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고동석 경제부장] 이른바 ‘’법꾸라지‘’로 세간의 조롱거리가 돼버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끝내 구속됐다.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권력의 핵심부에서 파워엘리트로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3선의 국회의원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왕실장’으로 군림했던 그 스스로도 이 같은 시련을 겪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김 전 실장과 함께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어떤가. 현 정부 들어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에 이어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고, 문체부 장관에 오를 정도로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의 신데렐라’로 실세 장관으로 통했다.

이들의 구속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도 반환점을 돌았다. 박영수 특검팀에게 주어진 70일 간의 공식 수사 기간은 24일로 출범 35일째를 맞았다. 특검이 출범할 때만해도 빡빡한 한정된 시간 내에 수사대상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국정농단에 연루된 10여명을 구속하고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들춰내지 못한 진실규명을 위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를 2월초에 한 차례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검수사는 크게 네갈래로 박 대통령 뇌물죄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화여대 입시비리, 청와대 비선의료 등을 기본 축으로 수사력을 집중시켜 왔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영장을 비켜가긴 했지만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김 전 실정과 조 전 장관이 구속됨에 따라 이제 이 모든 범죄 혐의를 지시하고 명령한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만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특검으로선 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 중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해 이 부회장의 구속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다시 박 대통령 대면조사 전에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할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해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 돼버렸다. 박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독대한 이후에 삼성전자가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자금을 지원한 것은 이미 드러난 일이고, 삼성전자 내에서 400억원이 넘는 거액을 최씨에게 주라고 최종 결제할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부회장뿐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에 맞서 특검팀이 다시 영장 재청구로 정면돌파를 선택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삼성전자가 최씨에게 지원해준 자금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특검팀의 성패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상층부에 있었던 김기춘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수의를 입고 추풍납역처럼 떨어져 나가는 특검의 칼날 위에 있는데도 이재용 부회장은 유유히 구속이라는 그물망을 빠져나왔다. 그의 영장을 심사했던 부장판사는 졸지에 국민적 공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법원은 이번 게이트와 관련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찬성하는 과정에 개입한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특검 구속1호로 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그러나 합병의 대가로 돈을 건넨 이 부회장에 대해선 대가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는 이중적인 잣대가 아닐 수 없다. 법원은 40여일 간 특검이 숨가쁘게 게이트의 몸통인 박 대통령을 정조준해온 수사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갈아엎은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들은 법원이 삼성공화국의 파워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일부 친박단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원인무효라고 주장하고 한 친박의원은 ‘축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이라고 뜨겁게 환영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특검팀의 어깨에 걸려 있는 국민적 기대감과 국정농단 사태를 처벌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시대적 소명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특검팀은 전열을 가다듬고 재벌 총수들이 저지른 정경유착이 이 나라를 얼마나 황폐화시켰는지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런 뒤에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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