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서원호 취재국장] ‘중국산 인삼농축액’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최근 3년간 150톤 규모로 수입된 물량이다. 이 정도면 ‘500~700톤’의 홍삼제품을 만들 수 있다. 수입된 중국산 인삼농축액의 규모로 볼 때 “국내 거의 모든 홍삼제품은 중국산 인삼농축액이 국내산으로 둔갑해 사용됐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중국산 인삼농축액은 작년 12월 29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중국에서 인삼농축액을 연 평균 47.5톤 상당 규모로 수입한 뒤 물엿 등을 섞어 가짜 홍삼액을 만들어 판매한 업자들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수면위로 부상했다.

◆ 중국산 인삼농축액, 최근 3년간 150톤 수입

당시 검찰은 중국산 인삼농축액이 수입됐지만, 유통경로가 대부분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국내에서 유통되는 홍삼(인삼)제품 중 원산지 표시가 ‘중국산’은 거의 없이 대부분 ‘국산’으로 표시됐다고 했다. 그래서 기획수사를 통해 ‘중국산 인삼농축액’을 수입해 가짜 홍삼액을 만들어 판매한 한국인삼제조협회의 회장과 부회장, 이사 2명 등 7명에 대해 농수산물원산지표시법과 건강기능식품법 등의 위반으로 구속했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후 언론은 ‘중국산 인삼농축액에 물엿과 카라멜색소를 첨가해 가짜 홍삼액을 만들어 판매했다’며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천호식품 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천호식품이 판매한 ‘홍삼제품’ 등에는 ‘중국산 인삼농축액’이 사용되지 않았다. 천호식품이 납품받은 홍삼원료는 말하자면 ‘국내산 홍삼액에 물엿과 카라멜색소가 첨가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언론은 ‘중국산 인삼농축액’과 ‘물엿 및 카라멜색소’를 구별하지 않고, 혼용해 그 모든 책임을 천호식품에 덮어 씌웠다. 또 언론은 여기에 천호식품 회장의 정치성향을 더하고 과거전력까지 들먹거리는데 열정을 쏟을 뿐이었다.

언론은 ‘중국산 인삼농축액’이 수입돼 최종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어떤 방법과 경로로 전달됐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언론은 중국산 인삼농축액이야 어찌 됐든 ‘천호식품’을 잡았으니 됐다는 식이었다. 그 중에 <시사저널>과 <소비자경제> 등 몇몇 언론이 ‘가짜 홍삼사태’의 실체적 사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시사저널은 10일 ‘모든 홍삼 제품은 가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가짜 홍삼농축액은 공기업의 홍삼제품에도 사용됐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가짜 홍삼액을 제조한 일당은 해당 업계를 대표하는 단체 임원들이다. 농협홍삼과 한국인삼공사에도 흘러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했다. 농협홍삼과 한국인삼공사 측은 “자체공장에서 홍삼농축액을 제조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 ‘가짜 홍삼액’ 납품처, 면세점·대기업·제약회사는 누구?

검찰에 구속된 한국인삼제조협회의 회장과 부회장, 이사 2명 등 적발된 업체들은 2012년부터 별도의 비밀창고를 운영해 왔다. 중국산 인삼농축액을 비밀창고에 보관해 놓고, 여기에 물엿과 카라멜색소를 섞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홍삼액’을 유통했다.

검찰에 따르면 협회 회장은 2012년부터 2016년 10월까지 42억원 상당의 가짜 홍삼 제품을 면세점 등에 납품한 혐의이고, 부회장은 2013년부터 2016년 10월까지 164억원 상당의 홍삼제품을 대기업과 제약회사 등에 판매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중국산 인삼농축액이 사용된 홍삼제품 유통회사에 대해 “원산지 표시 관리는 식약처 소관업무가 아니라서 (식약처가) 업체명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고발된 사실은 통보 받았지만, 원산지표시 위반 업체 명단은 제공받지 못했다”고 발뺌했다.

