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 가정의학과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제 아들은 학교 양호실 단골입니다. 양호실 담당 선생님께서 애 이름도 알고 아빠가 의사인 것도 알고 있을 정도랍니다. 무슨 의사 아들이 양호실 단골이냐 싶겠지만 그렇게 된 이유는 대개 이러합니다.

쉬는 시간에 애들이랑 야구하다가 공을 던지는데 팔꿈치가 약간 아팠다는 겁니다. 우선 아들은 저한테 와서 엑스레이 찍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저는 만져도 보고 구부려도 보고 지금도 아프냐고 물으며 일종의 진찰 행위를 합니다. 진찰 결과 대개는 그냥 놔두면 좋아질 만한 정도라 아들에게 그냥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얘는 그게 불만인 것입니다. 뭔가 엑스레이도 찍고 약도 바르고 했으면 좋겠는데 아빠는 맨날 괜찮다고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학교 양호실에 가면 누워있다 가라고도 하고 엑스레이 찍어보라고도 하면서 붕대라도 하나 감아주는 것에 만족하며 의사인 아빠보다 학교 양호실을 더 신뢰하는 그런 환자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진료하는 것만큼 최선의 진료가 어디 있겠습니까? 의사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치료를 지시합니다. 절대 쓸 데 없는 진료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최선의 진료도 진료를 받는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환자는 최선의 진료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진료에 더 끌리게 마련입니다.

꼭 필요한 진료만 행하는 것이 오히려 성의 없게 느껴질 수 있고 뭔가 겁을 주고 실질적인 것을 해줘야 성의 있는 진료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상은 의사들이 가장하기 어려운 말이 ‘괜찮다’라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최선의 진료와 환자의 만족이 일치하지 않는 일들이 제 아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환자들에게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최선의 진료가 항상 환자들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만족을 주는 진료이기에 최선의 진료겠지만 당장 받아들이기에 환자들이 만족해하는 진료는 정말로 해야 할 최선의 진료와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환자가 제 아들과 같은 증상으로 저에게 찾아온다면 저는 과연 어떻게 진료를 하게 될까요? 그 환자가 제 아들처럼 제 경제적 이득과 전혀 상관없는 환자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제 소신대로 진료할 수 있겠지만 제가 제 아들이 아닌 다른 환자들에게도 그렇게 제 소신대로 진료 할 수 있을까요? 당장 주변에 병원들은 널려있고 이 환자가 다음에도 우리 병원을 찾을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는 지금 이 순간 과연 의사는 최선의 진료를 선택할까요 아니면 환자에게 만족을 주는 진료를 선택할까요?

지난 번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단순 감기 진료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의사들이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기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감기라는 병은 최선의 진료와 환자들에게 만족을 주는 진료 간에 큰 차이가 있는 질환입니다. 그러한 간극을 줄여보고 싶어서 지난 번 칼럼같은 글도 써보고 진료실에서도 많은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환자들은 처방된 감기약을 먹자마자 모든 증상이 사라져야만 ‘감기를 잘 치료하는 병원’으로 보는 인식이 매우 견고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진료비가 법적으로 정해져있고 내원 환자 수를 가지고 다른 의료기관과 경쟁을 해야 하는 의료 현실에서 어떤 의사가 환자에게 단순 감기니까 약이 필요 없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는 감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을 뿐이지 최선의 진료와 환자에게 만족을 주는 진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갈등은 의료의 꽤 여러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법과 제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코 의사의 개인적인 선택과 도덕성에만 의존하여서는 해결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들도 의사이기 전에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이고 직원들 월급을 줘야하는 사장이기에 이렇게 내원 환자 수로 병원끼리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최선의 진료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결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의료 환경이 필요합니다. 별다른 갈등 없이도 모든 환자를 마치 제가 제 아들을 진료하듯이 환자의 만족을 위해 눈치 보지 않고 전문가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의료만큼은 돈벌이 경쟁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무상 의료나 주치의 제도와 같은 의료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만 그러면서도 이러한 제도가 가능하기 위해서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도 반드시 감수해야 할 것도 있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최선의 진료는 내 만족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저 복지 혜택이라고 좋은 면만 생각하실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제도 하에 우리가 추구하는 최선의 진료는 때로 내 성에 차지 않고 매몰차며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때도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진료가 될 것이기에 우리 모두가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공감할 때만 이러한 의료 정책이 가능하다는 것도 우리가 동시에 생각해야만 합니다. 제가 보고 있는 상황은 이러한데 오히려 국가는 의료 영리화, 원격의료에 열을 올리고 대학병원까지도 돈벌이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최선의 진료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과서적인 진료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것을 위해 환자의 만족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지 의문이 있으실 겁니다. 환자가 효과 있다 느끼면 좋은 것 아닐까요?

그래서 다음에는 현대 의학이 추구하는 ‘최선의 진료’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에 누구보다도 ‘최선의 진료’를 위해 앞장서야 할 대통령의 행태들이 알려지면서 반드시 한번은 말씀드려야 할 주제라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해드림 가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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