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의사들이 흔하게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전공 과가 언제 정해지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저도 의대 다니고 있을 때 “너 의대 갔다며? 근데 무슨 과야?”하는 당황스러운 질문을 적지 않게 들어본 것 같습니다. 

사실 가까운 사람 중에 의사가 없으면 전공과가 학생 때  정해지는지 인턴(수련의)때 정해지는지 레지던트(전공의)때 정해지는지 쉽게 알기 어려운 문제이기는 합니다.

물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의사들은 레지던트 때 각자 전공할 과를 선택합니다. 따라서, 레지던트가 되기 전 1년간의 과정인 인턴 과정은 각 과를 순환 근무하면서 평생 자기가 전공하게 될 과를 경험하고 선택하는 시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보니 각과에서는 괜찮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인턴들에게 자기 과의 이미지를 좋게 보여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반대로 인턴 입장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과를 근무하게 될 때 조금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저도 인턴 때 어떤 과를 전공 할 것인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있지만 인턴 때까지만 해도 생사가 오고가는 치열한 의료현장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후보 중 하나가 흉부외과였는데 아쉽게도 저의 인턴 스케줄에는 흉부외과가 없었습니다. 고되기로 유명한 흉부외과 스케줄이 없는 저의 인턴 스케줄을 다른 인턴들은 모두가 부러워하였지만 흉부외과를 염두에 두고 있던 저에게는 아쉬운 스케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외과 스케줄을 돌고 있을 때 흉부외과 인턴이 부족하여서 외과 인턴을 흉부외과 수술장으로 차출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것이 흉부외과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서 고생하는 거라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이번 기회에 제가 흉부외과에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도 싶었기에 저는 흔쾌히 흉부외과 수술장으로 갔습니다.

그날 그렇게 해서 제가 들어갔던 흉부외과 수술은 CABG라는 관상동맥 치환 수술이었습니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게 되면 심근 경색과 같은 돌연사를 일으키는 질병이 되므로 관상동맥을 새로운 혈관으로 치환해주는 수술입니다.

어떤 수술이건 간에 인턴이 수술장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저 수술부위를 도구로 벌리고 있는 단순한 일이기는 하지만 몇 시간을 내내 서있어야 하고 수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흉부외과 수술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술은 더욱 그러합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그날의 수술도 새로운 관상동맥으로 사용할 혈관을 종아리에서 떼어내는 것부터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뛰고 있는 심장표면에 붙어있는 볼펜보다도 가느다란 혈관을 떼어 내어 새로운 혈관을 이어붙이는 세밀한 과정이 이어졌고 이러한 과정은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저녁 때가 되어야 끝이 났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이런 수술은 정말 멋지고 의미 있는 일인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그날 하루 저는 온 몸의 진액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수술이 고된 것도 고된 것이었지만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긴장감 때문인 것인지 군대처럼 무섭고 딱딱한 수술장의 분위기가 몸이 힘든 것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이러고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수술장 앞에 걸려있는 수술 스케줄을 보니 이런 수술이 매일 잡혀 있었고 그 스케줄은 모두 아침부터 수술장에서 같이 고생했던 전임의 선생님과 교수님 스케줄이라는 것에 더욱 놀랐습니다.

그걸 보고나니 아까부터 내내 쾡한 얼굴로 전공의들에게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온갖 짜증을 다 내던 전임의 선생님이 다소 이해가 되기는 했습니다만 한편으로 그날 제 마음 속에는 ‘저렇게 인생을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참여했던 수술의 현장에서 오히려 흉부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깨끗하게 접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병원생활 속에서 일주일에 한 번도 제대로 집에 가기 어려운 흉부외과 전공의의 모습들, 수술장 탈의실에서 쪽잠을 자는 흉부외과 선생님들을 보면서 존경스러운 마음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 저의 이러한 선택은 더욱 단단하게 굳어갔습니다.

 지난 글에서 효과적인 치료가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위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의사들이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면 의료 영역간의 난이도와 위험도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중환자를 다루는 영역이나 난이도가 높은 영역이 소외되는 현상들이 생기게 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이러한 기피 영역중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흉부외과입니다. 저는 그렇게 흉부외과를 기피했던 한 사람으로서 저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현상이 매우 실제적인 일임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단지 어렵고 힘들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앞으로 더 나은 전망을 기대할 수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측면으로 봐도 흉부외과의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일례로 제가 그렇게 인턴 때 참여했던 CABG라는 수술은 이 후 많은 케이스들이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로 대체되면서 요즘은 수술 건수까지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꼭 필요한 의료 분야이지만 힘들고 위험하고 여러모로 입지까지 좁아지는 분야이므로 흉부외과는 스스로 의학드라마에서나 자주 나오는 ‘드라마과’라고 자조할 만큼 이제 전공의조차 구하기 어려운 의료분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 어려운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성실히 감당해내고 계시는 흉부외과 의사 선생님들은 진정 존경받을 만한 분들입니다.

 의학에는 그러한 분야들이 흉부외과뿐만이 아닙니다. 중증 외상 센터, 희귀질환 클리닉, 중환자실과 같이 꼭 필요한 분야임을 모두가 알지만 병원에서는 전혀 수익이 생길 수 없는 분야이기에 외면 받고 있는 분야가 많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영역들에 많은 의사들의 노력이 모여져야 진정한 의료강국이 되는 것인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잘못하면 소송 걸리기 십상인 이러한 영역은 점점 더 자본과 의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이런 문제를 얘기할 때 많은 분들의 반응이 이렇습니다. 의사들이 돈 벌려고 성형외과나 피부과 같은 비급여 진료에는 구름같이 몰려가면서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야는 도외시할 수가 있냐는 겁니다. 겨우 돈벌려고 의사된 거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하라면서 의사들의 도덕성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선의와 희생을 강요하며 지탱되어야하는 수준의 사회를 목표로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도덕성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지극히 평범하고 자기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되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비행기를 운행하는 파일롯트들에게도 법적으로 비행시간에 제한을 두고 의무적인 휴식 시간을 강제하는 것이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사람을 다루는 의사가 과로하지 않고 진료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인 지원을 마련하는 것도 결코 낭비일 수 없습니다. 국민 건강에 꼭 필요한 영역이지만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영역이 있다면 이를 시장 경제적인 원리에만 맡기지 말고 공적 책임의 영역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희귀한 질병을 연구하고 돈이 안되는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나라가 의료 강국입니다. 여고생 한 명의 등하교를 위해 그가 졸업할 때까지 폐쇄하지 않았다는 일본 어느 철도역의 낭비가 의료영역에도 필요한 낭비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데 필요한 낭비라면 그것을 어떻게 낭비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