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고동석 편집부장] 2016년 3월 10일은 대한민국 헌정 사장 가장 슬프고도 가장 기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슬프고 기쁜 까닭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한 대가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되고 권력의 정점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생중계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가 인용으로 확정되는 순간 TV로 이를 지켜본 국민 대다수는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확정 때보다 감격하며 만세를 불렀다. 8인의 헌재 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탄핵 단초를 제공했던 비선실세 최순실 씨는 그 시각 법정에서 검사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을 전해 듣고선 마른 목을 가라앉히려 연신 물 컵을 들이켰다고 한다.

‘이게 나라냐’며 분노를 터트리며 꽁꽁 얼어붙던 지난겨울 하나둘이 모여 천만의 횃불로 타올랐던 이 나라 주권자들의 함성이 끝내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절대 권력을 무릎 꿇렸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국가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절대 권력이 숨기고 왜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불의의 정치시대가 막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은 이 나라 주권자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탄핵 인용과 함께 대통령은 자연인이 됐다, 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아쉬움을 남겼던 국정농단 수사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넘겨받았다. 헌재가 실어준 수사 동력은 거침이 없을 것이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법의 그물망을 피해가려 했던 여러 미꾸라지들, 이 나라를 나라꼴도 아니게 만든 국정농단의 주변까지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부패한 정치권력에 이끼처럼 끼여 있던 모든 적폐들을 이참에 모두 걷어내고 청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치 불신의 시대도 종식돼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정치가 얼마나 나라를 어지럽히고 국민을 힘들게 했는지 똑똑히 보았다. 국가 권력과 정치가 투명하고 정의로워야 국론을 통합할 수 있다.

수십년 간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돼온 한국 정치는 달라져야 한다. 국민을 좌우로 가르고, 내편과 네편을 나눠왔던 정치권은 대통령의 탄핵 선고를 계기로 각성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을 바라보는 정책 대결이 아닌 기회주의적인 감성에 기대어 권력을 잡으려는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에 갇혀서는 또다시 탄핵 역사를 기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세습 재벌이 지배해온 돈이 권력으로 변질된 한국경제의 구조도 모순 덩어리다. 국민 세금으로 기업을 일구고 버젓이 대를 이어 세습하는 재벌 그룹의 경영 형태는 북한 왕조체제와 흡사하다. 

재계는 헌재 탄핵 선고가 나오자 곧바로 “국회와 정부는 정치적 리스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경제살리기와 민생안정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라며 은근 슬쩍 묻어가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소로 부정한 권력의 한 축으로 자라난 재벌 문제는 이대로는 둘 수 없는 개혁의 대상이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정치 불확실성은 해소되는 모양새다. 외신들은 전 대통령이 된 자연인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 심판을 받았다며 탄핵 보도를 일제히 타전했다. 이들 외신의 보도에서 전 세계의 시선은 대한민국이 이제 박근혜 정권의 몰락으로 낡은 시대가 지나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역설적으로 내포돼 있다.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하는 날 지긋지긋했던 지난겨울의 쓰라린 기억들을 걷어내듯 날씨도 화창한 봄날이었다. 이제 꽃이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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