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3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앞에서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일성여고 후배들이 선배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권지연 기자)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

“수능대박 일성여고 파이팅” “엄마도 대학 간다. 일성여고 파이팅!“

어둠이 걷히지 않은 아침 6시 30분. 영하 3도, 매서운 추위에 굴하지 않고 할머니 응원단이 홍대부여고 앞에 모였다.

올해 수능에 도전하는 일성여고 선배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찼다. ‘수능대학’이라고 적은 응원피켓과 반짝이를 힘차게 흔드는 동안 추위도 잊은 듯 보였다.

가수 오승근의 히트곡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한 응원가를 부르던 일성여고 2학년 이상순(70세) 할머니는 코끝이 찡해졌다.

“제가 눈물이 나네요, 저도 빨리 내년에 시험보고 싶어요. 오늘 시험 치르는 분들, 모두 좋은 점수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된 2018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제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2년제 학력인정 교육기관, 일성여고 만학도 175명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고령 이명순(86세) 할머니가 시험장에 도착하자 응원 소리는 더 드높아진다.

“손주가 시험 잘 보라고 응원해줬어요. 이렇게들 응원해주는데 시험 잘 치르고 오겠습니다.” 이명순 할머니의 각오에서 설렘과 긴장감이 엿보인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3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앞에서 최고령 응시자인 이명순 할머니(86세)가 일성여고 후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권지연 기자)

1932년생인 이명순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까지 다녔지만 결국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6.25전쟁을 겪고 이 후 결혼과 출산, 생활에 치이면서 배움의 기회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사는 외국에 여행을 가게 됐는데, 화장실이 급해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를 몰라 애 먹었다는 할머니는 일성여고 중학교에 입학할 결심을 하게 됐다. 배움에 목말랐던 할머니였다. 

외우면 잊고 외우면 잊고를 반복했지만 끈질기게 노력해 기초 영어 회화도 가능할 정도가 됐다. 무엇보다 큰 기쁨은 자신감의 회복이다. 교장선생님과 일성학교 교사, 후배들의 따뜻한 응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란 할머니는 이 말을 남기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겠습니다.”

잠을 설친 탓에 늦게 일어난 장일성 할머니는 경기도 남양주시 집에서부터 마포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만학도의 길을 누구보다 지지해주고 도와주던 남편과 사별하고 가족을 위해 영양사가 되고 싶다는 장일성할머니(82세)는 오늘도 남편이 하늘에서 응원해주고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배운 대로 아는 대로 쓰면 되죠. 자신 있어요. 하늘에서 남편도 함께 응원해 주고 있을 겁니다. 잘 보고 올게요.”

이밖에도 오늘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르는 일성여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27년 전 위암말기 수술, 6년 전에는 췌장암 수술, 2년 전에는 사고로 오른쪽 갈비뼈가 부러지는 시련을 겪으며 음식도 맘껏 섭취하지 못하고 두통이 심하지만 육체의 고통이 배움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 없다는 차영옥(75세) 할머니는 도전 자체를 즐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중국동포 안금석(52세) 씨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중국동포들의 자립을 돕고 향 후 통일한국에도 기여하고 싶은 부푼 꿈을 꾸고 있다.

교사들도 만감이 교차하기는 마찬가지다. 일성여고 강래령 교사는 시대적 아픔과 환경 때문에 배움을 포기해야 했지만 늦은 나이에 용기 있는 도전에 나선 학생들을 보며 설레고 혹여 실수는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뿌듯하기도 하다.

“우리 반은 32명 중에서 28명이 수능에 도전해요. 연세가 많으시니까 늘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셔서인지 정말 열심히 하셨어요. 다른 학교에서 느껴볼 수 없는 보람을 느끼죠. 아침에 나오는데 울컥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실수는 하지 않을까, 그것 때문에 속상해하지는 않을까 딱 수험생 엄마의 마음인 것 같아요. 인생의 여러 고비를 다 넘기고 수능을 보는 거잖아요. 점수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19살 딸을 고사장으로 들여보낸 한 학부모는 일성여고 수험생들과 응원하는 재학생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만학도들의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들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희망을 전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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