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패키지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대부분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만 꼭 여정 중에 건강식품을 파는 곳을 들르게 됩니다. 아마도 가이드의 이권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대부분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일 중 하나인 듯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얼마 전에 호주로 친구 분들과 패키지 여행을 다녀오시면서 그러한 경험을 하셨나봅니다. 몸 구석구석 어디 아프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려운 70대 할머니들이 듣기에 도대체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까지 안 먹고 있었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곳에서 건강식품을 판매하시는 분들의 설명이 매우 설득력이 있었나 봅니다. 설명을 듣고 거기 계시던 분들이 너도 나도 건강식품을 사야겠다는 마음들을 가지게 될 때, 바로 이 때가 아들을 의사로 둔 저의 어머니의 고충이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왜냐하면 같이 가신 분들이 모두 어머니에게 이르기를 아들한테 전화해서 지금 사려는 이 건강식품이 먹어도 되는 건강식품인지를 물어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돈이 지출돼야하는 상황이다 보니 약효에 대해 의사로부터 뭔가 확실한 보증을 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정작 이런 상황에 처한 의사의 가족은 참으로 난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의사 아들을 둔 어머니의 경우는 이러한 문제로 아들에게 전화를 해봤자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히 예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결국 저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같이 가신 분들에게는 “전화를 해봤더니 우리 아들이 먹어도 된데” 라고 과감하게 거짓말을 해주심으로써 사고는 싶은데 비싼 돈 주고 이걸 사야하나 하며 갈등하시던 분들의 마음을 아주 편하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저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같이 여행가신 분들 모두가 기분 좋게 폴리코사놀 이라는 건강식품을 잔뜩 사가지고 귀국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 또한 제가 어머니를 통해 들은 것도 아니고 같이 가셨던 분들 중 여행경비보다 폴리코사놀을 사는데 더 많은 돈을 쓰신 분의 아드님이 저에게 왜 어머니한테 건강식품을 사도 된다고 말씀하셨냐고 원망하시는 바람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왠지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어머니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아들이 된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겹치게 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걸까요? 저희 어머니는 아마도 저에게 전화해봤자 ‘그거 사 오실 필요 없어요’라는 얘기를 들을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아들 말대로 하자니 이렇게 효과가 좋다는 걸 왜 못 사게 할까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문에 어머니 입장에서 일일이 답하기도 귀찮고 막말로 먹어보고 효과 있으면 좋은 것이고 효과 없더라도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닐 것이니 그냥 아들한테 귀찮게 묻지 말고 사 가지고 가자라고 결심하셨을 겁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효과’인 것 같습니다. 판매하시는 분들의 말씀대로 건강식품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그깟 돈이 얼마가 들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사용하는 ‘효과 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한 번 쯤은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효과있다’는 말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그 말이 가지는 무게는 쓰는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사도, 한의사도, 건강식품을 파는 사람도, 여섯시 내고향에서 지방 특산물을 소개하시는 시장 아주머니께서도 ‘이거 몸에 아주 좋아’ 라는 말을 쉽게 하실 수 있지만 최소한 저에게는 그 ‘몸에 좋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너그럽게 해석하기도 어려운 말입니다.

