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저의 아버지는 양계장을 하셨었습니다. 지금 저의 병원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의 양계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저를 ‘양계장집 막내아들’로 기억하시는 어르신들이 종종 병원을 찾아주십니다. 저 또한 지금은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어릴 때는 아버지를 도와 닭 사료 주는 일, 계란 걷는 일, 닭똥 치우는 일 등 양계장일을 적지 않게 도우며 자랐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의사보다 ‘양계장집 막내아들’이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양계장에 관련된 얘기가 들려오면 아직도 저는 우리집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아서 더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됩니다. 얼마 전에 ‘살충제 계란’ 얘기가 나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물론 의사와 소비자의 입장에서 살충제 계란이 어느 정도 인체에 위험할지에 대한 관심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 저는 양계장집 아들의 입장에서 생산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살충제 계란을 생산했다며 비난을 받는 농장주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언론은 살충제 계란이 나오게 된 이유로 공장식 밀집 사육환경을 지적했지만 그 어느 곳도 왜 그런 공장식 밀집 사육환경에서 닭을 키워야했는지, 왜 살충제를 뿌리며 닭을 키워야 했는지 생산자의 입장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넉넉한 땅에 닭을 놓아 키우며 냄새도 안 나는 친환경 사육환경을 자랑하는 양계장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들은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사들은 이렇게 공장식 밀집 환경에서 닭을 키우지 않으면서도 좋은 계란을 생산하는 농장주도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살충제 계란을 생산한 농장주들의 부도덕함을 더욱 드러낼 수 있겠지만 제가 중요하게 본 것은 기사 말미에 그렇게 생산한 계란의 판매가격이 한 알에 천원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상적인 생산 과정으로 생산된 계란은 절대 우리가 흔히 사먹는 계란 가격으로는 만들어 질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동물 친화적인 환경에서 생산한 계란이 좋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것은 계란 한판에 3만원이나 지불할 수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얘기는 아무도 말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2015년 의료계에도 있었습니다. 메르스 사태가 터졌고 너도나도 후진적인 응급실 환경과 입원 환경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장터처럼 복잡한 응급실 환경과 아무 보호자나 다 들어올 수 있는 다인실 병실 환경이 메르스 사태를 키웠다고 분석하였습니다. 메르스 사태가 터지자 모든 대학 병원은 외부인의 병문안을 금지했고 사람들은 알아서 병원 내원을 자제했습니다. 당시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친구들을 만나면 의사되고 나서 이렇게 이상적인 진료환경은 처음이라며 우리나라도 이럴 수 있었던 것이었냐며 감탄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은 결국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진료해서는 병원이 생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메르스 사태 당시의 병원 경영이 3개월만 더 지속되었어도 병원들은 줄도산 할 위기였습니다. 병원 내에 입점해있는 여러 상점들은 방문자들이 없는 병원에서 운영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누구나 이상적인 의료 환경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병원이 적정한 수의 환자만 보고도 운영이 가능할 때, 병원이 쇼핑몰처럼 여러 부대시설을 입점시켜 수익을 내지 않아도 운영이 가능해야만 가능하다는 근본적인 얘기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얘기하는 것은 쉽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지적하고 비난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돈 얘기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불편한 일입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돈을 많이 내야한다고 하면 누구나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표가 떨어질까봐 하지 못하는 말이고 의사들은 돈만 밝힌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불편한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문제는 다시 그 자리입니다.

필요한 곳에 돈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돈을 쓰지 않으면서 좋은 것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문제만 지적할 뿐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언제든 살충제 계란과 같은 위험에 처할 것이며 또 다시 메르스 사태가 온다 해도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며 또다시 공허한 응급실 환경과 병실 환경 타령만 할 것입니다.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어쩌면 계란값은 한판에 3만원이 정상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자랑해온 저렴한 의료비는 희생하지 말아야할 것이 희생되어가며 만들어진 가격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저렴한 가격은 좋아할 것도 아니고 자랑할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해왔는지 찾아내고 잘못된 것을 정상화 하는데 돈을 써야하지 않을까요?

이번 문재인 케어에 대한 아쉬움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동안 겨우 겨우 보험재정을 아껴서 모아 놓았던 돈을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 하는데 쓰겠다고 하는 정부의 발표에 많은 의사들이 놀라고 실망했던 것은 바로 비급여를 급여화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들이 의료계에 많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논의와 투자가 보장성을 높이고 의료비를 싸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되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는 것입니다.

조금 과하게 비유하자면 마치 살충제 계란이 생산되고 있는 공장식 사육환경은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계란값 걱정 없이 모두가 계란을 사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싼 계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한 계란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의료 또한 의료비를 낮추고 보장성을 넓히는 것보다 훨씬 더 시급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상황은 이러한데 금년도 하반기에만 건강 보험 공단은 직원 2200명을 더 채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채용이라더군요. 이런 계획을 하는 것을 보니 이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동시에 국민 건강을 위해 그 돈을 어디에 써야하는지에 대해서 이 나라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살충제 계란보다, 메르스보다 더 무서워 집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