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 칼럼] 경제계 노사문제 대변자를 자처해온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자체 포럼에서 김영배 상근부회장이 내뱉었던 비정규직 발언이 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일자리 정책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영배 부회장은 “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결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면 산업현장의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도 배치된다고 밝힌 것이 논란이 됐다.

곧바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불편한 심기에 비판의 날을 세워 집중포화를 쏟아 부었다. 문 대통령은 “경총도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의 한 축으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대선 공약에서도 밝힌 것처럼 일자리 노동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는 상황에서 경총의 반발이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경총은 비정규직 문제가 대‧중소기업의 임금격차에 따른 것으로 아웃소싱을 통한 경영 효율화 측면에서 불가피한 부분이기 때문에 대기업 노사 모두의 일정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대응 논리를 내놓았다. 이러한 경총의 비정규직 인식을 두고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한 청와대는 물론 정부여당의 시선은 날카롭고 차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총은 문 대통령까지 나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비정규직 관련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총은 심지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무분별하다’고까지 표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와해로 구심점을 잃은 재계 내에서도 경총의 반기에 힘입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법대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흘리고 있다. 이는 새 정부의 압박에 반발을 넘어 ‘한판 붙어보자’는 식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또 박근혜 정부가 강력 추진하다가가 야권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던 노동개혁법의 사례처럼 비정규직 문제를 여야 간 정쟁으로 공을 떠넘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문재인 정부가 먼저 공공기관 비정규직부터 정규직으로,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데 속도를 내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민간기업들의 비정규직 문제는 우선적으로 설득과 대화를 풀어 가야 할 것이다.

정부의 일자리 노동정책에는 경제 기득권의 반발이 예상됐던 것이다. 대통령이 경제단체와 재계의 목소리를 굳이 짓누를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경제계가 계속해서 법대로 하자고 요구한다면 문재인 정부도 법을 만들어 추진하면 될 일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국민만 바라보고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다면 더욱 순리대로 풀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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