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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시대-⑦] 이한구, “재벌개혁, 기존 제도만 잘 활용해도 충분”<창간 9주년 특별인터뷰-한국재벌사연구소장> 정부와 재벌 모두 상생하는 방안 찾아야
이한구 한국재벌사연구소장.(사진=소비자경제DB)

[소비자경제신문=이진우 기자]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재벌개혁에 대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에 대한 재계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주목된다. 지금이야 새 정부의 허니문 기간이고 국민적 지지가 높은 상황이어서 재벌들이 일단 숨을 죽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향후 구체적인 재벌개혁과 관련한 정책수립 과정에서 정부와 대립각을 강하게 세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비자경제>는 재벌개혁 이슈와 관련해 새 정부가 추진할 재벌개혁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정부는 물론 재벌들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함으로써, 국민들이 기대하는 재벌개혁의 청사진이 제대로 그려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에 한국재벌사연구소의 이한구 소장(수원대학교 명예교수, 경제학박사)을 만나 대한민국 재벌들의 탄생 배경과 성장과정 및 새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새로운 방향에 대해 상세히 들어봤다.

◇ 재벌 탄생?…귀속재산 불하, 원조물자 배정, 무역과 밀수

이 소장에 따르면 대한민국 재벌의 역사는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또 한국경제만의 독특한 기업집단 구조인 재벌의 탄생 배경으로 1945년 광복과 6·25 전쟁을 꼽았다.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국내에서 철수하는 와중에 돈이나 금과 같은 동산들은 모두 가지고 갔다. 반면 부동산은 미처 처분하지 못하고 남겨두고 갔는데, 미군이 남한에서 군정을 실시할 때 일시적으로 소유했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일괄 이전하면서 귀속재산(적산)으로 국유화됐다.”

귀속재산은 대부분 일본인이 사업을 하다 남기고 간 것들로서 괜찮은 공장들이 꽤 많았다고 전해진다. 일본인 소유였던 공장 비중이 무려 94%에 달할 정도였으니, 이러한 귀속재산이 무주공산으로 주인도 없이 국유화 된 상태였다. 대한민국 초대 정부는 이러한 귀속재산 중 큰 기업들은 국유화했고, 중견기업이나 소기업들은 민간에 헐값으로 불하했는데 이들이 오늘날 재벌들의 초석이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재벌이 SK, 한화, 애경 등으로, 오늘날 30대 재벌의 절반 가까이 대상이 된다.

두 번째는 6·25 전쟁 이후 원조물자가 들어왔는데, 당시 GNP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물자를 1960년대 말까지 무상으로 받았다. 정부는 이러한 원조물자를 받아 주로 민간에 배정했다. 특히 밀가루 원료가 되는 밀과 사탕수수, 미국산 원면이 대부분이었고, 이는 제분공장, 설탕공장, 방직공장의 토대가 되는 원재료들이었다. 또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프라스틱과 비료, 시멘트 등 자본재가 원조물자로 들어와 한국 경제의 공업화에 기여한다. 제일제당, 제일모직, 문경시멘트 등이 신흥재벌로 혜성처럼 등장하는 계기가 된 것.

세 번째는 수입무역의 발달이다. 당시 수입물자의 마진이 5배가 평균적으로 남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10배에서 100배까지 남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물자를 배에 실었다는 정보만 전해져도 수입업자들에게는 수많은 장사꾼들이 줄을 섰다. 또 수입을 위한 달러를 만들기 위해 수출도 해야 했고 암달러상들도 수입업자를 상대로 폭리를 취했다. 정부가 보유한 달러를 수입업자에게 용도에 맞게 배분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의 고리가 이어지기 시작했고, 밀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 정부 주도 산업화 정책…중화학공업 등 재벌성장 신화

이 소장은 “중화학공업 육성은 사실상 안보문제와 직결된다.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말부터 독재정권이라는 굴레를 씌운 미국으로부터 주한미군 철수 등 수많은 외압을 받게 된다”면서 “이에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중화학공업이 성장해야 한다고 보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재벌들로 하여금 중후장대한 산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이로 인해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대우조선 등 공룡기업이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공업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위해 1970년대 들어 종합무역상사제도를 도입했는데, 외국에서 소비재나 생산재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달러가 필요했고, 달러를 확보하려면 수출을 많이 해야 했다.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강화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신흥재벌이 대우그룹이었다. 대우는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M&A 등을 통해 중소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고, 이는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의 교과서가 됐다.

이후 1980년대 들어와 해외로부터 국내시장 개방에 대한 압박을 받았으며,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하면서 국격 상승과 더불어 산업화와 민주화의 정점에 들어서게 됐다. 특히 민주화 영향으로 노사분규가 심화되고 임금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부동산가격 상승 등 한국경제가 고비용구조로 전환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때리는 게 능사 아니다”

이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외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당위성을 떠나서 ‘과연 잘 될까?’라는 의문이 든다. 재벌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재벌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이 맞물려 있는데, 그 중에서 재벌만 주목되는 경향이 있다”며 “재벌의 성장은 사실상 세계화에 편승하고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대가다. 그런데 재벌들만 배부르고 나머지 국민들은 먹을게 없다보니 그들이 사회에서 표적이 된 것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경제사회에서 재벌들의 속성은 마치 아메바와 같다는 것이다. 아메바는 먹이를 찾아 나서기 위해 몸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등 자신의 생존을 목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생명체다. 특히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사실상 재벌들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재벌들은 세계 곳곳으로 현지화의 발길을 넓히고, 디지털화가 심화되면서 기계화 등이 맞물리는 등 구조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본능적으로 조직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또 과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법적인 칸막이가 처져 있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돼 있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개방화가 촉진되고 노무현 정부 때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칸막이가 거의 사라졌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을 자유롭게 침범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이제 와서 이를 다시 막는다고 한다면, 외국기업의 경우 이러한 규제에 대해 국제기구인 WTO로부터 정부가 제재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면 국내 대기업은 안 되고 외국기업은 된다고 하면 이게 바로 기업 간 역차별이 될 것이다.

이 소장은 마지막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예외 없이 재벌들을 두들겼다. 그런데도 재벌개혁엔 모두 실패했다. 그 원인으로는 새로운 정경유착의 고리가 항상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미 재벌개혁과 관련한 제도는 촘촘한 거미줄 망처럼 잘 정비돼 있다”면서 “새로운 재벌개혁의 방향은 재벌들을 그저 건수를 잡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법에 따라 엄벌에 처하고 잘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해주면서 재벌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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