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오늘은 꺼내기 어려운 얘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의사들이 제약회사로부터 받는다는 리베이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약회사로부터 의사들이 금품을 수수해서 처벌 받았다는 뉴스들이 심심찮게 나오다보니 이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 같고 그렇다보니 오해도 많은 듯해서 용기내서 꺼내어 보는 주제입니다.

제 주변 친구들도 워낙 이런 뉴스가 많이 나오니까 저를 만나면 의사들이 이런 리베이트를 얼마나 받는지 궁금해 하는 친구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세상에 리베이트 없는 사업이 어디 있냐며 건설 쪽이나 공무원들 받는 리베이트 규모에 비하면 새발의피라고 의사들을 두둔해주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나 언론의 입장이 아닌 현장에 있는 일선 의사로서 이 리베이트에 대한 실제적인 얘기를 한번 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제 친구들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서 우선 제약회사 리베이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제가 경험한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십 여 년 전 제가 처음으로 전문의를 취득하고 진료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저는 이런 세계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병원을 찾아온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들은 자기 회사 약품 처방료의 30%를 리베이트로 돌려준다고 했습니다.

100만원을 처방하면 30만원을 현금으로 처방한 의사들에게 준다는 것인데 당시 저는 약 가격이 얼마나 거품이길래 이런 얘기가 가능할까 궁금했습니다. 그 비율은 처방액이 많을수록 더 커졌습니다. 일부 품목은 50%까지 비율을 얘기하는 곳도 있었고 몇몇 신제품에 대해서는 3개월간 처방액의 100%를 현금으로 돌려주겠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안 받겠다고 하면 회사에서 나온 걸 그럼 어떻게 하냐고 그냥 받아달라고 사정하는 영업사원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양심적인 경우고 중간에 영업사원이 리베이트를 착복하는, 일명 ‘배달사고’로 인해 회사가 발칵 뒤집어진 경우도 봤습니다. 그 당시 여러 가지 경우를 종합하고 영업사원들의 인건비까지 따지면 어림잡아 제가 느끼기에 최소한 약가의 40%이상은 제약회사들이 영업을 위해 쓰고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당시에는 학회 참석할 때 지원되는 식사비도 매우 풍족했고 판촉용품도 매우 고급스러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이제는 리베이트 자체를 언급하는 영업사원을 만나기도 힘듭니다. 일부 신제품에 대한 영업 정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아예 영업사원들과의 접촉을 꺼려합니다. 정당한 시판 후 조사비나 강의료까지도 리베이트로 처벌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괜한 오해를 사는 일은 아예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제약회사의 학회 지원 분위기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합니다.

물론 저는 개원가 의사로서 제 경험이 의료 사회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제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체적인 경향이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최근 십여년간 정부가 리베이트에 대해 강력하게 제제를 해온 결과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의사들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오명과 함께 약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 되었습니다. 이러한 험난한 과정들을 통해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제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관행은 축소되었습니다. 제가 체감하는 바로는 적어도 이전에 비해 요즘 제약회사는 영업을 위해 쓰던 비용의 최소한 80%이상은 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비록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전의 좋았던 시절이 지나가서 아쉽다거나 예전에는 리베이트를 받았지만 지금은 받지 않으니 그만 괴롭히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렇다면 과연 그 리베이트는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약가 상승의 주범이라던 리베이트 관행이 이렇게 축소되었는데 이쯤 되면 최소한 약가의 30%는 내려가야 정상 아닌가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간 약제비는 꾸준히 상승하였고 약가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약가가 내려가야 국민들이 모아주신 건강 보험 재정도 아낄 수 있고 국민들이 약국에 내는 약값도 줄어드는데 축소된 리베이트에도 불구하고 약가는 그대로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리베이트 단속의 결과가 국민들에게는 아무 이득이 없고 제약회사의 배만 불린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요? 약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던 리베이트가 이렇게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가는 그대로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보다 먼저 따질 것은 누가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약가를 정한 것일까요? 약값의 30%이상 리베이트로 써도 될 만큼 거품이 가득한 이 약가는 과연 누가 정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사실은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지만 약가는 시장경제 원칙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약가는 제약회사에서 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약가는 국가에서 결정하여 고시한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리베이트를 단속해도 국가에서 약가를 낮추지 않으면 국민들에게는 돌아올 혜택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의사들에게 지급하던 리베이트는 사라지고 약가는 그대로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약회사는 국가를 상대로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약가를 높게 유지하고자 애쓸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예상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이는 일반 국민과 의사의 입장에서 매우 분노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평원 직원 리베이트 요지경…"연구계약서 위장"-뒷돈 받고 제약사에 정보 유출…보험 약가에 따라 인센티브>

http://www.medicaltimes.com/newMobile/newsView.html?ID=1110299

저는 의사들이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던가 의사들은 잘못이 없다던가 하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문제의 본질이 어디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말입니다. 그간 국가가 국민들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의사들의 리베이트를 강력하게 제제해온 결과가 누구의 혜택으로 돌아갔는지, 의사들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리는 동안 오히려 국가는 그 뒤에 숨어서 문제의 핵심을 흐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국가는 진정으로 리베이트 없는 투명한 의료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의사들만 죄인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약가 결정 구조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합니다. 제약회사가 불법적인 영업을 할 수 없을 만큼 약가를 인하시키면 됩니다. 모든 영업 사원을 없애고 학회를 통해서나 메일로 약품 정보를 공급해도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절감된 보험 재정으로 비정상적인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고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 투자한다면 의사와 국민들 모두가 환영할 것입니다.

사회가 투명한 방향으로 성장하기위한 것이라면 누군가는 고통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감당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왜 지금까지 투명하지 못했던 것인지, 투명한 사회가 만들어준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투명한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동기는 무엇이며 과연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또 다른 부패가 그 자리를 대신할 뿐 고통의 가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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