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아직도 의료 혜택을 받기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으신 분들도 많겠습니다만 사실 진료를 하다보면 겨우 이런 것 때문에 병원에 오나 싶은 환자들도 꽤 많습니다.

워낙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서 그렇겠지만 특히나 자녀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으시는 분들은 감기같은 병에도 너무 쉽게 병원을 찾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콧물만 조금 나도, 기침만 조금 해도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옵니다.

심지어는 애가 어디가 아픈지도 잘 모르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병원 한번 데려가 보라던데요’ 하며 마치 어디 아픈지 맞춰보라는 식으로 아이를 데려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애들은 콧물만 훌쩍 거리고 기침만 조금 할 뿐 아픈 애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활달한 상태인데 말입니다.

감기같은 가벼운 병으로 병원 좀 찾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환자들이 의사가 아닌 이상 스스로 자기 증상을 해석하고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어떤 증상이든 간에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감기는 초장에 잡아야 한다고 믿거나 모든 감기 증상들을 얼른 소멸시켜야만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감기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순 감기의 치료는 증상에 대한 치료입니다. 감기가 불편하니까 치료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불편하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감기 증상을 없애는 것이 감기를 빨리 낫게 하거나 합병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감기 증상으로 크게 불편해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증상을 없애는 약을 아무리 써봐야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습니다.

오히려 감기로 인한 피해보다 감기약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 같은 아이들까지도 열심히 감기약을 챙겨먹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봅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십니다만 개원 초기에 이러한 아이들이 약이 필요 없는 상태라는 것을 보호자들에게 납득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무슨 병원에서 감기약도 안 준다고 화내고 가시는 분도 많았습니다. 자기 아이는 항생제 안 먹으면 안 낫는다고 항생제를 처방해야만 한다고 오히려 저를 설득하는 분도 많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약 안쓰고 아이를 키우겠다며 예방접종도 안 시키고 열이 펄펄 나도 해열제 조차도 안먹이는 극단적인 사람들 얘기도 들리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도 과도한 대증치료에 익숙해져 아무 이득이 없는 약을 열심히 쓰고 있는 환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은 몰라서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왜 의사들은 단순 감기 환자에게 이렇게 많은 대증 약물을 쓰게 된 것일까요? 대증 약물도 모자라 단순 감기에 효과가 증명되지도 않은 항생제까지 사용하는 치료가 매우 일반적인 현실이 되어버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환자들 입장에서는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에게 근거없는 치료를 요구할 수 있다지만 왜 의사들은 그런 요구를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교정하려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더 과도한 처방을 조장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감기라는 병은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병이기 때문입니다. 감기는 개원가 의사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환자가 많고 환자들은 감기라는 병을 통해 의사와 병원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에게 감기 환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감기의 위중함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10명의 단순 감기로 진단된 환자가 있다고 합시다. 이들 중 9명은 수 일 내로 좋아질 것이고 1명 정도는 더 심한 감기 증상 혹은 감기의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확률은 대증약물을 쓰건 안 쓰건, 항생제를 쓰건 안 쓰건 간에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의사가 단순 감기라는 진단 하에 ‘약이 필요하지 않으니 약을 먹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하며 환자를 보냈다고 가정한다면 9명은 의사가 말한 대로 별 문제없이 잘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9명은 그냥 자신이 건강해서 감기가 나은 것이지 의사가 자기에게 별로 해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쓸 데 없는 약을 먹지 않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괜찮다고 보냈던 1명의 환자가 밤새 열나고 합병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면 이 환자의 보호자는 낮에 괜찮다고 했던 의사를 얼마나 욕하겠습니까. 자기만 욕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방네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그 의사에 대한 나쁜 평가를 퍼트릴 것입니다. 10명중 1명뿐이라지만 이런 경험을 몇 번하고 나면 그 병원은 그 동네에서 얼마 안가서 문 닫는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반면, 단순 감기라는 진단이 분명함에도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 약을 처방해주겠다며 각종 대증약물과 항생제를 처방해주었을 경우를 가정해봅시다. 마찬가지로 9명은 감기의 예후대로 잘 나을 것입니다. 약을 써서 나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을 감기가 나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느끼는 환자들의 감정은 이전의 경우와 다릅니다. 나을 감기가 나은 것이지만 환자는 의사가 약을 처방해줘서 나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병을 심각하게 표현하면 할수록 그 고마움은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1명의 환자는 밤새 열나고 합병증으로 진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이 느끼는 바는 역시 달라집니다. ‘낮에 이렇게 심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이의 상태가 나빠질 것을 예견하고 이렇게 항생제까지 처방해주셨을까’라며 낮에 미리 항생제까지 처방해 준 의사의 능력을 칭송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마치 억지로 만든 설정 같지만 현실에서 매우 실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의 입장이라면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감기를 대표적인 예로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의 의료현실 속에는 이러한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괜찮다는 말보다는 더 위험하고 어려운 경우를 말하게 되고 더 뺄 것이 없는 처방전보다 더 더할 것이 없는 처방전이 나가게 되고 혹시라도 모를 경우를 대비해 과도한 검사인줄 알면서도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의사는 환자를 위해 교과서적인 진료를 추구해야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결국 그것이 환자를 위하는 길임을 환자가 알아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의사는 환자를 책임지지만 한편으로는 병원 경영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매달 직원들 월급을 줘야하며 임대료와 세금을 내야합니다. 물론 개원할 때 국가가 개원 자금을 대주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환자가 없어서 운영이 어려워진다 해도 국가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습니다.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다가 병원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에게 교과서적인 진료, 소신 있는 진료를 말 할 수 있을까요.

심사평가원에서는 분기별로 의사들의 진료를 분석하여 감기라는 진단에 항생제 사용이 몇 퍼센트니, 약의 가짓수가 몇 가지라느니 약제비가 상위 몇 퍼센트라느니 하며 분석표를 보내며 등급까지 정해줍니다. 이러한 국가의 행태가 꼴보기 싫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앉아서 이리저리 통계만 낼 줄 알지 의사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심사평가원의 이러한 노력으로 상기도 감염의 항생제 사용을 30%이상 감소 시켰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이나 할 줄 알지 아예 항생제를 처방할 때는 감기라는 진단명 자체를 입력할 수 없게 막아놓은 병원도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 무조건 의사들만 쥐어짜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국가의 발상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이 모든 것들은 언제나 공허한 셀프 칭찬과 다양한 꼼수들의 생산으로 결론지어집니다.

바른 진료를 하고자 하는 의사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의료 환경은 의사에게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재앙일수 밖에 없습니다. 바른 진료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영도 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우리 보건의료계의 절실한 필요성을 감기라는 가벼운 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해 담아보려 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주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의사 환자 정부 모두의 이해가 조금씩이라도 진전되어 지금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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