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우 발행인 겸 편집인

[소비자경제 칼럼] 명품 배우 김명민이 출연한 영화 ‘하루’와 이제훈이 열연한 '박열'을 얼마 전 관람했다. '하루'는 관객들에게 극도의 몰입감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톰 쿠르즈 주연 ‘엣즈 오브 트머루’도 죽음의 반복을 그린 내용이지만 ‘하루’와 많이 달랐다. 톰은 죽음의 반복을 통해 점차 향상된 자신을 발견했지만 김명민은 갈수록 지옥엔 문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김명민과 변요한의 뛰어난 연기력도 훌륭했지만 뻔한 인과응보 스토리에서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죄를 지었다면 피해자에게 진실하게 사과 하고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그래야 일상의 지옥, 복수가 멈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실존 인물은 다룬 ‘박열’은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의 만행을 왜곡하기 위해 박열을 일왕 암살 음모 주범으로 몰아갔던 내용을 담고 있다. 감독은 참혹했던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을 끄집어 내 일제의 왜곡된 역사관을 비판한다. 물론 그들 내부에도 양심의 소리가 있었지만 관객은 진실이 거짓에 짓눌리는 처참한 현장을 목도한다. 박열은 그 아내 가네코 후미코와 감옥에서 지옥 같은 일상을 보낸다.

94년 전 일본에서 조선인 6000명 이상이 학살됐다는 사실과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내각이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사실을 알고 있던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을 막무가내로 왜곡하고 숨기려 했던 일본은 한 세기가 지난 현재도 내각부 홈페이지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내용을 은근 슬쩍 삭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여전히 반성하지 못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일제가 범한 죄의 대가는 한국인 자자손손이 그 사실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진실을 왜곡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또한번 깨닫게 했다. 일본이 진실된 사과가 없는 한 ‘박열’ 같은 영화는 꾸준히, 영원히 만들어 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곧 개봉할 ‘군함도’도 비슷한 맥락의 영화다. 문제는 죄 없는 일본의 후손들이 자신의 선조들이 지은 죄의 대가를 직·간접적으로 치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빌 브란트 독일 총리가 46년 전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추모비 앞에 무릎 끊고 사죄를 안했다면, 독일이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이스라엘과 유럽에 자행한 학살과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다면 지금 유럽은 어땠을까? 아마도 우리는 매주 유럽 등지에서 발생하는 IS테러 만큼이나 독일 베를린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테러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독일의 진실된 반성이 이스라엘과 프랑스, 영국, 폴란드의 무력복수를 중단시킨 것이다.

역대 청와대 주인은 물론이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 조선, 고려, 백제, 신라, 고구려까지 어느 누구도 마음 편한 노후를 보낸 왕은 드물다. 일가친척, 자녀들, 부하들로부터 직·간접적인 복수를 당해 비극적 최후를 맞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왕이 비극적인 퇴임 맞는다면 백성, 국민은 비참해진다. 퇴임 후 우리 다음세대들에게 존경과 사랑받는 리더가 없다는 것은 민족에게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왕가의 저주라는 것은 전임 왕, 전임 대통령에 대한 현재 왕, 현직 대통령이 자행하는 복수로 인함이다. 권좌 아래 있을 때 받았던 상처와 치욕, 아픔을 권좌에 올라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기 때문에 발생됐다.

복수는 반복된다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이 과거 전임 대통령들이 지은 죄를 관용 없이 단죄한다면 아마도 청와대 안방 주인들의 비극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과연 무엇을 사과해야 하고, 무엇을 관용해야 할까.

적폐대상을 무조건 용서해야 하고 온갖 비리와 잘못을 얼렁뚱땅 덮으면 그만인가. 아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며 죄의 대가는 반드시 있기에 그 모든 행위는 인간의 단순한 임시방편적 태도로 해결 할 수 없다.

진실함이 필요하다. 영화 ‘하루’ ‘박열’ 메시지처럼. 리더의 진실함이 때론 상대의 죄를 용서하고 포용하게 만든다. 일본이 진실한 마음을 갖고 대한민국에 용서를 구해야 하고, 우리는 이웃 일본을 관용할 수 있는 진실한 용기가 있어야 끝없는 갈등이 끝난다.

보수와 진보의 골 깊은 대립을 멈추려면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때론 지지층의 비난 받을 과감성이 요구된다. 역대 청와대 대통령들은 이러한 용기가 있었다.

1987년 6. 29 대통령 직선제를 발표한 노태우 대통령은 하나회를 비롯한 군부세력의 반발을 감수해야 했고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한 김영삼 대통령은 재벌들의 비판을 들어야 했다. IMF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전라도 기업인들과 지지층으로부터 힐난을 들었다.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을 추진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임기 중 과감한 정책으로 긍정 평가를 받았던 역대 대통령들은 정작 외부에 공격으로 무너지기보다 내부의 측근과 본인의 교만과 독선으로부터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왕가의 피비린 나는 살육을 경험한 것도 내부의 교만, 오해, 정죄, 독선으로 인함이었다. 문제는 그 잘못을 빨리 파악하고 인정하고 회개하면 되는데 그런 자아해독 훈련은 물론이요 본인 스스로 내려놓음의 용기가 없어 비극은 멈추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고 싶은 것은 이러한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를 끊을 수 있는 학습효과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5년간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을 역임하며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를 가장 가까이 지켜봤다. 즉 대통령 훈련을 제대로 한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트레이닝 없이 바로 5년 임기를 시작한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소중한 5년을 미리 경험했으니 이는 역대 대통령과는 차원이 다른 준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군 장성, 당 대표, CEO, 대통령 자녀 출신과는 질적으로 다른 학습효과다.

조기대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 다수 국민들은 반신반의 우려도 했지만 현재 문 대통령 행보는 적절하고 균형적으로 잘하고 있다. 국민들은 83%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대통령의 실패 원인을 정확히 간파하고 국정을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조심할 것이다. 균형적 시각으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것이며,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과감한 정책을 시행 할 것이다. 청와대 저주와 복수의 고리를 끊고자 안간힘을 쓸 것이다.

필자는 자녀들에게 때론 용서를 구할 때가 있다. “아빠가 잘못 했다. 미안하다” 오해를 했을 때 이야기다. 이런 말을 하면 분노로 가득 찼던 자녀의 표정은 금세 풀린다. 그렇다. 복수를 멈추는 방법은 진실된 사과뿐이다. 그러려면 마음의 그릇이 넓어야 하고 회개하는 마음이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말한 대로 행성충돌, 기후변화, 핵 전쟁 등으로 30년 안에 지구를 떠나야 할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지금 싸움할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하면 화성과 금성에 이주할 지를 국가적 차원에서 빨리 고민하고 대응해야 한다. 종말의 시대를 걷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옆 사람을 용서하고 진실한 눈으로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한마디 하자. '하루' '박열'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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