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실수’ 유행어 잇단 구설수에 식어가는 ‘반기문 대망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공항철도로 이동하기 위해 직접 표를 사고 있다. 사진은 반 전 총장이 1만원 권 2장을 동시에 집어넣는 모습. (인천공항/공항사진기자단)

[소비자경제=고동석 기자] 귀국 후 ‘정치교체’를 선언하고 곧바로 뛰어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행보가 잇단 구설수로 연일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중도사퇴론’이 새어나오고 있다.

반 전 총장이 귀국하기 전 호감을 나타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기존 정치세력도 메시지 없는 어설픈 '보여주기식 이미지 쇼'에 고개를 돌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 ‘1일1실수’ 유행어까지 만든 대선행보 

반 전 총장은 귀국 첫날 시민들과 교감하겠다며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열차표를 구입할 때부터 삐걱거렸다.

그는 직접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7500원짜리 열차 표를 구입하기 위해 승차권발매기 지폐 투입구에 1만원 권 두 장을 동시에 집어넣은 웃지못할 해프닝을 벌였다. 이런 그의 모습은 고스란히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로 순식간에 전파되면서 조롱거리가 됐다.

그의 ‘귀국 이벤트’는 애초 보여주려던 친서민 의도와 달리 어설픈 ‘이미지 정치쇼’로 비쳐지면서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다 서민들과 동떨어진 채 지하철 기본요금을 내고 타는 일반 서민들이 이용하는 공항철도가 아닌 직행 열차를 타고 자신의 참모들과 지지자들에게 둘러 싸여 이동했다.

반 전 총장의 실수는 지난 14일 충북 음성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방문해 할머니에게 죽을 떠먹이려던 봉사활동에서도 터져나왔다. 반 전 총장이 ‘턱받이’를 하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이불을 덮고 곧게 누운 고령의 할머니에게 죽을 먹였는데 이때 할머니의 상반기를 일으켜 세우지도 않고 죽을 떠먹인 것이 위험천만해 보였다며 논란이 제기됐다.

이날 카메라 앵글에 잡힌 장면은 누가 봐도 봉사활동에 익숙하지 않은 반 전 총장의 실수였다. 그런데 반 전 총장 측은 턱받이 복장도 할머니의 죽 먹는 자세도 꽃동네 측이 요청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고, 꽃동네 측 역시 “턱받이가 아니고 앞치마였고 우리 측에서 요청한 것이 맞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또 꽃동네 관계자는 해명이랍시고 언론매체를 통해 “할머니의 자세에 대해선 사진기자가 하이앵글로 찍혀서 다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지 실은 완전히 누워 있던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세워있는 자세”라고 말해 불똥이 꽃동네까지 튀었다.

그럼에도 꽃동네 홈페이지에 게시된 봉사자들의 활동사진에는 할머니들이 턱받침을 한 상태로 상체를 세워 있고, 봉사자들의 앞치마는 반 전 총장의 턱받이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갓난 아기도 아는 턱받이를 앞치마라고 우기는 이런 해명에 정청래 전 더불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반기문쇼 하기도 진짜 힘들다"며 "환자에게 턱받이 할 것을 본인이 하고 있는 꼴이라니. 이는 마치 오른발 올리고 왼쪽 구두끈 묶는 꼴”이라고 비꼬았다.

반 전 총장은 또 꽃동네를 방문하던 날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퇴주잔을 마신 것이 풍습에 어긋났다며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오랜 외국 생활로 감을 잊은 게 아니냐”며 “측근이 제지할 새도 없이 마셔버렸다”, “마치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잘 모르면 하지를 말든가, 굳이 저런 모습을 연출해야 했나” 등 부정적인 여론이 쇄도했다.

이처럼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공항철도 표 구입, △공항 편의점에서 에비앙 생수 선택 △‘방명록 핫팩 의전’, △방명록 수첩 커닝, △음성 꽃동네 턱받이 △퇴주잔 음복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 △마스크 미착용 AI 방역 등 전국 순행 과정에서 연일 크고 작은 ‘웃픈’ 논란들이 따라다녔다.

