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병원에 내원하여 간단한 진찰 및 처방을 받으면 본인부담금이 1500원입니다. 요즘 왠만한 음료수 하나도 1500원이 넘는데 의사 만나서 진찰받고 내는 돈이 달랑 1500원이다보니 돈을 내시면서도 미안해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겨우 그거 받아서 어떻게 먹고 살어” 하며 수납직원에게 오히려 병원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환자 한명에 1500원씩 받아서 어떻게 병원을 유지 하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돈이죠. 사실 1500원을 내고 가신 환자분의 진찰비는 재진일 경우 총 10620원입니다. 병원은 이 중에 환자분이 낸 1500원을 뺀 나머지 9120원을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여 받아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병원은 환자 한 명을 보면 약 1만원 정도의 수입이 생기게 되는 거죠.

어떻습니까? 환자 한 명 당 1만원의 수입이라면 많은 것 같습니까 적은 것 같습니까? 어떻게 보면 많은 것도 같고 어떻게 보면 소박한 가격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모자란 것 같기도 한 이 ‘가격’은 국가에서 정하는 것인데 이를 ‘의료수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이게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의사들은 맨날 이 의료수가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고 일반 국민들은 보기에 의사들이 호화롭게 잘사는 것처럼 보이고 그런 아우성들이 다 배부른 돼지들의 투정인 것처럼 보는 견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료수가가 정말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객관적인 평가를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이 78% 정도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http://www.medigatenews.com/news/822881630) 의료 수가는 원가의 78%밖에 안 되는 이상한 가격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는 의사들 측에서 낸 결과도 아니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일산 병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낸 결과이니 의사들의 주장에 일부러 호의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건강보험공단 자체 내에서 계산한 원가보전율은 73%라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결국 의료수가는 의사들의 말대로 부족한게 맞았던 겁니다. 환자 한 명 보면 1만원 정도 벌게 되는 의료수가로는 직원들 월급주고 세금내고 월세내고 의료기구 사고 치료재료 사는 데 턱없이 부족한 의료수가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병원은 지금까지 제조 원가 1만원짜리 짜장면을 국가에서 정한 가격인 7800원에 계속 팔고 있었던 겁니다. 팔수록 손해가 나는 장사였던 거죠. 
그런데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사업이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가능했던 걸까요?
 이런 사업이 가능했던 첫 번째 이유는 박리다매식 진료입니다. 환자를 하루에 100명 이상씩 보면 비용이 증가하는 정도를 수입의 증가로 상쇄시킬수 있기 때문에 남는 장사가 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병원은 환자 수에 목을 매게 됩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비정상적인 의료행태들이 생겨납니다.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기보다 더 많은 환자를 유인할 수 있는 진료 행태를 선택하게 됩니다. 3분 진료라는 말이 생기게 된 이유입니다. 그 결과 의사들은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자수를 보며 과도한 노동을 하고 환자들은 정상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업이 가능했던 두 번째 이유는 비급여 진료입니다. 국가에서 의료 수가로 가격을 정하지 않은 비급여 진료의 수가는 그래도 원가보전율이 100%가 넘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병원 수입을 보전해왔던 것입니다. 필요없는 비급여 검사들이 행해지고 의학적 근거도 없는 비급여 진료가 확장되는 문제점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무작정 없앨 수만도 없었던 사연이 바로 여기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의사들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의료 수가의 상승은 인건비와 물가의 상승을 따라가지 못했으나 의료기관의 증가와 출산율 저하로 박리다매식 진료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나마 원가도 안 되는 수가를 보험기준에 맞지 않는 진료를 했다고 삭감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어 돈도 돈이지만 의사들은 자존심까지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돈도 안 되고 자존심도 상하니 이제는 너도나도 비급여 진료밖에는 매달릴 것이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같은 정부의 정책이 발표된 의료계의 현실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번 정부의  비급여 항목에 대한 전면 급여화 정책이 의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이해가 되실까요? 

혹시 의사들이 이번 정책의 취지에 반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세상에 어떤 의사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고 재난적 의료비를 막겠다는 취지에 반대하겠습니까? 

문제는 순서가 틀렸다는 겁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의 원인부터 손을 대야 한다는 겁니다. 비급여 진료의 문제는 결과일 뿐입니다. 병원들이 왜 쓸데없는 비급여 진료에 매달려야했는지 정말 몰라서 덜컥 이런 정책부터 내놓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감하게 정책을 시행할 의지가 있었다면 차라리 이 기회에 모든 의료서비스를 국유화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국민 주치의 등록 제도를 시행해서 저 또한 병원 경영 신경 쓰지 않고 포괄적이고 책임감 있게 진정한 1차 진료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진정으로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병원 경영 걱정 없는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전제가 아닐까요?

당장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면 국가는 지금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부터 논할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적정수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합니다. 그 이후 더 이상 저질 박리다매식 진료와 근거도 없는 비급여 진료가 확장 되지 않도록 의료사회와 합의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지금처럼 원인과 결과가 뒤죽박죽인 진단과 처방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한가지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이번에 발표된 정책 속에는 의료기관에 적정 수가를 보상하겠다는 약속도 있다는 것입니다. <비급여가 수익보전으로 활용됐던 현실을 감안하여, 의료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적정하게 수가를 보상하되,전문인력 확충, 필수 의료 서비스(환자안전, 수술‧분만‧감염 등) 강화 등과 연계하여 추진한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12페이지>진정으로 이 약속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과연 이번 정책을 시행하면서 동시에 의료수가까지 정상화 할 수있을만한 재정과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심은 둘째 치고, 이 모호한 문장의 약속을 믿을 만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는 의사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겨우 그거 받아서 어떻게 먹고 살어”라며 진심으로 병원을 걱정해주시던 할머니가 다시 생각납니다. 할머니의 따뜻한 한마디 같은 그런 정책은 없는걸까요? 그 때 저희 직원이 했던 대답처럼 당당한 진료로 이에 응답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요즘입니다.

“저희는 다 먹고 살 수 있으니까 할머니는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만 하면 돼요”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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