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계의 탈당은 4.13 총선 前 이미 예견…보수진영 어디로?

(사진출처=포커스뉴스)

[소비자경제=고동석 기자] 갈등의 골이 패일대로 패인 새누리당 친박계와 비박계가 ‘한지붕 아래 두가족’이라는 불편한 동거를 이제야 청산하고 탈당과 분당이 현실화되고 있다.

비박계는 21일 주호영·정병국 의원을 신당 창당 준비위원장으로 내정하고 오는 27일 탈당을 결행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비박계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이날 오전 회동 직후 브리핑에서 “우리는 오늘 새누리당을 떠나기로 마음을 모았다”며 “오늘 회의에 33명이 참석했고 이중 2명을 제외한 31명이 탈당에 뜻을 모았다”고 했다.

황 의원은 총 35명이 탈당과 분당에 동의하고 함께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가짜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뜻을 모았다”며 “대한민국 정치를 후퇴시킨 친박 패권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보수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새 출발을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의 회동 이후 탈당과 분당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비박계는 분당 이후 원내의석 확보를 위해 탈당에 동참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새누리당에 ‘출당’을 요구할 것이라는 밝혔다. 비례대표의 경우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출당을 당하면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박계 탈당과 분당의 원인제공자는 박 대통령

사실 주류와 비주류로 물과 기름처럼 나뉘었던 양 계파의 갈등 선(線)은 새누리당의 1호 당원인 박근혜 대통령이 원인제공자였다. 그간 계파를 구분 짓는 기준에서 드러나듯 ‘친(親)박근혜’와 ‘아닌(非) 박근혜’로 철저하게 추려내고 가렸던 장본인이 바로 박 대통령이었다.

지난해 5월 개혁적인 보수를 표방하며 원내대표에 당선됐던 유승민 의원을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으며 끌어내렸던 것 역시 박 대통령이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당 주류이자 박 대통령의 집권 동반자로서 책임과 권력을 행사해왔다.

작년 이맘 때 아침마다 열렸던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김무성 전 대표를 에워싸고 무시하고, 질책하고, 고성을 질러대기 일쑤였다. 당시 새누리당은 양 계파가 끝장을 낼 듯 매일까지 싸우면서도 총선에서 원내 160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공천에서 비박계를 학살하고, 4.13 총선에서 승리한 뒤 정국 주도권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틀어쥘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온갖 ‘박타령’이 난무했다.

원박(원조친박), 범박(범친박), 구박(舊朴), 신박(신친박), 복박(돌아온 친박), 홀박(홀대받는 친박), 종박(從朴), 월박(越朴), 멀박(멀어진 친박), 짤박(잘린 친박), 옹박(박근혜 옹위) 등 조롱 섞인 박타령이 나오게 된 것 역시 박 대통령이 자신의 사람들과 아닌(非) 사람들을 가르고 경계한 것에서 비롯됐다. 

차기 대권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물밑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접촉 중이라는 말들이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그러나 친박과 비박계가 막장 드라마를 연출했던 공천 파동의 결과는 참담한 총선 패배로 귀결됐다. 올 총선을 거치면서 새누리당은 이미 비박계 탈당과 분당의 싹을 잉태하고 있었던 셈이다.

◆만약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만약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헌정 사상 최악의 게이트로 꼽힐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은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들춰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전국 곳곳에서 수백만의 국민이 ‘박근혜를 구속하라’며 촛불을 들고 추운 날씨에 거리로 쏟아져 나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가결은 어림도 없었을 뿐더러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일방통행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형국이 됐을 뻔했다.

최순실씨과 그 측근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국정에서 손을 떼는 마지막까지 마음껏 농단하고 대기업의 금고를 자기 주머니처럼 털어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4.13 총선 전 친박계의 공천 학살을 막기 위해 당 대표 직인을 들고 배수진의 몸부림을 쳤던 김무성 전 대표는 오늘의 최순실 게이트와 박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박계 긴급 회동'를 마친 뒤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회동을 통해 오는 27일 집단 탈당키로 결정했다.(사진출처=포커스뉴스)

친박, 반기문 카드로 정치생명 이어갈까?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인데도 친박계가 비박계의 탈당과 분당 선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친박계는 다름 아닌 ‘반기문 카드’로 정치적 회생을 꿈꾸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줄기차게 반기문 대망론을 지펴온 중심축은 친박계였다. 반 총장의 지지세력이 전국적인 조직 기반을 꾸리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친박계가, 비(非)정치권에서는 그의 형제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때를 맞춰 반 사무총장도 20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사실상 대권 출마를 선언했다.

정진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1일 언론과의 통화에서 반 총장을 향해 “(새누리당의) 유일한 대안”며 “난 반기문 총장을 도와드리려고 한다. 반 총장이 귀국 후 행보에 따라 나도 진로를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낀박’으로 분류되는 정 전 원내대표는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뭉쳐야 한다”는 말로 친박계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반기문 카드’에 긍정을 넘어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다.

친박계는 반 총장이 내년 초 대권 행보가 본격화되면 정계개편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겉으로는 정계개편이라지만 실상 친(親)반기문계로 탈색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는 반 총장도 조기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 친박계와 손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했던 새누리당 내 62명 중 35명 정도가 1차 탈당에 뜻을 모았다. 2차 탈당이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추가 탈당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당 안팎에서 새어나온다.

비박계로 분류됐지만 탈당을 거부한 의원도 있지만 친박도 비박도 아닌 행보를 보여 왔던 중립지대 28명의 의원들도 탈당에 미온적이다. 이 역시 차기 대선에 친박계가 띄우고 있는 ‘반기문 카드’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이유에선지 한 친박계 의원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박계가 탈당해 신당을 창당해도 대안이 없다”며 “자멸의 길을 가는 것은 그쪽이지 우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비박계의 탈당과 신당 창당이 박 대통령 탄핵 이후 정계개편의 최대 분수령이 떠오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을 중심축으로 결집됐던 보수세력의 지각 변동이 대선을 앞두고 태풍이 될지 미풍으로 그칠지 현재로선 미지수이다. 분열된 보수진영의 운명은 이제 반 총장의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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