지난 번 칼럼에서 현대의학이 말하는 최선의 진료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현대의학이 추구하는 진료 또한 다름 아닌 ‘효과 있는 진료’입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에게 ‘효과 있다’는 말은 매우 엄격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냥 몇몇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느낀 것을 가지고 효과 있다 말하지 않습니다. 실험실이나 동물실험에서 효과 있었다고 해서 효과 있다 말하지 못합니다. 현대의학에서 효과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실제로 약품 하나를 개발하고 그 약이 ‘효과 있다’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 제약회사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적용을 해보고 효과와 부작용을 비교합니다. 심지어 결과에 영향을 미칠까봐 실험을 당하는 사람조차도 자기가 실험을 당하고 있는지 아니면 가짜 약을 먹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게 하며 그것이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까지도 심사를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해 효과 있는 약품이라는 자격을 얻은 후에도 시판 후 효과보다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로 탈락되는 약물 또한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현대의학에서는 어떠한 치료법이든지 간에 그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해야만 그것을 ‘효과 있는 치료’로 인정을 해주며 이러한 특징을 가진 현대의학을 가리켜 근거 중심 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라고 합니다. 의사가 아닌 많은 분들이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치료들이 이러한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여 아직 의학적 치료제로서의 자격을 얻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고 그렇다보니 현대 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은 그러한 치료에 대해 그렇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의사가 아닌 분들이 하는 얘기는 모두 거짓말이고 모든 건강식품들을 거부해야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직 의학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얻지 못했을 뿐이지 언제든 효과 있는 치료로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이니 상황에 따라 적용해볼 수 있는 자유 또한 우리에게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근거 중심 의학을 추구하는 현대 의학에서 이미 효과가 증명된 치료가 그렇지 않은 치료보다 우선 시 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끔 진료실에서 매달 당뇨약을 받으러 오시던 당뇨 환자분이 몇 달 만에 혈당이 엉망이 되어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간 왜 안 오셨었냐고 물으면 그동안 여주 끓인 물을 먹으며 당뇨를 치료해보려 했다는 대답, 외국에서 아들이 보내준 건강식품으로 치료를 해왔다는 대답을 들을 때면 의사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허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일들은 진료실에서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현대의학이 말하는 효과와 다른 분야에서 말하는 효과를 모두 같은 무게로 놓고 평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씩 불거지는 한의사와 의사와의 갈등의 문제도 사실 의사가 아닌 분들이 보기에는 비슷한 분야에서 두 영역 간에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으로 보실 수 있겠습니다만 본질적인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이 효과에 대한 의미에서 두 영역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한의학을 배제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나 각 나라의 전통의학이 존재하고 많은 국민들이 실제적인 효과를 보고 있으며 그 효과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효과에 대한 한의학적인 인식이 현대 의학과 일치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의학이 많이 과학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한의학적인 치료와 진단 방법이 아직 현대 의학이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에 만족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의료 일원화에 대한 논의라던가 서양 의료 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문제라던가 하는 논의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저는 지금 현대 의학만 옳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현대의학이 요구하는 근거 중심 의학이라는 룰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분야가 이러한 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과 관련된 여러 분야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의학 또한 현대의학의 측면에서 봤을 때 근거 있는 치료라는 자격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인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분야든지 간에 스스로 그 분야의 관점과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존재할 때는 상관이 없지만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그 효과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근거 중심 의학이라는 룰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의학적인 효과’라는 말은 그렇게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현대의학은 효과 있다는 말에 대한 엄격한 근거를 요구하기는 하지만 반대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이 한의학적인 방법이든 건강식품이든 간에 현대의학의 치료의 범주로 인정하는 열린 학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중국의 학자가 명나라 고의학서에서 얻은 힌트를 가지고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성분을 추출한 것에 대하여 노벨의학상을 수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텔레비전만 틀어도 여기저기에서 몸에 좋다, 효과 있다는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가끔 상업적이고 비양심적인 의료 정보들이 ‘의학적 근거’가 있는 정보인 양 아무런 여과 없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정보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들은 주로 마음 약하고 병든 사람들이다보니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조금 더 ‘효과’라는 말에 대해 까다로운 의료 소비자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 위와 같은 얘기들을 강조하여 말씀 드리기는 했습니다만 효과 있다 말하는 것도 자유이고 효과 있다고 믿는 것도 자유다보니 사실 ‘의학적 근거’라는 것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봤자 일반 국민들이 치료를 선택하는데 있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당장 대통령이라는 사람까지도 최고의 의료진이 옆에 있음에도 주사 놓는 아줌마를 불러 정체 모를 주사들을 맞고 있는 이 마당에 ‘근거 중심 의학’을 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요즘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현대의학이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서있다는 사실이 실제적으로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현대의학이 완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현대 의학 또한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가 있습니다. 현대 의학이 주는 이로움을 잘 활용하시려면 이러한 한계 또한 잘 이해하셔야합니다. 다음에는 이러한 한계에 대해 한 번 얘기해볼까 합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