그런데 문제가 엉뚱한 곳에서 뻥튀기 마냥 커졌다. 검찰이 가짜 홍삼액의 납품처로 단서를 제공한 ‘면세점, 대기업, 제약회사’ 등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신 ‘천호식품이 가짜 홍삼제품을 만들어 팔았다’는 뉴스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급기야 유력일간지는 ‘중국산 홍삼액을 팔았습니다’를 기사제목으로 뽑았다. ‘천호식품 독박 씌우기’로 몰아붙였다.

‘공정한 보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천호식품이 자사홈페이지에 ‘사과와 안내문’을 게재한 것까지도 ‘책임회피’로 몰아 붙였다. 며칠 뒤의 ‘김영식 회장의 사과와 회장직 사퇴’에까지 ‘꼼수 사퇴’라고 비아냥했다. 이로써 ‘불통 언론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사건이 돼 버렸다.

또, 한국인삼공사와 농협홍삼 등 34개 업체가 회원사로 가입해 있던 ‘한국인삼제조협회’, 협회의 회장과 부회장, 이사 2명 등 구속된 7명 중 4명이 관련된 ‘협회’를 주목해 조명하는 언론은 없었다. 협회 회장의 ‘고려인삼제조’와 협회 부회장의 ‘고려인삼연구’의 2개 회사가 관련이 됐는데도 말이다. 언론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가짜 홍삼액’에 쏟았던 열정 그대로 ‘중국산 인삼농축액’의 유통구조를 추적해야 한다.

◆ 식품 기준외 첨가물 판별법은 무엇?

천호식품 측은 사과문에서 “홍삼농축액이 입고될 때마다 홍삼의 유효성분인 진세노사이드 함량을 철저하게 검사해 기준치에 적합한 원료만 제품에 사용했다”며 “하지만 원료 공급업체에서 당성분을 의도적으로 높이는 물질을 소량 혼입하면 육안검사와 성분검사로 확인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홍삼원료에 물엿 등 기준 외 물질을 첨가한 경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시험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에 따르면 “홍삼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당(糖)이 있는데, 물엿을 첨가한 경우라도 분석 및 성분검사로 당이 홍삼에서 왔는지 혹은 물엿에서 왔는지 그 유래를 구별해 내기 어려우며 식약처를 포함해 국내에서는 당성분의 유래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 있는 검사가 가능한 기관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정확한 시험방법이나 검사를 하더라도 홍삼원료를 관리하는 부분은 매우 어려운 상태로 현재로서는 홍삼원료 생산자가 의도적으로 기준 외 물질을 첨가해 홍삼 유사제품을 제조하면 또 다른 제2, 제3의 천호식품과 같은 상황을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다른 견해를 갖는다. 노 교수에 따르면 홍삼은 인삼을 9번의 증자하는 과정을 거쳐 제조하기 때문에 열에 의해 유전자 정보가 파괴된다. DNA에 의한 분별이 어렵다. 꿀에 있는 당이 벌이 꽃으로부터 따와서 만들었는지 아니면 설탕을 가지고 만들었는지 당을 분석해 판단한다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꽃 속에 숨어 있는 꽃향기를 비롯한 미량의 물질들을 지문처럼 패턴인식으로 구분하면 알 수 있다. 일명 ‘전자코 방식’이다. 식약처가 지표성분이나 지표물질을 통해서 식품위생안전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공인된 기준방법으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등에서 ‘기준외 물질 첨가 판별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 교수는 “식약처가 분석방법의 한계를 뛰어 넘어 다양한 기준으로 판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할 때가 되었다”고 제안했다.

설날이면 검찰 수사결과 발표 한 달이다. 하지만, 검찰이 발표한 150톤 중국산 인삼농축액으로 홍삼제품을 만들어 유통시킨 유통망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이제 국민건강권과 알권리 차원에서 중국산 인삼농축액을 이용해 홍삼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유통망을 일점 의혹도 없이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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