이렇다보니 반 전 총장의 ‘1일1실수’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두고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 18일 “민생행보를 멈추는 편이 낫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 때문에 나라가 이 같은 상황에 처한 것 아니냐”며 “반 전 총장의 실수를 옆에서 쳐다보고만 있는 사람들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 전 총장의 대선행보가)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박근혜) ‘데자뷰’ 같다”면서 “뉴욕에서 10년간 살다와서 대한민국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지율 하락 대선 전에 중도 포기 가능성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19일 반 전 총장을 향해 “제2의 고건이 될 것”이라며 대선 중도포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귀국 후 대선행보에도 별다른 상승효과를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하락할 기미가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TBS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굉장히 무게감 있는 후보로 입국을 했는데 날이 갈수록 지지율은 올라가기는 커녕 내려가 버리면 그건 제2의 고건이 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후보 중 한사람으로 거론되던 고건 전 총리가 정치권 밖 장외에서 대권 의사를 드러내지 않을 때에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가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선 지지율 하락과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불출마 선언한 전철을 반 전 총장도 쫓아갈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반 전 총장이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라는 가치에 방점을 두고 대선 행보에 나선 것도 스스로 기존 정당을 선택하는데 한계를 설정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정 전 의원은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게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며 “갈 때라곤 바른정당 밖에 없는데 바른정당이 지금 새누리 당 ‘시즌투’다”고 쏘아붙였다.

반기문 전 총장이 귀국 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열린 유엔 출입기자단(UNCA) 송년 만찬에서 유엔사무총장이 코믹영상을 공개하는 관례에 따라 스노우 어플을 이용해 찍은 영상.(출처=유튜브 캡처)

그는 “지금 정치교체한다 하고는 자기 스스로가 여권후보를 다른 이름으로 또 (내세우려) 하고 있다”며 “스스로가 지금 말은 정치교체한다고 하고선 정권교체 프레임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본인이 정말 돈이 없어 정당을 선택하더라도 국민의당에 들어가는 게 고위험, 고수익을 얻는 것”이라며 “일단 안철수를 꺾어서 안철수의 표까지 같이 들고 그야말로 정치교체를 하는 건데, 지금 바른정당으로 가서 뭘 얻겠다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반 전 총장은 당분간 기존 정당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교체’를 선언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기 비용으로 대선행보 하는 것을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6일 경남 김해시의 한 치킨집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나는 당이 없고 세력이 없어서 아주 힘들다”며 “당에 들어가면 훨씬 쉽게 할 수 있다”고 토로한 것.

귀국 후 대선주자로 행보를 개시한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입에서 ‘된숨’이 새어나온다는 것은 본격적인 대선 경쟁을 앞두고 부정적으로 비쳐질 수밖에는 없는 부분이다.

반 전 총장이 정치 활동자금에 허덕이는 모양새를 내비치며 기존 정당을 선택한다면 ‘몸값’을 스스로 떨어드리는 악수를 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선택지 중 하나였던 국민의당도 귀국 전후로 입장이 바뀌었다. 

당 기조가 안철수 전 대표의 ‘자강론’으로 돌아선 데다 반 전 총장의 합류에 호의적이었던 박지원 대표 마저 “반 전 사무총장의 언행이나 함께하는 인사들이 국민의당 정체성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며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라며 차갑게 돌변했다.

뿐만 아니라 러브콜을 보내던 바른정당 내에서도 ‘반기문 회의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반 전 총장 측이 바른정당과 ‘당대당’ 통합방식으로 합류를 타진했다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새누리당에서 추가로 탈당할 충청권 의원들과 마포캠프 친이계 참모진을 규합해 그 다음 단계로 바른정당과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통합 조건으로는 바른정당 내 공석인 사무총장직과 캠프 인사들의 지역구 당협위원장 자리를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병국 바른정당 창당준비위원장은 19일 오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체회의를 통해 “공식적인 협의는 없었다고 분명히 말씀드린다. 대화를 한다고 해도 어떤 전제조건을 두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처럼 기존 정치권의 시선이 차가워진 데에는 반 전 총장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탄핵심판대에 오른 박 대통령을 격려하는 전화도 참모진들의 미숙함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대선에서 단순히 지지율만 보고 쫓아갔던 이미지 연출에 한 번 속아봤던 민심 역시 차기 대선을 앞두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메시지 없는 ‘반기문 대망론’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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