무리 ‘이건 돼지고기다 이건 돼지고기다’라고 자기 암시를 해봐도 봉합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손이 떨렸습니다. 겨우 진정하고 봉합을 시작하려하는데 간호사가 제 팔을 잡았습니다. “저기..선생님..리도카인..” 아차 했습니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입니다. 하도 돼지고기라고 자기암시를 해서인지 마취하는 것도 까먹고 생살을 꿰맬 뻔 했던 겁니다. 그 정도로 어설프게 시작한 저의 첫 봉합 수술은 겨우 5cm 꿰매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환자는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니 제가 엄청나게 정성을 다해 봉합을 해준 줄 알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과할 정도로 감사인사를 하는 바람에 저의 미안함은 더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그냥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상처 봉합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고 그날 밤에만 그렇게 10명도 넘게 봉합수술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제주도 응급실에서의 첫날이었습니다. 한숨도 못자고 그 다음 날 아침이 밝았고 저 또한 그 다음 날 인턴에게 행운을 빈다는 말을 남기며 응급실을 탈출하였고 당직실에서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시면 어떻습니까? 흔한 의학드라마 한 장면 같지 않습니까? 재미있기도 하고 의사 하나 만들어지기까지 참으로 힘든 과정을 겪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의료 현장이 가지고 있는 치열하고 절박한 드라마적인 요소는 ‘의학드라마는 언제나 불패’라는 명제의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저는 이러한 드라마틱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화가 납니다.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전쟁터 최전선에 갓 입대한 군인을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배치해놓고 아무런 교육도 없이 혼자 감당하게 했는지 당시의 ‘수련’에 대해 화가 납니다. 다행이 별 문제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너무나 위험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박진감 있는 의학드라마 같은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실제 현장을 겪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드라마같은 상황은 결코 반가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보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상황에 더 화가 나야할 사람들은 아마도 그 가운데 언제든지 환자가 될 수 있었던 우리 모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운이 없으면 난생 처음 봉합하는 의사에게 자신의 얼굴을 맡길 수도 있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노해야하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지 않을까요?

얼마 전 어느 중증외과 의사가 자신이 겪고 있는 의료 현장의 문제에 대해 절절한 호소를 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제가 위에서 겪었던 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문제들입니다. 그는 실제로 의학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고 매일 매일을 정말 드라마처럼 살아가는 의사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러한 드라마같은 현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고발했을 때 이를 전달하는 언론이나 이를 듣고 있는 사람들 모두 왠지 적절하지 않은 반응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언론과 대중의 속성이라지만 그가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과한 채 선정적인 내용만을 옮긴다거나 그를 영웅이라 추켜세우는데 열중하는 반응들은 우리가 아직도 현실을 드라마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가 행하는 숭고한 의술에 삭감의 칼을 대는 건강보험공단의 무식함과 개인적 생활을 내 팽개치고 헌신하고 있으면서도 병원 적자의 주범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의료 현실에 대해 같은 의사로서 느껴지는 분노는 당연한 것이지만 진정한 분노는 그러한 시스템 속에 언제든 환자가 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웅적인 의사가 불합리한 의료 제도와 싸워나가고 며칠 밤을 새운 의사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환자를 살려내는 일들은 드라마에서만으로도 족 합니다

그는 영웅일 필요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자기 맡은 바 일을 해나가는 중증 외과 의사여야 합니다. 그는 반드시 적절하게 휴식하고 삭감 따위 걱정하지 않고 갈등 없이 환자 치료에 매진하는 아주 재미없는 드라마를 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언젠가 환자가 될지 모르는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그의 삶이 의학드라마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줄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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