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석 편집국장

 [소비자경제 칼럼] 서울대학교 병원이 어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9개월여 만에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꿔 발표했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백남기 씨는 317일 동안 사투를 벌이다 사망했다.

문제는 사망 원인을 두고 서울대 병원이 박근혜 정부 아래에선 ‘병사(病死)’라고 우기더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외인사(外因死)로 최종 수정했다. 그간 전임 박근혜 정부와 경찰은 백씨의 죽음을 공권력의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며 강변해왔고, 서울대 병원 측이 병사로 규정하면서 명백한 국가 공권력이 자행한 살인 행위를 덮으려 애를 써왔다.

이처럼 민감했던 고인의 죽음을 푸는 열쇠는 서울대 병원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 병원은 나쁜 권력 앞에 정의롭지 못했고, 병사라고 끝끝내 우기던 의사는 공권력의 살인행위를 비호하는 하수인으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병원 측이 문 정부로 권력이 이동한 뒤에 사인을 바꾼 것은 이런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 정부시절 서울대 병원장은 청와대의 꼭두각시였고, 첫 사인을 발표한 의사는 병원장의 지시를 받고 청와대와 경찰의 주문에 춤추는 피노키오였다. 국내 최고의 국립병원에 덧씌워진 굴종의 세월과 수치스러움은 이제부터 서울대 병원의 역사로 기록돼 지워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인이 외인사로 수정됐다는 의미는 당시 집회 현장에서 살수차를 직접 몰았거나 지시했던 담당 경찰관과 현장 책임자의 신분이 살인 피의자로 변경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찰은 내부적으로 한 농민을 살해한 책임을 물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고, 이들은 응당 과실치사 또는 살인죄로 기소돼야 마땅하다. 

이미 유족들은 지난 2015년 11월 18일 물대포 진압 책임자를 처벌하라며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 구은수 서울경창청장 외 5명을 살인미수(업무상 과실치상) 및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지금까지 요지부동이었다. 여기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관여했는지는 모르지만 전임 정부 청와대 눈치를 봤을 검찰이다.

머지않아 검찰도 서울대 병원이 사인을 변경했듯이 기소에 나서지 않으면 스스로 직무를 유기해왔음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또 정부가 바뀌었으니까. 그동안 기소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명백한 직무유기다. 경찰은 자숙모드로 새 정부의 눈치보기로 코드를 바꿀 것이 눈에 선하다. 검찰은 경찰 때리기에 나서 색출하듯 줄줄이 공소장을 남발할 것이다. 한마디로 故백남기 씨의 사인이 변경되기까지 서울대 병원과 검찰, 경찰까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막장 드라마를 찍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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